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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40강] 첫 행은 시의 성패와 구조를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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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40강] 첫 행은 시의 성패와 구조를 결정할 만큼 중요하다

시를 쓸 때 시작이 되는 첫 행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첫 행이 좋으면 시의 절반은 성공이다. 이 말은 반대로 첫 행의 실패는 절반의 실패가 된다. 시가 절반이나 실패했으면 그것은 결국 시창작의 실패로 귀결된다. 따라서, 첫 행은 시의 성패를 좌우하는 바로미터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입시에서 수능이 어렵게 출제되어 많은 수험생들이 곤혹을 치렀는데, 특히 1교시의 언어영역이 어려워서 더 많은 학생들이 수능자체를 포기하는 사태가 유발되었다. 1교시 시험결과에 절망하니까, 나머지 시험을 아예 포기하는 사태가 속출한 것이다. 그러나 수능시험은 비록 1교시시험을 잘못 치러도 나머지 시험을 정신을 차리고 잘 치르면 만회할 수가 없는 것도 아니다.
시창작의 경우는 첫 행이 제대로 잘 출발하지 못하면, 나머지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해도 좋다. 생명체가 신경세포나 혈관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듯이 시도 유기체로서의 행과 행, 연과 연, 낱말과 낱말 등이 서로 어우러져서 상호 유기적 관계망을 형성하는 것이다. 특히, 시는 더욱 다층적 관계 그물망으로 얽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의 첫 행이 부실하면 어떻게 나머지 행들이 성공할 수가 있겠는가. 시의 관계망은 상상력을 핏줄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 상상력도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첫 행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 시의 첫 행은 맨 처음 착상된 이미지이거나 시의 중심의미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게 된다.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비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인지도 모른다

- 사랑하는 것은
사랑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

유치환의 시 중에서 많이 알려진 시들을 보면, 거의가 첫 행이 맨 처음 착상된 이미지이거나 시의 중심의미로 이루어지고 있다. "-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는 이 시의 중심의미이다. '사랑하는 것은'이 이 시의 첫 행으로서 이 시의 탯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시의 시상은 '사랑하는 것은'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기 때문에 화자는 자연스럽게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라고 시상을 전개해나가는 것이다. 첫 행은 정말 시상의 뿌리이고 탯줄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유치환의 도 보면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시작하고 있지 않은가. 이 첫 행은 역시 의 기반이 되는 중심 이미지가 아닌가. '아우성'이 '손수건'을 낳고 또한 '손수건'은 또다른 이미지를 계속 생산해내는 것이다.
시의 중심이 첫 행에 놓이는 것은 시작의 중요성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을 상기해도 좋다.

첫사랑 그 사람은
입맞춘 다음엔
고개를 못 들었네.
나도 딴 곳을 보고 있었네.

비단올 머리칼
하늘 속에 살랑살랑
햇미역 냄새를 흘리고,
그 냄새 어느덧
마음 아파라,
내 손에도 묻어 있었네.

오, 부끄러움이여, 몸부림이여,
골짜기에서 흘려보내는
실개천을 보아라,
물비늘 쓴 채 물살은 울고 있고,
우는 물살 따라
달빛도 포개어진 채 울고 있었네.
-박재삼,

이 시도 첫 행이 바로 이 시의 제목으로 드러나고 있다. 제목은 바로 시의 얼굴이고 심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역시 시작, 처음이 매우 중요하다. 시의 첫 출발인 첫 행에 따라 시의 구조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시의 첫행이 꼭 중심의미나 이미지로 출발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중심부보다는 주변부로 시작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목욕을 할 때 바로 심장부를 씻는 것이 아니라 손끝이나 발끝부터 물을 적시면서 몸을 씻어야 하는 것이지, 처음부터 중심부를 급작스럽게 건드리면 심장마비가 올 수 있는 것처럼 시상의 전개도 이와 같을 수도 있는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유념해야 하지만 용두사미라는 말도 역시 유념해야 한다.

이제 나의 별로 돌아가야 할 시각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지상에서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어머니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나의 별로 돌아가기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부르고 싶은 이름
어·머·니
-김종해,

이 시의 중심 이미지는 어머니이다. 그 어머니는 지상에서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의 중심부는 2연이나 3연에 집중되어 있다. 이 시의 첫 행은 중심부로 들어가는 도입부에 해당한다. 처럼 중심을 뒤에다 두고 첫 행은 가볍게 시작해도 좋은 시가 되는 경우는 흔하다.
시에서 사건을 다루는 경우에는 사건의 시작으로 첫 행을 삼을 수도 있고, 계절 같으면 봄을 시의 첫 행에 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건의 시작은 역시, 그 사건의 실마리가 되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만, 사건의 시작이 사건의 중심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대개 사건이 진행되다가 중반 이후에나 클라이맥스에 도달하지 않은가. 모든 시의 첫 행이 중심부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사건의 자연적 질서대로 꼭 시적 출발이 이루어질 필요도 없다. 역전이나 반전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시의 첫 행은 가능하면 중심의미나 이미지로 시작하면 무난한 편이나 때로는 시의 변방지대부터 서서히 중심부로 이행하는 경우에는 시의 첫 행이 가볍게 처리될 수도 없지 않다.
시의 첫 행이 주변부로 가볍게 시작하면, 시의 구조는 아무래도 점층적 구조가 될 것이다. 의미의 중심이 중간이나 끝에 오게 되니까 시의 무게의 추는 중후반부로 기울게 된다. 시의 첫 행이 중심부로 시작하든 주변부로 시작하든 시의 구조를 결정함은 물론이고, 결과적으로 시의 성패까지 좌우하는 것이다.
2006-06-22 14: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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