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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17강] 시창작 과정에서 언어의 기능-정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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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강] 시창작 과정에서 언어의 어떤 기능이 중시되나-정서성

글: 이상옥 교수. 시인

시에서 감정이나 정서라는 말을 섞어 쓰고 있는데, 근자에는 정서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인다. 감정은 인간이 사물(세계)을 대할 때 일어나는 마음의 어떤 상태를 일컫는 것이다. "감정이 풍부하면, 당신 시인 하면 되겠어"라든지 "감정이 그렇게 메말라서야 어찌 시를 쓸 수 있겠어" 따위의 말은 흔히 듣는 것이다. 이 말은 일면 타당성을 지닌다. 시인은 누구보다 사물에 대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리처즈가 강조한 시적 언어의 정서적 용법을 운위하지 않더라도 시의 언어는 객관적, 비개인적, 지시적, 논리적 의미를 전달하는데 관심을 두기보다는 주관적 정서를 표현하는데 더 관심을 기울인다.
서정시의 모든 정서는 자아의 내적 체험을 통해서 형성된 주관적 정서로 보는 것이다. 시창작자는 내가 사물에 느끼는 주관적 정서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에서 감동을 느끼는 것은 사물에 대한 시인의 개성적인, 정서적 반응에 기인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虛空) 중(中)에 헤여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主人)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西山) 마루에 걸리웠다.
사슴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山)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김소월, <초혼(招魂)>

이 시는 거의 전적으로 정서에 의존한 시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한 화자의 격렬한 정서적 반응이 이 시를 지배한다.
이처럼 시와 정서는 분리될 수 없을 만큼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래서 정서는 시의 본질이라고도 말하는 것이다.
한편, 정서적 반응도 사물에 대한 인식의 한 과정으로 본다. 일반적으로 사물의 인식체계는 감각레벨(감각)에서 감성레벨(감정), 그리고 지각레벨(지성)으로 상승하는 추상적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감각적 자극이 정리되어 거기서 어떤 심정의 주관적인 움직임이 일어나는 단계를 감성, 또는 감지의 단계라고 하고, 따라서 이 단계에서 감각 데이터는 감정레벨까지 올라가게 된다. 감성의 단계에서 지각의 레벨에까지 오르면 사유, 통일, 판단의 단계인 지성으로까지 상승하는 것이다.
-문덕수, <<오늘의 시작법>>에서

사람은 감각적 자극을 통하여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각과 정서도 매우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다.
앞 장에서는 감각적 표현 능력이 시인에게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기본적인 것이고 정서적 표현 능력은 그 우위에 있는 것으로도 본다. 서정주는 정서의 우위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감각이 오랫동안 종합 축적된 것- 잊어버리려 하였으나 잊혀지지 않는 고향이라든지 사랑 등이 있다면 그것은 정서의 경지다. 그러므로 감각의 시가 순간적이요, 향락정태(享樂情態)를 표현함에 반하여 정서의 시는 비교적 항구적 정태를 표현하려 한다. 아니 표현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한다.

여기서 서정주는 정서가 시창작의 동인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정서는 지속성을 띠는 감정임을 말한다. 감정과 정서가 혼용되고 있으나, 어떤 측면에서는 쾌, 불쾌 같은 간단한 감정이 마음 속의 어떤 이미지를 형성하여 복잡해지고, 그에 따라 격렬한 육체적 반응이 수반된 감정을 정서라고 구별하기도 한다. 어쨌든, 시에서 말하는 정서는 시인으로 하여금 표현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사무치는 그리움 같은 것이 될 것이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베어내여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신 날 밤이거든 구비구비 펴리라.

황진이의 시조는 얼마나 그리움의 정서를 잘 형상화하고 있는가.
그런데, 문제는 시가 정서의 표현이라고 하지만, 정서를 직접적으로 표출한다고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서도 스타일화되어야 한다.
황진이의 시조도 정서가 스타일화되어 있기 때문에 정서적 효과가 극대화 되었다. 이 시의 정서는 당신이 오시는 밤에는 당신과 함께 긴 밤을 지새우고 싶다는, 즉 간절한 그리움의 표현이다. "당신과 하룻밤이라도 함께 지새고 싶다"라는 단순한 정서를,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배어내여"처럼 시간을 시각화한다든지, 메타포를 구사하여 정서를 양식화한 것이기 때문에 이 시는 성공한 셈이다.
김소월의 <초혼>의 경우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토로하고, 감탄부호를 연발하고, 시어 반복의 빈도수가 많이 구사하고 있지만, 그것 자체가 하나의 전략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간과해서는 안 된다. 화자는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도 해보지 못했는데, 그만 사랑하던 사람이 저 세상으로 훌쩍 떠나버렸다. 그래서 통곡과 넋두리를 하게 되는데, 이는 화자가 정신을 놓쳐버린 형국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넋두리하고, 통곡하고, 또 넋두리하고, 통곡하는 식으로 계속 이어지는 것이, 이 시의 정서적 질서인데, 이같은 걷잡을 수 없는 정서적 폭발은 시라는 기본적 틀마저 깨뜨려버린 셈이다. 그런데, 시라는 정제된 그릇이 깨어져버림으로써 오히려, 통제불능의 비통함이 더 생생하게 드러나는 효과를 지닌다.
김소월의 <초혼>은 정서의 파탄 자체가 하나의 상징으로 작용함으로써 정서의 스타일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2006-02-09 19:3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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