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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21강] 퍼소나(persona)를 잘 활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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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21강] 퍼소나(persona)를 잘 활용하자

앞에서 소재와 시의 차이를 이해해야 시를 제대로 창작할 수 있다는 논리로 강의를 진행해 왔다. 소재와 시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은 시창작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소재의 공간은 현실적 공간이고 시의 공간은 예술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적 공간 속의 시인과 시공간 속의 화자는 상당한 차이가 날 수 있음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무릇, 예술텍스트에서 발화의 주체인 화자를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데, 그것을 대부분 피상적 이해만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소설 읽는 재미 중 가장 큰 것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매혹적인 인물을 만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소설 창작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하나의 새로운 캐릭터 창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편의 소설공간 속에도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고, 그들은 각양각색의 캐릭터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시는 소설처럼 한편의 작품 속에 다양한 캐릭터를 드러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소설은 다중성의 목소리를 갖고 있지만, 시는 대부분 단일한 목소리를 표출하는 것으로 그친다.

靑馬는 가고
芝薰도 가고
그리고 洙暎의 永訣式
그날 아침에는 이상한 바람이 불었다.
그들이 없는
서울의 거리.
靑馬도 芝薰도 洙暎도
꿈에서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깨끗한 潛跡.
다만
鐘路二街에서
버스를 내리는 斗鎭을 만나
白晝路上에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어느 젊은 詩人의
出版記念會가 파한 밤거리를
南秀와 거닐고
宗吉은 어느날 아침에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고
어제 오늘은 차 값이 四十원
十五프로가 뛰었다.
-박목월,

이 시의 화자의 목소리는 박목월 그대로다. 목월은 청마, 지훈을 먼저 보내고, 그리고 수영의 영결식을 보았던 것이다. 그들이 떠나버린 서울의 거리는 참 허전하지 않았겠는가. 그런 가운데 청록파 시인의 하나인 두진을 만나 白晝路上에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고, 어느 젊은 시인의 출판기념회가 파한 밤거리를 남수와 거닐고, 그리고 어느날 종길과의 전화통화 등을 노래하고 있다. 목월은 지우들이 하나들 떠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쓸쓸한 심사를 노래한 것이다.
이 시는 목월의 목소리를 가감없이 그대로 전달해주고 있다. 목월의 육성을 통해 목월의 캐릭터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지금 읽어도 상당한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그것은 목월이 지우를 보내고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가 진솔하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진술이 시가 되는 것은 목월이라는 빼어난 캐릭터 때문으로 보인다. 무명 시인이 자신의 주변사를 넋두리처럼 표현한다고 그것이 시적 감동을 줄 수 있겠는가.
목월이라는 캐릭터는 이미, 일상성을 뛰어넘은 개성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개성적인 캐릭터를 구축하지 못한 시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본다.
매력적인 시인만이 시속에서 매력적인 캐릭터를 구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다 목월같은 카리스마를 지닌 시인일 수야 없지 않겠는가. 시가 예술공간이기 때문에 시속의 화자는 시인 자신의 캐릭터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시 속의 화자는 시인이 창조적 허구공간으로 형상화한 그 속에서 그 상황에 맞게 창조된 퍼소나(persona)이다. 따라서 속된 말로 별볼일없는 시인도 시속에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얼마든지 창조해낼 수 있다.
시창작에서 퍼소나를 어떻게 구축해야 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다. 화자, 즉 퍼소나는 시의 구조원리가 되기 때문이다. 시인이 어떤 영감을 받아 시를 쓰려고 한다면, 시인 자신의 정직한 목소리로만 노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시인 자신의 시적 의도를 보다 생생하게,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의도에 맞는 매력적인 퍼소나를 설계해야 한다. 물론, 박목월의 처럼 개성론의 입장에서 시인의 맨 얼굴, 맨 목소리로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으로 한정된다면 시의 공간은 축소되고, 단조로와질 것이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현실공간에서의 시인은 그렇게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에 시인 자신이 직접 시공간 속에 뛰어드는 일은 최대한 삼가해야 할 것으로 본다. 현실공간이 시적 공간으로 면모되기 위해서는 시인이 그 상황에 맞는 퍼소나를 취해야 하는 것임을 거듭 명심해 둘일이다.
현대시론에서는 시인과 시적 화자를 분리하는 몰개성론을 지지한다. 시인이 시적 의도를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시인이 때로는 하나님과 같은 전지전능자의 모습을 취할 수도 있고, 벌레처럼 하찮은 존재로 전락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근자에 서정주에 대한 담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즉, 서정주의 친일행적이나 군부독재시절의 부적절한 처신 문제로 입방아에 오르는 것이다. 시인 서정주가 창조한 시세계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만큼 그의 시적 성취를 인정하지만, 시인정신에 있어서는 회의하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시인 서정주와 시속의 화자인 퍼소나 사이에서 일어나는 질적 차이가 서정주 경우에는 유독 크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 아닌가 한다. 서정주와 퍼소나를 동일시하려고 하니까, 더 문제가 증폭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시인은 영화감독과 같은 존재가 아닌가 한다. 영화감독은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대변할 영화배우를 스카웃하듯이, 시인은 자신의 시적 메시지를 대변할 화자를 캐스팅하는 것이다. 영화감독이 유명배우를 스카웃하기 위해 거액의 제작비를 감수하는 것은 배우가 영화의 예술성이나 흥행을 거의 결정한다고 믿기 때문 아니겠는가.
그런데, 시인들은 시를 쓸 때, 영화감독처럼 그렇게 신중하게 화자를 설정하느냐 하면, 그렇지 못한 것이다. 대부분 시를 쓸 때 화자라는 개성적인 캐릭터를 통하여 표현한다는 생각보다 시인 자신의 목소리로 바로 표현하려는 의도를 지닌다. 이것이 큰 시창작 과정의 맹점이다.
김소월은 아마 퍼소나라는 개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 텐데, 그는 이별을 테마로 한 시들에서 거의가 다 여성화자의 모습을 취했다. 그것은 이별을 테마로 할 때는 여성의 목소리가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도 그는 타고난 시인이라고 볼 만하다.
시인이 화자를 자신의 시적 의도를 드러내기 위해 다양하게 변용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신나고 즐거운 일인가. 거지가 왕자가 될 수 있고, 왕자가 거지도 될 수 있는 자유자재의 변신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2006-03-09 09: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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