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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43강] 시의 혁명을 꿈꾸기 전에 알아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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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43강] 시의 혁명을 꿈꾸기 전에 알아둘 일이 있다

오늘의 시론이나 시창작방법론은 무척 발달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거개가 서구의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시인들은 서구시론에 기대어 시적 실험이나 혁명을 감행하려 한다.
나의 것 남의 것을 따진다는 것이 부질없는 노릇인 지구촌 시대, 시공이 현저히 좁혀진 이 세계화 시대에 편협하게 굴 것 뭐 있겠는가.그러나 한 번 집고 넘어가야 한다.
어두운 시절에 구사되던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말이 있지 않았던가. 이 말은 서구의 민주주의가 이 땅에 들어와서 이상한 괴물로 돌변한 것을 가리킨다. 저쪽에 있을 때는 극상품이던 것이, 이쪽에 와서 이상하게 변질되었던 것이 아닌가.
시창작이라는 골치 아픈 문제를 잠시 잊어버리고 학생시절 배웠던, 저 인구에 회자하는 橘化爲枳라는 고사를 즐겁게 읽어보자.
이 고사는 "내잡(內雜)" 하(下)에 나온다.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재상 안자가 장차 초나라에 도착하려고 했다. 초나라 왕은 이 소식을 듣고 주위에 있는 신하들에게 말했다. "안연은 제나라의 달변 가인데, 지금 이 곳으로 오고 있소. 나는 그를 모욕하려고 하오. 어떤 방법이 있겠소?"
주위에 있던 자가 말했다.
"그가 이 곳으로 오면 신이 한 사람을 결박하여 왕 앞으로 데려오기를 청합니다."
왕이 말했다.
"어떤 사람이오?"
"제나라 사람입니다"
무엇을 잘못 했소?"
"도적 질을 했습니다"
초나라 왕은 그렇게 하도록 허락했다.
잠시 후 안자가 도착했다.
초나라 왕은 안자에게 주연을 베풀어 주었다.
주연이 한창 무르익었을 때, 두 명의 관리가 한 사람을 포박하여 왕의 앞으로 데려왔다.
왕이 말했다.
"결박당한 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제나라 사람인데, 도적질을 했습니다."
왕은 안자를 보고 말했다.
"제나라 사람은 진실로 도적질을 잘하는군."
안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귤이 회남에서 나면 귤이 되지만, 회북에서 나면 탱자가 된다고 들었습니다.
잎은 서로 비슷하지만 그 과실의 맛은 다릅니다.
그러한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물과 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백성들 중 제나라에서 나고 성장한 자는 도적질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초나라로 들어오면 도적질을 합니다.
초나라의 물과 땅이 백성들로 하여금 도적질을 잘 하게 하는 것입니다."
왕은 웃으면서 말했다.
"성인은 농담을 하지 않는다고 하오. 과인이 오히려 부끄럽군요."
제나라 출신의 죄수를 안자에게 보여 줌으로써 안자의 명성을 눌러 보려던 초왕의 계획은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위의 고사는 우리의 정치적 토양이 아직 미성숙한 상태여서 민주주의라는 극상품이 이 땅에서는 제대로 꽃피우지 못한 비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서구의 시론이 이 땅에서 제대로 꽃피우지 못한 것이, 우리의 문화적, 언어적 풍토와 서구의 그것이 달라서 그런 것이기에 위의 고사가 이 땅의 시적 풍토를 이해하는데도, 정치적 경우처럼 이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혹시 오해할까 하는 노파심에서 부연하지 않을 수 없다. 서구보다 우리의 시적 풍토나 토양이 열악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서구는 우수하고, 우리는 열등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적 환경이 서구와 우리가 다르다는 점에서만, 이 고사가 비유체로 읽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둔다.
즉, 우리 시가 서구의 시론의 일방적 영향을 받은 해괴망측(駭怪罔測)한 시들이 없지 않은데, 그것은 서구와 우리의 시적 환경, 특히 언어적 환경에 차이에 기인한 것일테다. 서구의 시론은 서구의 시적 풍토 하에서 빛나고 그 우수성이 드러나는 것이지, 우리 시적환경에서는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많지 않겠는가. 서구의 시론은 이 땅의 시적 토양에는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그 만큼 부작용도 컸던 것이다.
회남에서는 귤이던 것이, 회북에서는 탱자가 되는 이치는 서구의 시적 풍토와 우리 풍토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생경한 서구 이론에 기대어 시적 모험, 실험을 하기에 앞서, 이 땅에서 꽃 피운 시의 미학부터 섭렵해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시적 자양분으로 삼아야 할 우리 시들이 많이 있다. 그 자양분을 섭취하기 위해서 그 시의 미의식이나 창작원리를 숙지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자양분으로 삼아야 할 시 중에는 서구 시론의 영향을 받아 꽃 피운 것도, 아니면 선배 시인의 영향을 받아 꽃 피운 것도, 아니면 우리 고전 시가의 영향을 받아 꽃 피운 것도 있을 것이다. 개 중에는 혹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서구의 탱자를 가져다 우리의 귤로 만든 작품도 있을 것이다.
어떻든 간에 이들 작품은 이제 우리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꽃 피운 것들이기 때문에 서구의 생경한 시론과는 다르다. 이 들 작품 속에는 우리의 것(서구시론에 영향을 받았다손치더라도)이 된 活着詩論(자의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임)이 이미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활착시론은 이미 검증된, 우리의 시적 토양에 뿌리를 내린 것이기에 시창작에 곧바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땅에서 모국어로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이 우리의 活着詩論을 습득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어떻게 시적 모험, 시적 혁명을 감행하겠는가. 活着詩論을 자양분으로 취한 후에 시적 모험을 하든지, 혁명을 하든지 해야 할 것이다.(서구시론이 활착시론으로 뿌리내리지 못하면, 그것은 실제 우리 시창작에 별 도움도 주지 못할 것이다.)
이 땅 시의 하늘을 찬연하게 수놓은 아름다운 별 같은 작품들 속에 내재한 活着詩論을, 당분간 추출해 보도록 하겠다.
2006-06-22 14: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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