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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39강] 시의 행갈이가 리듬과 상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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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39강] 시의 행갈이가 리듬과 상관없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현대시는 음악성보다는 이미지 같은 다른 쪽에 더 많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따라서 시 하면 음악이라고 하는 등식은 현대시에서 그렇게 설득력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앞에서 행갈이와 리듬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처럼 말하기도 했지만, 현대시에서는 이것이 절대적인 명제가 될 없는 것이다.
현대시는 리듬의 단위로 행갈이를 하는 것만큼 의미나 이미지 단위로 행갈이가 이루어지고 있다. 김춘수는 일찍이 리듬, 의미, 이미지 단위로 행갈이를 설명한 바 있는데, 최근에는 여기다 힘줌의 작은 단위를 첨가하여 시의 행갈이를 운위하기도 한다.(강희근, , 조태일, )
여기서는 리듬의 단위로 구분하는 방법은 앞서 살펴보았기 때문에 나머지를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의미단위의 행갈이: 나는 최근 라는 시를 쓴 적이 있다. 이 시는 모두 한 행이 종결어미로 끝나고 있다. 따라서, 각 행은 하나의 의미단위로 놓여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행위, 동작이 하나의 센테스로 묶여져 있기 때문에 한 행은 의미의 소단위가 된 것이다.

제목을 새 슬픔이라고 붙였습니다
제목을 잘 못 붙였습니다
'슬픔' 대신 '통곡'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시를 위해 '광야'라고 또 바꿨습니다
어제 산 릴케의 을 오늘 읽은 탓이 아닙니다
가수 김수희의 '광야'를 들은 때문도 아닙니다
슬픈 음조가 볼을 타고 마구 흐르도록 내버려두렵니다
폐부를 들썩이는 보이지 않는 힘을 제지하지도 않으렵니다
분출하는 용암을 어찌 손바닥으로 막을 수 있겠습니까
흘러서 굳어지겠지요
운명의 추가 평형을 잃었습니다
이제 이육사도, 김수희도 아닌 광야를 가야합니다
돌장승으로 서지 않도록 직선으로 가야합니다
돌아보지도 않아야 합니다
-

물론, 의미단위로 행을 구분한다고 이 시처럼 각각 종결어미로 끝나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시의 행갈이는 시의 내재율처럼 역시 그것을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규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리듬단위든 의미단위든 이미지단위든 간에 행을 구분하는 중심축이 리듬이나 의미나 이미지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지단위의 행갈이: 리듬이나 의미보다 이미지가 부각되게 행갈이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기왓골을



옮아 앉는
實存의 새가 놀고 있다
-박남수, 에서

비눌
돋힌
海峽은
배암의 잔등
처럼 살아났고
아롱진 아라비아의 의상을 둘른 젊은 산맥들.
-김기림, 에서

위의 두 편의 시는 이미지단위로 행갈이하는 경우의 해당하는 작품으로 흔히 예시된다. '쫑'은 비둘기가 옮아가는 시각적 이미지 단위이다. 그리고 '비눌', '돋힌', '海峽은', '배암의 잔등' 등도 역시 이미지단위가 아닌가. 이들 두편은 이미지단위로 행갈이가 이루어진 예가 되지만, 그러나 "實存의 새가 놀고 있다"(), "아롱진 아라비아의 의상을 둘른 젊은 산맥들"() 등은 이미지단위라기보다 의미단위로 볼 수 있다. 이처럼 행갈이가 리듬, 의미, 이미지단위로 완백하게 갈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시를 쓰는 입장에서 어디에다 초점을 두느냐 정도로 이미지면, 이미지 의미면 의미라고 염두에 두고 행갈이를 하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강조단위의 행갈이: 리듬, 의미, 이미지의 자연스러운 단위를 오히려 낯설게 함으로써 시적 긴장을 유발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니까, 하나의 행이 앞행이나 뒷행에 붙는 것이 자연스러운데도 그 자연스러움을 깨뜨리는 식의 행갈이가 된다.

이상에서 행갈이의 몇 가지 방법을 살펴보았지만, 이것 역시 시의 내재율처럼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시의 행갈이가 리듬, 의미, 이미지, 강조 등도 분리되어 나타난다기보다도 오히려 이런 다양성이 어우러져서 시의 행갈이에 기능한다고 보는 편이 옳다.
강조하거니와 위에서 제시한 행갈이의 기준은 시인이 무의식 중에 행하는 수많은 행갈이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려는 하나의 試論으로 가볍게 보아야지 이 기준이 시의 행갈이에 교과서나 되는 듯이 절대화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06-06-22 14: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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