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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20강] 시창작 과정에서 소재는 어떻게 가공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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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20강] 시창작 과정에서 소재는 어떻게 가공되는가

시는 소재를 필요로 한다. 좋은 소재는 좋은 시의 바탕질이라고 해도 좋다. 그러나 소재가 중요하지만, 소재 그 자체가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소재도 잘 가공되어야 빛을 발하게 된다.체험은 시의 중요한 소재가 된다. 산에 갔다고 하자, 그 산에서 특별한 느낌을 받았으면, 그 체험을 바탕으로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산이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하여 그 특별한 느낌을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이 시는 그 유명한 김소월의 이다. '산'과 '꽃'과 '작은 새'를 소재로 하여 고독하고도 순수한 삶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는 시이다. 산에 피어 있는 꽃을 화자는 보았다.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다. 혼자 있는 꽃이니, 참 외롭지 않겠는가. 혼자 피었다가 혼자 지는 꽃을 보면서 어쩌면, 화자 자신의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꽃이 좋아 산에서 우는 작은 새도 화자의 정서와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속절없이 피고 지는 꽃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화자나 작은 새는 시점은 거의 동일하다.
이 시의 소재로 등장하는 '산', '꽃', '작은 새'는 모두 시인의 상상력의 용광로 속에서 용해되어 새로운 뉘앙스를 드러내고 있다. 라는 시의 구조밖에 존재할 때와 이 시속에 존재할 때는 겉으로 보기에는 구별이 잘 안되지만, 화학적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흔히, 글짓기의 비유로 자주 활용되는 것이, 건축현장이다. 트럭에 실려 있는 모래와 콘크리트건물 구조 속의 모래는 엄청난 질적 변용이 일어난다. 건물의 구조물에 있는 모래는 트럭에 실려 있는 모래로 다시 되돌아갈 수 없다. 모래는 물과 시멘트 등과 배함되면서 트럭 위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존재로 변용된 것이다.
의 '산', '꽃', '작은 새'는 콘크리트 구조물 속의 모래처럼 그것들에게서 이전 '산', '꽃', '작은 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의 '꽃'은 산에 피어 있는 단순한 꽃이 아니라 화자의 존재의 표상으로 화한 것이다. '산'이나 '작은 새'도 마찬가지이다.
시의 소재는 시인의 상상력의 힘을 따라 리듬, 이미지, 비유, 상징, 화자 등과 만나 전혀 다른 존재로의 변이, 즉 예술적 변용을 겪게 되는 것이다.
부실 콘크리트 건축물은 트럭 위의 모래가 구축 구조물 속에서 변용되지 않고 모래 그대로 존재하는 경우가 아닌가. 이런 건축물들은 조만간 붕괴하게 되어 있다. 시도 마찬가지이다. 소재가 상상력의 용광로를 통과하여 예술적으로 변용되지 않을 때 그것은 아직 시f의 단계에 들어선 것은 아니다.
따라서 소재를 그대로 나열해 놓고 그것을 시라고 우겨서는 안 된다. 시와 소재는 분명히 다른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시의 소재가 체험이든 정서이든 사상이든 무엇이든지 그것은 가공되어져야 한다. 체험이 가공되지 않고 생경하게 표현되든, 정서가 생목소리로 직접 표현되든, 사상이 설교처럼 진술되든 그것은 아직 소재에 불과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극단적인 관념시나 낭만시, 혹은 리얼리즘시 등이 아직 소재에 불과한데 그것이 시라는 이름을 달고 발표되는 경우를 간혹 만난다. 20년대의 병적 낭만시나 카프시, 혹은 가까이 80년대의 노동시 같은 것에서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아니면, 지금도 많이 씌어지고 있는 소녀 취향의 많은 사랑시편들에게서 확인되는 바이다.

소재만으로서는 시가 안 되며, 소재가 될 수 있는 어떤 사물에서 느낀 감정이 아무리 열렬하고 절실하고 풍부하더라도 그것만으로서는 역시 시가 될 수는 없다. 만약에 소재나, 그 소재에서 느낀 열렬하고 풍부한 감정만으로 시가 될 수 있다면, 시인은 남편이나 자식의 죽음을 앞에 두고 하늘이라도 무너진 듯이 땅을 치고 통곡하는 시골 아낙네의 감정에 도저히 미칠 수 없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골 촌부의 비탄과 눈물과 불행을 그대로 시가 된다고는 할 수 없다.
-문덕수, 에서

라는 지적 역시 소재의 가공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시는 직접적 체험의 현장이 아니라 예술적 체험의 현장이어야 하는 것이다.
남편이나 자식의 죽음 앞에 통곡하는 슬픔이라는 정서는 소재이지 시는 아닌 것이다.
한편, 시의 소재는 언어라고 말할 수 있다. 의 소재인 산이나 꽃의 사물 자체가 소재가 아니라, 사물을 지칭하는 언어로 표현된 '산'과 '꽃'되기 때문에 시의 소재는 '언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상적 언어와 시적 언어의 차이를 분명히 알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아직 시의 소재에 불과한 일상적 언어가 시적 언어로 예술적 변용을 거치기 위해서는 일상어가 가공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았던, 시창작과정에서 시적 언어가 다양하게 기능하는 것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또한 앞으로 논의할 다양한 담론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범박하게 말해, 시창작 담론은 모두 소재에 불과한 일상적 언어를 시적 언어로 변용시키는 방법에 대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006-03-09 09:3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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