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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25강] 비유를 활용하자 -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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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25강] 비유를 활용하자 - 은유

은유가 곧장 비유와 같은 개념으로도 불린다. 흔히, 메타포라고 하지 않는가. 시와 메타포는 정말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은유는 치환은유(置換隱喩)와 병치은유( 置隱喩)로 나뉜다. 우리가 흔히 은유라고 할 때 대부분 치환은유를 말한다. 置換이라는 의미가 위치를 바꾸어놓다는 것이니, 결국 원관념이 보조관념으로 이동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비유법을 직유, 은유, 의인, 제유, 환유 따위로 구분하고 있지만, 이들은 모두 치환은유의 하위 유형으로 볼 수 있다. 자리바꿈이 직유와 은유는 물론이고, 사물에서 사람으로 이동하는 의인, 부분에서 전체로 이동하는 제유, 부분과 전체의 오고가기인 환유 등이 모두 원관념에서 보조관념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같은 이론적 문제를 깊이 논의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앞서 살펴본 직유와 차이점을 중심으로 詩作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를 알아보고자 한다. 직유는 '-처럼', '같이' 등의 매개어를 통하여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결합시키는 방식이기 때문에 비유의 구조가 선명하게 밖으로 드러나므로 명유(明喩)다. 그러나 은유는 축약된 직유가 된다. 다시 말해, 은유는 직유보다 비유의 구조요소들이 더 많이 숨겨져 있으므로 암유(暗喩)다. 은유는 직유보다 구성밀도가 강하고 암시성이 풍부하다고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은유가 어떤 사물에다 전혀 다른 사물에 속하는 이름을 전이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여기서 이름의 이동은 의미의 자리옮김이고, 이는 곧 새로운 의미의 창조다. 이런 관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은유만은 남에게서 배울 수 없는 것이며 바로 천재의 표징이라고까지 말했다.
절묘한 은유를 보면, 정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맞는 것이구나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꼭 천재만 은유를 구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용기 있는 자가 좋은 은유를 구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나는 용기 있는 자만 좋은 은유를 얻을 수 있다고 바꾸어 말하고 싶다. 그녀는 꽃처럼 아름답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거두절미하고 그녀는 꽃이다라고 말하기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전자인 직유는 존재의 유사성을 강조한 표현이 되지만, 후자의 은유는 두 대상을 동일시해버리는 것이다. 이질적인 두 대상을 동일시하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여성과 꽃은 두 대상의 유사한 속성, 즉 아름다움으로 얼마든지 연결될 수 있다. 이는 어느 정도의 과학적, 객관적 사유로도 해명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은유는 합리적이나 논리적인 과학적 객관적 사유를 넘어 직관과 상상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늘 과감하게 은유적 사고를 운용해보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좋겠다.
나는 최근 거의 매일, 한국문학서관의 홈에 오시열 시인이 올리는 '시의 향기로 여는 아침'을 즐겨 감상한다. 그것은 소개되는 시가 좋기도 하지만, 시를 소개하는 짧은 도입부로서의 인사말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는 다음과 같은 인사말로 시작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오시열입니다. 어제 밤하늘을 보았습니다. 피곤함에 하늘도 시려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시린 하늘에 별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오늘은 잠시 마음의 별을 찾아보시는 건 어떨지요? 좋은 하루 되세요.

이 글이 짧은 산문이지만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이면에 내재된 은유구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화자의 피곤이, 하늘도 시려 있을 것 같다는 명유적 사유에서 발전하여, 시린 하늘의 별, 마음의 별로 아름답게 암유되는 것이다.
좋은 산문이든 좋은 시든 그 이면에는 은유적 사유, 특히 암유적 사유가 개입되어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평생을 쇠갈퀴 같은 손으로
흙만 파며 살아오신 할머니의
열 손가락엔 지문(指紋)이 없다.
반질반질 닳은
호밋자루,
낫자루처럼 그렇게
닳아서 없어진 것일까.
사람의 손가락에 새겨진
나선형의 지문을
영혼이 들어오고 나간 흔적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하지만 난
지문 없는 손을 잡고도
할머니의 영혼의 숨결을
뜨겁게 느끼곤 했다.
그 쇠칼퀴 같은 할머니의 손엔
가끔씩 붙들리고 싶지만
벌써 쭈글쭈글한
우주배꼽으로
돌아가신 지 오래다.
오늘도 난 볼록 튀어나온
내 배꼽을 만지며
그리움을 달랜다.
-고진하,

이 시도 은유구조로 되어 있다. 평생을 쇠갈퀴 같은 손으로 흙만 파며 살아오신 할머니의 열 손가락엔 지문이 없다. 할머니의 닳은 지문이 할머니의 헌신을 환기한다. 할머니의 지문없는 손을 보면, 반질반질한 호밋자루, 낫자루를 생각한다. 또한 사람의 손가락에 새겨진 나선형의 지문은 영혼이 들어오고 나간 흔적이라고 누가 말한 것을 떠올리며, 지문 없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서도 화자는 할머니의 영혼의 숨결을 뜨겁게 느끼곤 했다. 이제 할머니가 그립지만, 할머니는 이미 우주배꼽으로 돌아가신 지 오래다. 오늘도 화자는 볼록 튀어나온 자신의 배꼽을 만지며, 우주배꼽(무덤)으로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한다. 이 시의 압권은 우주배꼽이라는 절묘한 메타포다. 이 메타포는 시 전체로 흐르는 은유적 사유의 정점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우주배꼽이 암유이기 때문에 내포성도 극대화되고 있다. 배꼽은 생명선인 탯줄이 연결되는 것이기에 우주배꼽은 할머니가 하늘나라의 새로운 생명세계로 돌아가섰다는 의미로도 읽혀진다. 주지하다시피 은유가 확장되면 상징에 이르지 않는가. 이 시의 메타포는 거의 상징수준의 내포성을 지니고 있다.
은유는 시의 한 기법으로 활용되지만, 역시 위의 시처럼 시의 전체구조를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은유는 추상에서 구상으로 이동한다. 그것은 시가 추상적 관념을 이미지로 형상화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추상적 관념이 구체적인 대상으로 이동하여 선명한 이미지를 획득하면 성공적인 은유가 되는 것 같다. 그러나 구상에 구상으로, 추상으로 구상으로, 추상에서 추상으로 얼마든지 다양하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에 제약이 있을 수가 없다. 은유는 한 대상에서 다른 대상으로 이동이 일어나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내는데, 그것은 다양한 형태로 일어난다.
2006-03-09 09: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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