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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24강] 비유를 활용하자 - 직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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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24강] 비유를 활용하자-직유

비유의 개념과 효과를 알았으니, 이제는 비유를 활용하여 시를 지어보는 것이다. 비유의 가장 초보적인 형태는 직유가 아니겠는가.
직유는 원관념, 보조관념이 비유 지표(指標)인 매개어에 의하여 분명히 겉으로 드러나는 비유이다, 문자 그대로 직접적인 비유이다. 그러니까, 직유는 구사하기가 매우 쉽다. 지금, 언뜻 생각나는 것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 이소룡 영화가 굉장히 인기가 있었는데, 그 때 종종 이소룡의 몸짓과 괴성을 흥내내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특히, 이소룡을 유난히 좋아했다.
하루는 친구와 운동장에서 배구를 했던 것 같은데,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초등학생이 내 친구를 보고 "야, 이소룡 같다"고 했다. 초등학생이 무슨 직유를 알겠는가. -같다. 즉, 친구와 이소룡을 같다라는 매개어를 통해서 직접 연결시켰으니, 직유가 아니겠는가. 이처럼 직유는 일상 생활 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폭넓게 활용되는 것이다.
나는 최근에 김종해 시집 을 관심있게 읽었는데, 그 시집의 머리말도 관심을 끌었다. 그 머리말은 '이런 시가 좋다'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다.

나는 이런 시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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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갈증을 축여주는 생수 같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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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핍박받는 자의 숨소리, 때로는 칼날 같은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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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엉뚱하고 다양한 의미로 보이기까지 하는 선시禪詩 같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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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시가 정말 좋다.

좋은 시에 대한 짧은 언술 속에 '-같은'이라는 매개어를 활용한 직유를 몇 번이나 애용하고 있는 것이다. 김종해 시인이 직유를 특별히 좋아해서, 짧은 머리말에서 직유를 여러번 사용한 것인가. 그런 것은 아니다. 직유는 일상생활 속에서 누구나 폭넓게 활용하는 것이다. 그만큼 직유는 흔한 것이다. 누구나 다 사용할 수 있는 직유가 시에서 구사될 때는 조금은 특별해야 하지 않겠는가.
"생수 같은 시", "칼날 같은 목소리", "선시 같은 시"처럼 단순 직유 일변도라면, 그것이 일상생활 속의 직유와 차별화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단순 직유도 시에서 효용가치가 넓다. 뒷부분에 인용된 오규원의 만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직유가 단순하게 두 대상을 매개어로 연결하는 것으로 그치는 단순 직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직유는 서사적 직유(epic simile)처럼 보조관념이 확장될 수도 있는 것이다. 즉, 확장 직유도 가능한 것이다. 그건 나중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여기서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직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비유지표에 의하여 이질적인 두 대상이 유사성에 이끌려 결합되었다고 모두 직유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두 대상간의 심미적, 의미론적 발견과 인식이 전제되지 않는 것은 그것이 형식적으로 직유의 요건을 갖추었다손치더라도 비유로 볼 수 없는 것이다.
문덕수의 에 보면, 이에 대해 예를 들고 있다. 즉,

그는 그의 아버지처럼 건장하다

그녀는 그의 언니만큼 예쁘다

위의 두 경우는 비유의 요건은 갖추었지만, 그것이 의미발견의 인식이 결어되고, 평범한 일상어의 의미만 나타나 있기 때문에 직유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그 논거로 수사학 이론에 의하면 "문체는 '거짓'이 있는 법인데, 이러한 표현은 정직한 주장에 불과"하여 직유라는 수사로 볼 수 없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이 말은 직유에서 겉으로 드러난 형식적 요건 이상으로 심미적, 의미론적 발견과 인식이 중요성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지적은 시적 직유에 있어서는 금과옥조라고 해야 알 것이다.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세떼 대신 메아리만 쩡쩡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나희덕,

앞에서 단순 직유와 확장 직유에 대해 조금 언급했는데, 여기서 다시 재론해보기로 하면, 단순 직유는 아마, 두 대상이 한 행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단순 직유가 아니겠는가.
인용시는 단순 직유가 아니다. 즉, 시전체가 직유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다. 제1연과 2연은 "--그러했다"라는 매개어로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은가. 1연에서 서술한 것이, 얼어붙은 호수는 호수가 아니고, 호수는 부드러운 속살 같은 물로 가득해야 호수라는 인식이다. 그래서 얼어붙은 호수는 불빛도 산그림자도 담아내지를 못하고 제 단단함의 서슬만 빛나고 있을 뿐이고, 새떼조차 떠나버린 얼어붙은 호수는 더 이상 호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1연에서 상술한 호수의 얼어붙은 서사적 요소가 약간 가미된 이미지는 '네 이름을 부는 일'로 직유되면서 얼음처럼 차디찬 그대의 마음이 화자를 담지 못한다는 의미론적 발견으로 나타난다.
모든 비유가 그렇겠지만, 특히 직유는 -처럼, -듯이, 같이, -마냥, -하듯, -인양 등의 매개어를 두 대상간에 연결시킨다고 비유가 성립된다고 안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심미적, 의미론적 발견과 인식을 동반해야 한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쉽게 말해 새로움, 참신함, 신선함 등의 시인 특유의 개성이 담기어야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시쓰기의 출발은 직유의 연습부터 시작되어 할 것이다. 이 말을 하고 나니, 안도현의 에서 지적한 말이 떠오른다.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시집(詩集) 같은 여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쌍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오규원,

안도현은 를 읽고 한 번쯤 자기식대로 직유법 연습을 해 보지 않은 문학도가 있다면 그런 사람은 시인되기가 영 글렀다고 말하면서, 그는 "비스켓 같은 여자", "소주 같은 여자", "오징어 빨판 같은 여자", "촉촉한 빗물 같은 여자" ------, 이처럼 직유법 시범을 보이고 있다.
안도현의 지적이 아니라도,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직유를 잘 구사할 수 있도록 연습의 연습을 거듭해야 한다. 그것도 참신한 직유, 나아가 확장된 직유까지 연습해 보아야 할 것이다.
2006-03-09 09: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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