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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29강] 상징을 활용하자-개인적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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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29강] 상징을 활용하자-개인적 상징

상징에는 관습적 상징이 있는 반면, 개인적이 상징이 있다. 개인적 상징이 문학적 상징이다.
시인이라는 칭호를 받으려면 적어도 인구에 회자하는 개인적 상징 하나는 빚어내어야 할 것 같다. 노천명을 사슴의 시인, 조병화를 의자의 시인이라고 칭한다면, 사슴이나 의자의 이미지를 통해 독창적인 상징을 빚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최근 쓴 어느 비평문에서 시조 시인 이상범 시인을 다루었는데, 그 글의 핵심은 이상범이 별의 시인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이상범은 이상범만의 독창적인 별의 상징을 구사한 때문이다.
개인적 상징은 한 개인의 특수한 체험에 의해 독창적으로 채택된 상징이다. 이 말은 그 상징은 그 상징을 구사한 개별 시인만의 독창적인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이 상징은 하나의 작품에만 나타나는 단일한 상징이거나 특정 시인의 여러 작품에서 특수한 의미로 두루 사용하는 것이다. 김춘수 시인 같으면, 그의 여러 시에 '꽃'이라는 이미지가 특수한 의미로 두루 사용되고 있지 않은가.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족속이었나보다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데 산을 쳐다본다
-노천명,

이 시의 사슴은 노천명이 빚은 개인적 상징으로 보아도 좋다. '사슴'이라는 이미지가 환기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뚜렷하지는 않다. 만약 뚜렷하다면, 그것은 비유에 가까울 것이다. 개인적 상징이 아닌, 관습적 상징은 진정한 의미의 상징이 아니다. 관습적 상징은 한 사회에서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씌여져서 두루 인정되기 때문에 원관념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다. 흔히 예시되는 비둘기 → 평화, 십자가 → 기독교, 월계관 → 승리 등을 보면, 이 상징은 이미 고정되어 있는 것이다. 원관념이 비록 숨어 있다할지라도 표면적으로만 그렇지 이미 확정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비유에 가깝지 않은가.
그러나 노천명의 사슴은 노천명만의 사슴이다. 노천명 개인에 의해 만들어낸 새로운 상징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사슴의 원관념이 다소 불확실하지만, 그것은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있다. 꿈꾸는 자아라든지, 아니면 이상적 자아라든지 아니면, 아니면 당대 신여성들의 표상이라든지 다양하게 설정해볼 수가 있다.
시인은 개인적 상징을 빚는 사람이다라고 정의해도 좋을 듯하다. 우리가 남의 시를 함부로 속단하여 재단할 수 없는 것은 그 시속에 내재한 개인적 상징 때문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개인적 상징은 독자가 완벽하게 해독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시인은 하나의 이미지에다 상징적 조작을 가하여 다양한 의미군을 거느리게 장치를 해둔다. 그것이 상징이 아닌가. 그런데, 그 시인의 의도를 일반 독자들이 잘 파악하지 못하고, 함부로 시가 되니 안 되니 하는 말을 하게 된다. 물론, 시가 안 되는 경우가 있고, 그것은 비판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단순하게 보이는 시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깊은 개인적 상징물인 경우에는 시가 되는 것이다.
시인이 자신의 시에 대해 개인적 상징의 확신이 있다면, 당분간 자신의 시를 누가 인정하지 않아도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다시금 강조하며 전제하는 바, 자신의 시에 대한 강한 개인적 상징에 믿음이 있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

여기서부터 길도 묵상에 잠긴다
미루나무 숲 속에 숨어 있는
하얗게 굽은 길

여름 땡볕의 고요를 헤쳐가는
그림자
과수원을 지날 때,
말매미소리 쏟아져
유치원 이름표를 단 계집아이 하나
흠칫 발걸음을 멈춘다
손녀의 손목을 잡고
힘겹게 힘겹게 비탈길을 오르는 할머니
먼저 죽은 아들을 탓할 수도 없다
묘지에 이르기 전에
이미 적막한 길

길끝에 묘지들이 매달려 있다
안간힘을 쓰듯
- 오정국,

나는 최근 이 시를 읽고 좋아서 내가 읽은 사랑시 코너에 올리고, 내가 연재하는 신문에도 소개한 바 있다. 이 시가 그냥 보기에는 평범한 시이다. 그것은 할머니가 죽은 아들의 묘소를 손녀와 함께 찾아가는 내용이다. 물론, 미루나무 숲 속에 숨어 있는 하얗게 굽은 길 같은 약간 감각적인 이미지가 있지만, 그렇게 빼어난 수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시가 좋게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 시 전체가 하나의 개인적 상징으로 나아가는 것 때문이 아닌가. 이 시는 하나의 압축된 서사로서 이것이 삶의 다양한 의미를 환기하는 것이다.
사실, 시 전체가 하나의 개인적 상징이 되어야 시가 되는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하거니와, 자기 작품에 개인적 상징을 빚어낼 수 있다면, 시의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2006-06-20 21:3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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