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목
|
[시창작 4강] 詩란 무엇인가 - 객관론의 관점 |
|
|
이름
|
기독문학 |
|
|
홈페이지
|
|
|
|
첨부화일
|
|
|
|
|
[문학 4강] 시가 무엇인지부터 알고 시작하자-객관론의 관점
강좌/ 이상옥 교수 (문학박사. 시인)
표현론이 시인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객관론은 시 텍스트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시라는 텍스트 자체를 독립된 형식이나 구조로 보는 것이다. 시=시인이라고 보는 표현론이나 시=세계(우주 혹은 사회와 역사 등)라고 보는 모방론과는 달리 시는 시인의 생산물도 아니고 세계의 산물도 아니고 그냥 하나의 형식이나 구조로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작품에서 작가나 독자 및 세계와의 관계를 차단하고 작품 자체만을 자율적, 자족적인 존재로 보려려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시는 정서의 표출이 아니라 정서로부터의 도피이고, 개성의 표출이 아니라 개성으로부터의 도피라고 보는 엘리어트는 대표적인 몰개성론의 시론가라고 볼 수 있는데, 엘리어트처럼 시인과 시를 분리하여 생각하는 몰개성론은 객관론의 관점이다. 물론, 앞서 지적한 것처럼 시는 세계나 독자와도 분리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는 하나의 창조적 허구라고 볼 수 있다. 졸저 <<현대시와 투명한 언어>>에서 '시는 창조적 허구'라는 관점에서 아래와 같이 지적한 바 있다.
시는 창조적 허구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시는 진실해야 한다라는 말을 오해해서 시가 체험을 진실하게 기록해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시적 리얼리티는 역시 소설처럼 개연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시인이 형상화한 시적 공간은 현실공간이 아니라 예술적 공간에다 풀어놓는다. 시인이 형상화한 시적 공간은 현실공간이 아니라 예술적 공간이다.
-<중략>- 그렇다면 시인은 영화감독처럼 하나의 예술감독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감독이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드러낼 수 있는 영화배우를 스카웃하듯이. 시인은 자신의 시적 메시지를 대변할 화자를 캐스팅하는 것이다.
시인은 시적 충동이 떠오를 때 그것을 표현할 인물을 선택하는데, 그 인물이 바로 퍼소나이다. 즉, 허구적 인물인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시도 하나의 예술임을 전제로 할 때, 창조적 픽션이 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시인의 상상력으로 무한한 창조의 세계를 펼칠 수 있는 것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김소월, <진달래꽃>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 작품도 일종의 창조적 픽션이라고 볼 수 있다. 김소월은 남자이지만, 화자는 이별을 당한 여성이다. 물론, 김소월이 여성화자라는 탈을 쓰고 김소월 자신의 정서를 표현한다고 볼 수 있지만, 엄격하게 따지면, 이 작품도 하나의 픽션이라고 볼 수 있다. 여성화자를 빌어서 김소월 자신의 처지를 표현했다손치더라도 어조나 이별의 몸짓 등은 김소월이 자신의 이별의 정서를 더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상당히 조작한 것임에 틀림없다.
어떻게 보면, 표현론의 입장에서 이 시를 읽을 수도 있지만, 이 작품은 김소월과 화자가 일치하지 않는 점을 보면, 객관론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을 만약 표현론의 입장에서 김소월 자신의 생생한 남성적 목소리와 자신의 이별의 상황을 솔직하게 드러내었더라면, 이 시는 어쩌면 오늘날처럼 인구에 회자하는 명시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김소월은 자신의 정서를 더 감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오히려 자신의 정서로부터 도피한 것이고, 자신의 정서를 대변할 인물도 자신이 아니라 허구적 인물을 설정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시인은 비록, 자신의 사상과 정서와 동떨어지더라도 예술적 효과를 위해서는 허구적 인물과 허구적 상황을 설정하여, 현실을 조작할 수 있는 것이다.
객관론의 입장에서는 시 자체가 얼마나 구조적으로 아름답고 감동적이냐가 중요한 것이지, 작품이 시인이나 역사적 현실과 일치하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이 작품을 모방론의 입장에서 보면, 비판의 소지가 많다. 실제로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혹평하기도 한다. 암울한 일제시대에 그 시대정신을 반영하지 못한 작품으로 평가절하는 것이다. 모방론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문학은 그 시대나 역사의 반영이라고 본다면, 암울한 시대에 이렇게 한가하게 '모란'을 노래할 수 있는가라고 의혹의 눈길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객관론에서 보면, 이 작품은 좋은 작품인 것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주변상황, 즉 시인이나 세계나 독자와 분리되어 시 자체의 형식이나 구조가 좋으면 좋은 작품으로 보는 것이다.
객관론에서 보면, 시는 시인이나 세계나 독자와 상관없이 자율적 미적 구조를 갖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
|
| 2005-11-10 16:19:32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