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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27강] 비유를 활용하자 - 병치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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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27강] 비유를 활용하자 - 병치은유
글/ 이상옥 교수. 시인___

 병치는 은유의 새로운 형식이다. 치환은유와는 달리 모방적 인자를 배제하고 보조관념을 조합하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휠라이트는 병치은유가 의미론적 전이가 신선한 방법으로 어떤 경험(실제적이거나 상상적인)의 특수성을 통과함으로써 오직 병치에 의해서만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말하면, 좀 막연하다. 병치라는 한자의 뜻부터 새겨보는 편이 오히려 낫겠다. 병치는 두 가지 이상을 한 곳에 나란히 두거나 설치한다는 뜻이다. 치환은유는 유사성에 의해 한 대상이 다른 대상으로 이동함하는, 즉 자리 이동에 터를 둔 형식이지만, 병치은유는 자리 이동이 아니라 함께 놓아두는 방식이다. 두 개 이상의 사물들을 함께 놓아두면, 그것들이 서로 기능하여, 뭔가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내는 것이다. 병치은유를 생각하면, 청춘남녀의 사랑이 떠오른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따로 존재할 때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두 사람이 어느 자리에 함께 하면, 사랑이 싹트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두 남녀는 서로가 새로운 존재가 된 듯하지 않은가. 그들은 이미 사랑을 알기 이전의 눈빛이 아닐 것이다. 두 존재가 만남으로써 새로운 존재가 된다. 그뿐인가, 두 남녀가 함께 하면, 사랑이 싹터서 그것이 결실을 맺으면 결혼을 하게 되지 않는가. 결혼을 하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의 결실인 아이를 얻게 되는 것이다. 서로 떨어져 있으면 남과 여로 존재하면, 이 둘이 결합하면 존재론적 의미변환이 이루어진 부부와, 자식이라는 새로운 의미체로 바뀌는 것이다.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옛사람들은 남녀 칠세 부동석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봉건적인 유교사회에서는 어떻게 하든지 남녀를 함께 있게 하지 못하도록 했다. 남녀가 만나면 자칫 사고(?)가 발생한다고 보았기 때문 아니겠는가.
이것이 병치은유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하다. 휠라이트는 병치은유를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가상적 자연현상을 예로 든다. 수소원자와 산소원자가 합치되기 전에는 물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이 두 원자가 결합하여 물이 존재하게 되었는다는 논리에서, 자연계의 요소들이 새로운 결합으로 새로운 자질이 생성되듯이 시에도 이전에 없었던 방법으로 언어와 이미지들을 병치시킴으로써 새로운 의미가 생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휠라이트는 병치에 의해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병치은유의 시적 유용성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병치은유도 의미변환, 즉 의미이동이 이루어짐으로써 은유의 한 종류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박명용은 에서 필자의 시 을 병치은유의 예로 들고서,

리모콘을 누르면
피그림이 아롱아롱
처음엔 걸프전쟁이더니
아르메니아공화국 분규사태로
대학생 분신과 분신
화염병
최루탄
세상은 온통 흙빛임
죽음은 노래하고 춤추고
붉은 피를 토함
도처에 전쟁과 눈물과 절망과 그리고

종국엔 흙으로 만나 뿌리를 내리고
꽃이 핌
-

'분신', '화염병'을 빼고는 '흙빛', '피', '눈물', '절망' 등 연계성이 없는 이질적인 이미지들을 나란히 병치하여 원관념인 '꽃'을 새롭게 드러내고 있다고 전제하고, 이처럼 동질성을 배제한 채 이질적인 이미지들의 병치는 제각기 독립된 존재의 표상으로 새로운 세계를 형성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질적인 보조관념들의 조합에 의해서 또한 보조관념들과는 유사성도 없는 존재인 꽃의 세계를 새롭게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병치은유의 한 예로 제시한 것이다.
필자가 이 시를 쓸 때 병치은유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은 아니다. 단지, 꽃이라는 존재를 형상화하기 위해서 대양한 사물들을 조합함으로써 드러내고자 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시창작에서 병치은유의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실, 병치은유는 다소 막연한 개념이다. 병치에 의해 새로운 의미가 획득된다는 관점이지만, 그 새로운 의미라는 개념 자체도 상당히 막연하고, 그래서 그 실체를 선명하게 파악하기도 힘들다.
여기서 흔히, 병치은유의 한 모델로 자주 등장하는 조향의 을 읽어보자.

모래 밭에서
受話器
女人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비둘기와 소녀들의 랑데부우
그 위에
손을 흔드는 파아란 기폭들,
나비는
起重機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 층계를 헤아린다
-

이 시는 두 상황이 병치되어 나타난다. 1연의 이절적인 4개의 이미지들의 병치와 2연의 '나비'와 '기중기의 허리'의 병치가 그것이다. 이들 병치에 의해서 분명하게 의미론적 변용은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것은 역시 막연한 실체로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치환은유가 '의미의 시'라면, 병치은유는 '존재의 시'를 지향한다고 한다. 이런 모호한 상황 때문에 병치은유의 범위를 어떻게 잡을 것인지, 병치은유의 실체가 무엇인지 확연하게 입증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병치은유가 무엇이냐에 대한 물음보다는 이질적인 대상들이 만남으로써 새로운 의미체가 창조될 수 있다는 쪽에 무게를 두면 될 것이다. 에서 전화기는 일반적으로 실내에 있는 것(헨드폰 제외)인데, 즉 방안에 놓인 전화기가 아니라 모래밭과 전화기가 병치되고, 나아가 '女人의 허벅지', '낙지의 까아만 그림자' 등과도 병치됨으로써 굉장한 존재로 변용되지 않는가. 나비도 일반적으로는 풀잎이나 꽃잎과 함께 놓이는 것이지만, 기중기의 허리와 병치되고 있지 않은가. 둘다 상당히 병치이다. 이질적인 대상들의 병치를 통한 효과가 이 시의 주된 미의식으로 드러난다.
치환은유가 한 대상을 다른 대상으로 자리이동시킴으로써 시적 효과를 거둔다면, 병치은유는 둘 이상의 대상들을 함께 병치함으로써 시적 효과를 거두는 것임을 다시 확인해두자. 이 시처럼 유사성의 병치가 아닌 이질적인 대상들의 병치를 통하여 시적 효과를 노리는 방법을 병치은유라는 이름으로 이해하면 되고, 이것이 시창작에 널리 활용될 수 있는 유효한 기법인 것만은 분명하다.
아래 시처럼 자리이동과 조합의 양면적 효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것이다.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을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욱을 아는가.

질주하는 전율과
전율 끝에 단말마(斷末魔)*를 꿈꾸는
벼랑의 직립(直立)
그 위에 다시 벼랑은 솟는다.

그대 아는가
석탄기(石炭紀)의 종말을
그때 하늘 높이 날으던
한 마리 장수잠자리의 추락(墜落)을.

나의 자랑은 자멸(自滅)이다.
무수한 복안(複眼)들이
그 무수한 수정체(水晶體)가 한꺼번에
박살나는 맹목(盲目)의 눈보라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퍼런 빛줄기
2억 년 묵은 이 칼자욱을 아는가.
-이형기,

이 시는 치환은유와 병치은유가 함께 어우러져 시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원관념 폭포가 '시퍼런 칼자국', '질주하는 전율', '벼랑의 직립', '석탄기의 종말', '장수잠자리의 추락' 등의 자리이동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이질적인 보조관념들의 조합으로 폭포가 새로운 의미체로 부상되기도 한다.
2006-03-09 10: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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