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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38강] 시의 내재율 획득도 득음(得音)과 같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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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38강] 시의 내재율 획득도 득음(得音)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시의 내재율을 과학적으로 규명하여 그 원리를 익히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리꾼이 득음(得音)하듯이 스스로 내재율을 창출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 정도가 아닐까 한다. 판소리 득음에 대하여 인터넷에서 읽은 것을 여기 옮겨왔다.

판소리에서 소리의 최고경지에 도달한 것을 '득음(得音)'이라고 한다. 판소리의 창법은 표현력이 강하고 극적(劇的)인 소리를 내는데는 좋은 창법이지만 반면에 성대와 발성기관에 무리를 주기도 하여 초보자들은 목이 쉬고, 아랫배가 당기는 등의 신체적인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한다. 실제로 득음을 하기 위해 소리꾼들은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오랜 기간 머물면서 '산(山)공부'를 한다는데, 연습과정에서 목이 쉬고 그리고 쉰 목에서 피가 터져 나오고 그런 후 아물고 또 다시 피가 터져 나오고 하는 그런 과정들을 겪는다고 한다. 또 목의 염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인분(人糞)삭인 물까지도 마셨다고 한다.

득음을 하기 위해서는 산속에 들어가 오랜 기간 머물며 산(山)공부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목이 쉬고, 쉰 목에서 피가 터져 나오고 그것이 아물고 또 다시 피가 터져 나오는 혹독한 과정을 겪는다는 것이다. 아마, 이런 과정에서는 스스로의 피나는 노력만이 있을 뿐이지 않겠는가. 어느 스승이 대신 목이 쉬고 피 터져 줄 것인가.
시의 개성적인 내재율의 확보는 이같은 득음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 같다. 앞에서 제시한 기본적인 시적 내재율의 방법을 연마한 후에는 그것을 바탕으로 스스로 자신의 호흡과 리듬을 창출해 내어야 할 것이다.
무릇 모든 공부가 그렇듯이 처음에는, 자신이 본받고 싶은 시를 읽고 또 읽어야 할 것이다. 가령, 김소월 같은 리듬감이 좋은 시를 많이 읽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외워보도록 한다. 김소월의 리듬이 나의 리듬으로 육화될 만큼 읽고 또 읽어보는 것이다.
동국대학에서 서정주에게 시를 배운 강희근은 처음에 자신의 시에서 서정주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말은 그가 서정주의 시를 좋아해서 서정주를 읽고 또 읽은 결과, 그것이 자신도 모르게 시를 쓸 때 미당의 호흡이 자신의 시로 나타난 때문이 아니겠는가. 강희근은 많은 세월이 지나 자신이 서정주로부터 거의 벗어난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어차피 시의 내재율도 선배 시인에게서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이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그것은 산(山)공부로 득음하는 소리꾼처럼 자신만의 목소리를 얻기 위한 피나는 수련을 거쳐 전무후무한 자신만의 개성적인 내재율을 획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선배와의 차별화는 불가피하다.
자신이 존경하는 시인, 자신의 시의 텍스트가 되었던 시인들을 처음에는 자신도 모르게 모방하게 되어 있지만, 종국에는 그것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좀 머리를 식히는 의미에서, 다음의 신문기사((2002. 2. 6)를 읽어보자.

지난해(2001) 창작과비평 여름호를 통해 미당 서정주 시인을 직설적으로 비판했던 고은 시인이 「창비 웹매거진」(www.changbi.com) 8호에서 「미당 담론」을 포함한 자신의 문학관을 언급했다.

그는 이시영 시인과의 대담에서 자신의 「담론」으로 불거졌던 일련의 논쟁을 마무리하려는 듯 비교적 상세하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이 시인은 『「미당담론」에서 김수영의 말을 인용해서 서정주 시의 토속성과 함께 「늘어지는 서정성」이 싫다고 하셨는데, 고 선생님 시의 곳곳에 특히 「소년의 노래」 같은 곳에 미당 시의 특유의 화법이 잔상처럼 늠실거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누구를 강력히 부정하면서 어느정도 닮는 것인지...』라고 물어 봤다.

「소년의 노래」에서 『저 바다가/ 저처럼 날이날마다 조상도 없이 물결치고 있는 것은/ 오래/ 하늘이 되고 싶기 때문이리라』같은 구절은 서정주의 「바위와 蘭草꽃」이라는 시의 『바위가 저렇게 몇 千年씩을/ 침묵으로만 웅크리고 앉아 있으니/ 蘭草는 답답해서 꽃피는 거라』와 너무나 흡사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고 시인은 『내 불행은 시를 하나도 외우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또한 남의 시를 많이 읽지 않는 결점이 있죠』라며 운을 뗀 뒤, 『(시를)쓸 때는 전혀 이전의 시가 나를 짓누르거나 이런 경우는 전혀 없죠.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완전히 방치되어 있는 황야, 거기에 처음으로 서 있는 존재, 이런 것이 나의 시를 이해하는 단초가 되지 않을까 할 수 있겠네요』라며 응수했다.

자신의 「미당 담론」이후, 『선배 시인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어두운 욕구」에서 나온 「시적 아비의 살해」일 뿐』이라는 일각의 비판에 대한 부정의 의미를 내포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내 허영은 서사에 있죠. 굳이 내게 콤플렉스가 하나 있다면 호메로스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다른 시인에 대한 콤플렉스는 거의 없습니다』라며 미당 영향론을 거듭 부정한 그는 『나 자신은 과거에 선가(禪家)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늘 있어온 「게송(偈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중략) 어떤 의미에서는 전 생애에 걸쳐서 단 한번 읊어지는 백조의 노래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런 것이 있어온 데 나는 익숙한 편이었죠』라며 말을 맺었다.

쉬어가는 의미에서 길게 인용했지만, 고은은 스승인 미당의 영향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 이 글의 요지이다. 주지하다시피 미당은 고은의 시의 아버지이다. 그런데, 고은이 시적 아비를 살해했다는 혹독한 비판을 받는 것을 마다 않고 미당과의 선을 긋는 것은 자신의 독자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스처일 것이다.
논의가 조금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간 것 같아도, 결국 시의 내재율은 스스로 개성적인 리듬을 구축에 있음을 인지하면 될 것이다.
2006-06-22 14: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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