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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설날이 기다려졌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이름
김기연
홈페이지
첨부화일

설날이 기다려졌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설날 떡국을 끓이고 하는 그 떡이 요즘과 같이 가래 떡은 아니었다. 멥쌀을 곱게 빠아서 고운 체로 친 그 가루를 시루에 찐다음 넓은 안반 위에 쏟아 놓고 자루가 달린 떡 메를 가지고 힘이센 장정들이 양쪽에서 여러번 힘을 들여서 치게되면 그것이 떡국 떡이 되고 했었다. 적당하게 길쭉한 크기로 납작한 모양으로 만들은 그것을 떡국 떡이라고 했다. 설 명절이 되기 일주일 전부터 동네의 한 복판에 넓은 마당을 장소로 정하게 되면 순서를 기다리는 그 시루에서 김이 무럭 무럭 나고 했었다. 안반을 그 마당 한 복판에 놓고 순번 차례대로 그렇게 떡국 떡을 만들고 했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어두우면 소나무 광술에 불을 밝히면서 그렇게 떡국 떡을 만들었던 모습이 사라지고 어느 시점부터 기계 방아간에서 가래 떡을 만들게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그 설 날이 다가오게 되면 어느 지방에서든지 대부분 그 떡국을 끓여 먹는 풍습이 전래가 되었다. 지방마다 그 풍습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설 날 떡국을 먹는 그 풍습은 동일한것 같다. 떡국 떡을 동그란 모양으로 썰어서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보통 만두를 빚어서 그 떡국에 넣고 소고기나 꿩고기 그리고 닭고기를 넣어서 끓여 먹는 그러한 풍습이 있었다.

북한 지역에서는 떡은 넣지 않고 만두만 끓여서 먹기도 하고 어느 지방에서는 만두는 전혀 넣지 않고 떡국 떡만 넣어서 끓여 먹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떡국 위에다 올려 넣는 그 고명으로는 옛날에도 그렇게 했겠지만 요즘도 소고기나 꿩고기와 닭고기고를 잘게 찢은 것과 계란으로 노른자와 흰자로 지단을 부쳐서 예쁘게 썰고 김 가루를 넣게 되면 떡국의 그 모양새도 예쁘고 맛을 돋구게 하였던 것 같았다. 요즘은 흔하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 흰 떡국을 쉽게 먹을수 있지만 옛날에는 그 떡국을 한번 먹을수 있는 유일한 그 기회가 일년에 한번 그 설날 뿐이었다. 설날 그 떡국 한 그릇을 먹게 되면 나이를 한살 더 먹게 된다고 하여서 귀하게 먹는 그 떡국 한 그릇이 곧 나이와 직결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가족이 함께 살면서 그 귀한 떡국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들이 생각난다. 설빔을 기다려 보기도 했지만 그만한 여유가 되지 못했던 것이 당시의 형편이었다. 겨우 목양말 한켤레가 설빔의 전부였다. 일백여 세대가 함께 살고 있는 동네에서 어른신들께 세배를 다니게 되면 그 세배 돈은 구경도 못했었다. 그 만큼 당시에 돈이 참 귀한 시대였다. 그렇게 어렵게 살았지만 그 명절을 기다리고 했던 이유는 맛있는 그 떡국을 먹게 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것이 유일한 낙이 아니었을까 한다. 요즘도 간혹 우리 주변의 이웃 국가들에게 전해 듣는 이야기중 그만큼 경제적 사정이 그만큼 어려워서 그 옛날 우리 사회와 같은 현상으로 그들만의 특별한 날만 기다리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는것 같다.

이제 하루 이틀이 지나게 되면 설 명절이 돌아오게 된다. 그렇게 혼잡한 교통에도 불구하고 고향을 찿아가고 했던 그 기억이 떠 오른다. 이제는 꽤 오랜 세월이 흐른 만큼 고향을 찿아가도 만나볼 부모님이나 어르신이 한분도 안계신다. 그런 반면 내 사랑하는 아들 딸들도 자기 가정들을 갖게 되어서 오히려 그 아이들이 나를 찿아오게 되었으니 그 옛날 설 명절의 풍습은 먼 추억으로만 남게 되는것 같아서 그러한 아쉬움도 적지 않은것 같다. 이제는 설 명절날 귀여운 내 손주 손녀들이 세배를 하게 되면 조금씩 줘야될 세배돈을 잘 준비해야 되는 것도 빼놓을수가 없게 된것 같다.

설 날 그 풍습과 정월 대보름까지의 토속적인 그 문화도 잊혀지지 않는다. 설날 이후 그 대보름이 되기까지 연날리기의 그 재미는 어디에 비교할수 없을 만큼 참 흥미가 컸었다. 하늘 높히 떠 있는 연이 바람이 부는 그 방향에 따라 연기를 부리기도 했다. 죄우로 흔들 거리기도 하고 앞과 뒤로 빙글 빙글 돌기도 하는 그 흥미는 일은 무엇과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달 맞이 놀이와 쥐불 놀이의 흥미도 잊혀지지 않는다. 대보름의 그 둥근 달이 떠 오르기 전에 높은 뒷산에 올라가 둥글게 떠 오르는 달을 보는 그 즐거움도 흥미가. 있었다. 설날과 정월 대보름의 그 놀이 문화에 대한 그 즐거움은 다시 우리 곁으로 찿아 오기가 어려울것 같다.
2018-02-13 17:43:57 / 61.38.100.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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