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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42강] 시는 혁명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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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42강] 시는 혁명을 꿈꾼다, 그래야 한다

나는 앞의 강의에서 "과격한 실험은 시의 혁명이다. 그렇다면, 그만한 명분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별스런 명분도 없이 시도때도 없이 선배시인들이 했다고 자신도 흉내를 내는 수준에 그친다면, 그 결과는 시를 살해하는 것 외는 아무 의미도 없을 터이다"라고 말했지만, 혁명을 꿈꾸지 않는 사람이 어찌 시인이 될 수 있겠는가. 내가 앞에서 말한 강의내용은 다 잊어버리기 바란다. 그리고 지금 시의 혁명을 꿈꾸기 바란다.
앞 강의에서는 주로 시인 이상이나 황지우처럼 시문법을 과격하게 파괴한 것-시의 형식적 혁명'에 대해서 한정하여 말한 것 같다. 그러나 시의 혁명은 보다 광범위하게 일어난다.

이 세상 여러 곳을 돌아다녀 본 한 중년 신사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에는 참 신기로운 것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살아간다는 원숭이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지금도 이 세상 어느, 숲에 가면 주먹 크기만한 작은 원숭들이 흉포한 맹수들의 이빨에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나뭇가지에 흡사 과일처럼 매달려 산다고 한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먹는 무섭기만 한 땅에서 힘없는 작은 원숭이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이란 고작 피가 거꾸로 흐는 고통을 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일까?
그러나 바람이 불면 바람에 흔들리면서 표범이나 삵괭이 눈치를 피하며 사는 그것들은 때때로 자시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 소낙비처럼 산사태처럼 최후의 수단으로 나무에서 쏟아져내려 그 무서운 삵괭이와 표범을 깔아덮쳐 죽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김명수,

이 시는 1982년 에 발표한 것이다. 80년대 초반의 정치적 상황이 이 시의 콘텍스트다. 그렇다면, 이 시가 알레고리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압제 권력에 대한 민중적 혁명을 꿈꾸는 시가 분명하다. 이처럼 시는 형식적 측면이 아닌, 실제적 혁명을 꿈꾸기도 하는 것이다.
이상이나 황지우가 형식파괴를 감행한 것 같은 과격 실험주의만큼 강렬한 시적 혁명적 상황이 메시지 편중주의적 경향이다. 특히, 유신이나 5공시대처럼 언론이 재갈 물린 상황에서 지식인의 침묵을 강요하던 시대에서는 시는 메시지 혁명의 나팔을 불어야 했다. 이 때는 생목소리로 현실을 비판만 해도 시가 되었다. 는 알레고리라는 미적 장치라도 갖추었지만, 그냥 정치적 구호처럼 노래해도 시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오, 불온한 시대여......
시는 혁명적 상황에서 찾아온다. 혁명이라고 하니까, 군사적 혁명 같은 거창한 혁명만 혁명라고 생각하기 말기를 바란다. 형식을 파괴하고 언어의 칼날에 피를 묻히는 것만이 혁명이라고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눈물이 흐르는 것도 정서의 폭발로서 감정의 혁명이다. 호수 같은 평화로운 눈동자에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은 그것은 정서의 海溢이 아니고 무엇인가. 海溢은 지진·화산의 폭발 또는 바다 위의 폭풍우 따위로, 바다의 큰물결이 갑자기 일어나 육지를 넘치는 일이다. 거짓 눈물도, 가면적 눈물도 있기는 하지만, 진실한 눈물은 가슴속에서 지진·화산의 폭발이 일어날 때 그 결과물로 나타나는 것이 눈물이다.
나는 어제 조수미의 이라는 뮤직비디오를 보았다. 명성황후 역의 이미연의 연기와 조수미의 목소리가 내 감정에 해일을 불러왔다.
시적 혁명은 이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쉬이 찾아올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조수미'을 테마로 한 편의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시인이라면, 정서의 혁명이든 언어의 혁명이든 형식의 혁명이든 메시지의 혁명이든 시대·역사의 혁명이든 혁명을 꿈꾸는 것이다. 이상이나 황지우(과격 실험주의), 혹은 백무산이나 박노해(메시지 편중주의자) 같은 시인들만이 혁명의 피냄새를 풍기는 것은 아니다. 어느 시인에게나 혁명의 피냄새가 난다.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 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겠네.

저것 봐, 저것 봐
너보다도 나보다도
그 기뿐 첫사랑 산골물 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가는
소리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겠네.
-박재삼,

박재삼은 우리시의 전통 서정시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다면, 박재삼은 시의 온건·보수주의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을 답습한 시인라는 의미가 된다. 모던한 시인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 시는 서정적 자아와 자연 사이의 교감에서 시적 긴장이 일어나고 그 긴장은 울음이나 눈물이라는 이미지로 귀결된다고 본다.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서정시에는 혁명의 피냄새가 나지 않는 것인가.
나는 어느 세미나에서 라는 테마로 말하면서 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이 작품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50년대를 대표하는 전통서정시 계열이다. 김소월, 김영랑, 서정주, 박목월 등의 서정시 계보에 속하면서 서러운 정서를 특유의 가락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같은 시적 정서는 일상적 정서를 뛰어넘는다. 다시 말해, 보다 높은 수준에 도달한 정서적 울림이 나타난다.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서정시는 독특한 리듬, 이미지, 어조, 비유 등을 통하여 일상적 언어체계를 일탈하여 새로운 미적 질서를 구축함으로써, 일상적 언어 체계에서 맛볼 수 없는 새로운 정서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이렇게 말한 의도는, 시가 미적 투쟁양식이라는 명제 안에 모더니즘시나 현실참여시만 아니라 전통서정시도 수용되는 것임을 입증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 무릇 시는 미적 투쟁양식이고, 조금 과격하게 말하면, 시는 혁명양식이다. 온건·보수주의 시인이라도 혁명을 꿈꾼다.
전통서정시인들이 어떻게 혁명을 꿈꾸는가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신서정'이라는 용어이다. '신서정'은 서정에 대한 차별이고, 결별이고 투쟁이고, 좀 과격하게 말하면 서정의 혁명이 아닌가. 전통서정시인은 최소한 일상적 정서(일례로 들면 예대중가요의 정서 같은 것)에 대해서라도 혁명을 꿈꾼다. 아니면, 기존 시인이 구축한 '서정'에 대해서 '신서정'으로 혁명을 꿈꾸는 것이다.
혁명을 꿈꾸지 않는 시인은 시인이 아니다. 그러나 시의 혁명은 쿠테타적 혁명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언어의 혁명, 정서의 혁명, 형식의 혁명, 리듬의 혁명, 이미지의 혁명...........
그래서 시인은 아무도 부르지 않은 노래를 처음 부르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全人未踏의 길을 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가지 않은 새벽에 길을 가는 자이다.
그래서 첫 눈길을 만드는 자이다.
2006-06-22 14: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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