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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26강] 비유를 활용하자 - 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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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26강] 비유를 활용하자 - 의인
글/ 이상옥 교수. 시인___

앞서 지적한 바대로 은유는 의인, 제유, 환유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의인법도 은유의 특별한 한 종류라고 보는데, 그것은 사물이 사람으로 자리 이동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흔히들 의인법(personification)은 서정시의 본질과 원형을 가장 잘 구현하는 비유라고 본다. 그것은 서정시가 본래 세계의 자아화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이 사물이나 세계를 자신 속으로 끌여들여 대상을 인격화하는 데서 세계의 자아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이런 딱딱한 이론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사물을 사람으로 이동시킨다는 것이다. 꽃이 웃는다든지, 꽃이 말을 한다든지, 꽃이 수줍어한다든지 하는 것은 의인적 사유가 아닌가. 인격이 없는 사물에 인격을 부여하고, 사람처럼 사유하게 만들 수 있는 의인법은 얼마나 매력적인 비유인가.
시를 시답게 만드는데 굉장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의인화이다. 시는 태초의 언어, 원시의 언어를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원시시대에는 시적 언어와 일상적 언어가 분리되지 않았다고 본다. 원시시대에는 언어의 주술성이 일상적 언어에서도 존재했다. 현대문명은 자연과 인간을 분리시킨다. 그러나 원시시대에는 자연과 인간은 오늘날보다는 훨씬 밀착되어 있었다. 오래 전 한국인들도 오늘의 자연관과는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는 인터넷에서 찾은 이란 글의 일부를 읽어보자.

아득한 옛날 그 세대 인간들은 자아(인간)와 우주(자연)를 어떠한 형태로 바라보았을까요? 아마 그들은 벌판에서 수풀이 자라 숲을 이루고 하늘에서 내린 비가 호수를 이루듯이 자신들 또한 그 우주의 일부분으로 태어나 생활하다 그 일부분으로 돌아간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애니미즘적인 세계관이 발생하였을 것이고 자신들이 먹고 자고 숨쉬는 것처럼 우주도 그러할 것이고 인간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처럼 우주도 그와 같다고 믿었겠지요. 이것은 우주를 타자로 보지 않고 자아와 우주가 합일된 통일체로 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주만물 속에는 영혼이 존재 할 수밖에 없으며 자신이 그 곳에서 나와 그곳으로 돌아가듯이 자연은 인간인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며 인간보다 더 강한 존재로 인식했을 터입니다. 돌이나 나무의 숭배는 이러한 사고의 산물일 것입니다.

정령사상을 잘 보여주는 글이다. 자아와 우주는 타자와의 관계가 아니라 자아와 우주는 합일된 통일체로써 세계의 자아화가 이루어진 시적 세계가 아닐 수 없다. 현대인들은 자연과 분리됨으로써 시적 세계를 잃어버린 것이다.
자아와 세계의 새로운 합일된 통일체를 추구하는 것이 시적 한 지향이라고 보면, 의인법이야말로 태초의 세계로 돌아가는, 즉 시적 세계로 돌아가는 가장 유효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세루팡 종이의 구김 소리로
鋪道의 낙엽을
바람이 일으키려 애쓰지만
가을비,
한꺼번에 몰려가는 초조의 떼.
빌딩의 한모퉁이 처박아 놓은
낙엽의.
가을비의 打撲傷에
함께 울부짖는 立看板을
흔드는 바람,
사람들은 가까스로
우산을 구부리고 집으로 내닫는
초조의 떼,
이제 추위가 당신에게도 찾아들어
가을비 옷에 젖듯
몸속에 스며들면
들어갈 차비를 해야겠지
두꺼운 갑옷 속으로 어서
발등을 적시는 궂은비 속에
궂어 겨울 속으로 달음질하는
포도 위의 눈물의 떼.
-김규화,

이 시의 아름다움은 "세루팡 종이의 구김 소리로 鋪道의 낙엽을 바람이 일으키려 애쓰지만 가을비, 한꺼번에 몰려가는 초조의 떼."라는 시행 속에 비밀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의인화이다. 가을비는 사물이다. 정서나 생각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세루팡 종이의 구김 소리로 포도의 낙엽을 바람이 일으키려 '애쓴다'고 의인화하면서 그것을 못 일어나게 가을비가 내리고, 그 가을비는 초조의 떼라는 정서를 가진 존재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 시의 구조는 의인화에 의해서 지탱된다. 가을비는 초조의 떼로 전이되고, 이것은 또한 변이 되어 사람 자체로, 그리고 눈물의 떼로 다양하게 변주되면서, 이 시가 이미지즘 시로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함민복,

이 시는 어떤가. 나는 어느 글에서 이 시의 성공은 메타포의 성공에 기인한다고 말한 바 있다.

우선 이 시의 절묘한 메타포에 시선이 머문다. 그리움을 땅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떼의 이미지로, 하늘에서 내리치는 번개의 이미지로 그리고 있지 않는가. 하늘이 땅을 그리워하고 땅이 하늘을 그리워하는 꼴이다. 그리움이라는 관념적 거리가 하늘과 땅이라는 공간적 거리로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그리움이란 거리의 미학이면서 또한 어긋남의 미학이다. 그런데, 어긋남의 미학은 당신과 내가 하나로 포개져도 나의 심장과 너의 심장은 끝내 포개질 수 없는 운명적 그리움에서 기인한다.
그것을 함민복은 선천성 그리움이라고 했다.

하늘과 땅에다 그리움이라는 정서를 투입하고 있는 것도 의인화이지만, 날아오르는 세떼의 이미지를 그리움이라고 의인화하지 않는가.
무정한 사물을 유정한 존재로, 마치 죽은 자를 살리는 것 같은 엄청난 정서적 효과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의인법이다. 그러니, 시에서 의인법을 어찌 활용하지 않겠는가.
의인법의 반대도 역시 시적 효과를 지닌다. 흔히, 결정법이라고도 한다. 유치환은 에서 자신을 무정물인 바위의 존재로 이동시킴으로써 현실과의 단절의지를 극대화시킨 바 있다. 사람을 사물로 이동시킴으로써 시적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2006-03-09 09:5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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