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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수필의 퇴고, 그 고단한 즐거움
이름
이상렬
홈페이지
첨부화일

퇴고, 그 고단한 즐거움

곽 흥 렬

일단 붓을 들기만 했다 하면 단번에 일필휘지로 갈겨 버리고 다시는 거들떠보지 않는다고 호기를 부리는 작가가 있다. 그것도 글쓰기 동호회의 공식적인 모임자리에서.

나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한편으론 재주 한번 기막히게 좋다고 은근한 부러움을 가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그 거침없이 당당한 태도에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설령 사실이 그러하다고 할지라도 - 물론 절대 그럴 리가 없다며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지만 - 여러 사람 앞에서는 마땅히 삼갔어야 할 말이 아닌가 한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내뱉는지 나는 그 의중을 헤아리기가 힘들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라면 자신의 맵짜지 못한 천성을 고백한 것일 터이고, 은근히 글재주를 과시하기 위함이라면 덜 여문 치기를 스스로 증명해 보이는 셈이다.

무릇 퇴고에서만큼은 모름지기 겸손할 일이다.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구양수(歐陽修)는 마음에 차는 글귀 하나를 얻기 위해 수십 매의 원고를 버리면서까지 고치고 또 고쳤다고 했다. 구양수 같은 천하의 대문장가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문단의 말석에 겨우 이름 석자를 올려놓고 있는 나 같은 애송이작가가 어련하랴.

독자가 있기에 작가란 그 존재가치를 얻는다. 따라서 성실한 퇴고는 작가로서 지녀야 할,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해야 옳겠다. 나는 이런 생각으로 작품 한 편을 탈고하려면 줄잡아 서른 번은 손질을 한다. 어떤 때는 그 횟수가 자그마치 쉰 번을 넘어서는 경우도 있다. 고치고 또 고치고……, 이젠 다 됐다고 만족해했던 작품일지라도 한동안 묵혀 두었다가 다시 꺼내어 들여다보면 어딘가에서 흠결이 발견되는 수가 허다하다. 그럴 때면 내심 안도의 마음이 든다. 아, 이걸 재삼 세세히 살피지 아니하고 세상에 내놓았더라면……. 한번 뱉어 버린 말은 도로 주워 담을 수가 없듯이 일단 세상에 내놓은 작품은 다시 거두어들일 수가 없지 않은가.

글은 무엇보다 정교함이 그 생명이다. 장인(匠人)이 한 땀 한 땀 혼을 쏟아 공예품을 빚어내듯, 작가는 한 자 한 자 정성을 기울여 글을 다듬어야 한다. 주술의 호응관계, 문장들의 적절한 길이 배분, 불필요한 어구의 중복, 동일한 서술어의 반복, 앞뒤 어절의 순서, 단어의 적합성, 시제의 일치 여부 등 눈여겨 살펴야 하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가운데서도 동어반복은 퇴고의 과정에서 솎아내지 않으면 아니 될 가장 끈질긴 잡초이다. 수십 번을 읽고 고쳐 읽어도 도무지 눈에 뜨이지 않다가 마지막 순간에 발견했을 때의 그 고단한 즐거움이란…….

퇴고는 그 속성상 아무리 거듭 해도 지나침이 없다. 떡의 고물은 치면 칠수록 입자가 보드라워지고, 글의 퇴고는 하면 할수록 문맥이 매끄러워지는 법이다. 이것이 퇴고가 지니는 중요성이라고 하겠다.

재주가 모자라면 대신 성실로 채울 일이다. 나는 본시 탁월한 글재주를 타고나지 못한 까닭에 부지런한 퇴고로 그 모자라는 능력을 벌충하는 데 힘을 쏟으려 노력하고 있다. 이것이 독자를 배려하는 최소한의 작가적 양심이 아닐까 한다.

2011-12-23 11:3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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