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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수필쓰기의 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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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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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쓰기의 요령

좋은 글을 쓰는 방법엔 왕도가 없는 법이며 대체적으로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多想)을 들고 있다.
독자에 따라서 좋은 글에 대한 개념과 느낌이 천차만별일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조건과 범주를 설정한다는 것도 한계와 구속을 만들어 오히려 좋은 글이
나오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굳이 ‘좋은 수필’의 조건을 들어보라고 한다면,
개인적인 관점과 취향임을 전제로 보편성에 의거하여 의견을 개진해 볼 수 밖에 없다.

‘좋은 글’이란 대체 어떤 것인가?
한 번만이라도 더 읽고 싶은 글,
마음에 느낌과 인상이 남아있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글은 감동, 새로움, 흥미, 지식, 정서, 교훈, 평화, 용기, 지혜를 주며
'독자들의 인생에 가치와 의미와 깨달음을 준다. '

글을 읽을 때 독자가 체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면 흥미와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풍부한 상상력과 느낌을 주는 글이라면 작품 속으로 끌려든다.
한 번도 대하지 않았던 낱말 하나가 신선감을 주는 경우라도 읽는 보람을 느낀다.
작자의 안목으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해석한 글을 볼 때는 경탄하게 된다.
독자가 생각하고 느끼지 못한 것, 상상하지 못한 것을 발견하고
얻은 글에는 감탄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유머와 해학으로 독자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글에는 즐거움과 통쾌함이 있다.
예리한 통찰력과 비판정신을 보이는 글에는 가슴을 여미게 한다.

마음이 맑아지고 인격에서 향기가 나는 글을 좋아한다.
자랑, 과시, 설득, 교도의 자세 보다는
겸허, 온화, 경청, 감동을 동반한 수필을 읽길 좋아한다.

수필을 읽는 효용성 중에 개인적 체험의 공유화(共有化),
체험의 사회적인 확대를 들 수 있다.

사소하고 평범한 체험에서 금싸레기 같은 경이와 감동을 발견할 줄 알며,
인생에 대한 의미부여를 통해 독자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수필이 좋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체험일지라도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를 보여주는
개성, 독자성, 창의성이 있는 수필을 읽고 싶어한다.
새로움, 지적 흥미, 정서감, 감동, 진.선.미(眞.善.美)를
제공하는 수필을 읽고 싶어한다.

좋은 수필이 되기 위한 조건을 명확히 설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보다 좋은 수필이 되기 위한 범주나 개념에 대해 논의할 필요성을 느낀다.

1. 기록과 수필

기록은 사실의 객관적인 서술이다.
주관적인 진술을 배제한다.
인간의 삶과 인생을 그리는 데 있어선
사실의 전말을 서술하는 것 만으론 만족스럽지 못하다.
사실과 행위에 대한 기록의 차원을 넘어 자신의
느낌과 견해를 표현하고 싶어한다.

수필의 구성에 있어서도 체험(사실)과 느낌(주관)을 어떻게 배분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일기, 기행문에 있어서도 사실 그대로를 쓴 것이라면, 기록문에 불과하다.
작자가 겪은 체험담, 에피소드, 일 등을 사실대로만 써 놓은 글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물론 기록문은 그 자체로서 가치성이 있는 것이지만 문학작품은 아닌 것이다.
문학은 체험과 상상으로 작가가 발견한 인생의 이치와 진리, 깨달음을 형상화한 것이다.
개성과 독자성과 창의성에 의한 의미부여와 가치창출이 있어야 한다.

수필은 체험(사실)을 토대로 인생과 발견과 의미를 담는 그릇인 만큼,
어디까지나 작자의 느낌과 함께 해석이 있어야 한다.

(1) 체험의 서술

(2) 체험 + 느낌

(3) 체험 + 느낌 + 인생과 결부한 의미부여

(4) 체험 + 느낌 + 인생과 결부한 의미부여 + 감동

체험과 느낌의 배분 문제에 있어서 반드시 어떤 것이 옳고 그르다곤 할 수 없다.
소재 및 주제에 다라서 달라질 수 았을 것이며,
작가의 개성과 구성 기법에 따라서 달리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어느 쪽으로 치우치는 것보다는 조화가 있는 쪽이
더 좋은 효과를 얻는 경우가 많다.


①은 자신이 겪은 대로 쓴 것이어서 기록문에 불과하다.

② 수필이 되려면 체험과 느낌이 조화를 이뤄야 함을 말한다.
체험이 많고 느낌이 적을 땐 정서감이 부족하여 딱딱하게 느껴지고,
체험이 적고 느낌이 많은 경우엔 추상적이고 현실감의 결여를 느끼게 한다.

③의 수준이면 수필에 진입한다.
수필은 자신의 체험을 통해 인생의 발견과 의미를 창출하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체험을 통한 인생의 의미부여가 필요하다.

④의 경우엔 ‘감동’을 주문하고 있다.
수필이 자신의 체험을 소재로 한 글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나 인생의 의미를 일깨우고 읽는 보람을
안겨 주기 위해선 ‘감동’이 있어야 한다.
‘감동’은 문학성의 핵심 요소이다.

수필은 삶의 문학이다.
수필쓰기는 자신의 삶을 가치롭게 꽃피우는 자각과 의미 부여의 행위이다.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의미의 꽃으로 피워낼 수 있을까,
이것이 수필을 쓰는 핵심이며 궁극적 목표가 아닐 수 없다.


2. 신변잡기와 수필

수필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소재)으로 인생의 발견과 의미를 형상화하는
문학장르라는 점에서, 신변잡사가 본령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수필은 인생의 발견과 탐구, 인생의 의미와 가치부여를 통해
인생 미학을 찾는 글이므로 자연스레 신변기, 개인사, 가족사 등으로부터
시작되고 있고 이는 수필문학의 한 속성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삶의 양태는 개인적인 차이가 있을 뿐,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수필집을 일별해 보면 대개의 경우, 소재와 주제가 엇비슷하고 신변잡기로
채워 놓아 어느 수필집이나 백화점 진열식을 방불케 한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삶의 모습과 방식, 하루의 일과가 크게 다르지 않기에 신변기는 대개 유사성을 띄기 마련이다.
신변기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대개 삶의 기록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진부하다는
인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자신의 남기고 싶은 얘기로 그치지 않고,
독자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주는 얘기가 되어야만 비로소 수필이 될 수 있다.
단순히 누구나 겪는 진부한 신변잡기에 그친다면 문학으로서의 가치가 없다.
평범한 신변 얘기지만, 인생의 발견과 해석, 의미와 가치부여,
인생의 미학의 창조가 있어야만 광채를 낼 수 있다.
이런 차이가 신변잡기와 수필을 가르는 척도가 되며
자신의 삶을 기록해 놓은 신변잡기인가,
아니면 자신의 삶과 체험에서 얻어낸 문학인가를 판가름하게 된다.

예컨데,
평범한 신변잡사에서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진실과 감동이란
보석을 찾아내는 일이 ‘수필’이라 할 것이다.
신변잡사에서 보석을 얻어 내는 일, 평범한 삶 속에서 비범한 이치를 찾아내는 일,
누구나 겪는 대수로운 것과 사물들을 보고 독자적인 의미와 미학을 부여하는 일이
좋은 수필 쓰기의 관점이 될 것이다.

3. 인생경지와 수필경지

수필은 시, 소설, 희곡 등 픽션(fiction)과 달리 논픽션(nonfiction)이다.
어떤 장르보다 자신의 삶과 인생을 진솔하게 드러내므로
‘글이 곧 인생’인 것이다.
픽션물은 상상, 흥미, 구성 등을 통하여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지만,
수필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체험(인생)에서 얻은
발견, 해석, 의미, 가치, 미학을 보여줄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인생적 경지가 곧 작품의 경지가 된다.
문장을 통해서 인생을 보는 경우라 할 것이다.

수필이 쏟아져 나오지만, 좋은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모든 지식을 다 동원할 수 있는데도
한 편의 향기로운 수필을 만나기란 어렵다.

수필은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쓰는 글이기 때문이다.

물질은 풍요해지지만 정신은 오히려 황폐해져 간다.
지식과 정보는 필요한 만큼 얻을 수 있지만,
'인격 함양은 하루 아침에 이를 수 없다.'

현대인 치고 인격 수양에 힘쓰는 사람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수필을 잘 쓰는 요령이나 알려고 하고 문명(文名)을 얻으려 힘 쓸 뿐이지,
‘어떻게 가치롭게 살까’엔 관심을 두지 않는다.

현대인은 재주의 비범함과 박학다식을 보여 주나,
갈고닦은 인격에서 풍기는 정신의 향기는 없다.
겉차림은 요란하나 홀로 가꾼 미(美)가 없다.
어떻게 하면 풍요하게 살 수 있올까만을 궁리하고,
어떻게 하면 가치롭게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선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

수필가들도 어떻게 쓸까만을 고민하지,
어떻게 살까를 진지하게 고뇌하지 않는다.
시대는 바야흐로 수필을 홍수처럼 쏟아 내고 있지만,
참다운 수필을 꽃피울 풍토는 아니다.
좋은 수필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은
'참다운 인간을 발견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맑고 고결한 영혼, 순수하고 뜨거운 애정의 소유자를 만나기가 어렵다.


4.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문학의 소재 발견이나 창작에 있어서
시각(視覺), 청각(聽覺), 후각(嗅覺), 미각(味覺), 촉각(觸覺) 등
5감각(感覺) 기능을 잘 이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보는 것은 글을 쓰고 싶은 동기를 제공하고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중요한 정보기능을 한다.

숱한 소재들 중에서 어떤 것을 제재(題材)로 선택할 것인가?
이는 사람마다의 안목과 경지에 따라 달라지며,
작품의 성패와 직결된다.

여행지에서 유적이나 풍경을 함께 접했다고 하더라도,
보는 사람들의 안목과 시각에 따라 보석처럼 빛나는
제재를 얻을수도 있고, 그냥 스쳐버릴 수고 있다.

한번 보는 것이 백번 듣는것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사물이나 사건을 보되,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
문학을 하는 것은,
보는 법을 배우는 것에 다름없다.

18세기 독일의 시인 노발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 접촉되어 있다.

들리는 것은 들리지 않는 것에 접촉되어 있다.

그렇다면 생각되는 것은 생각되지 않는 것에 접촉되어 있다.’

어떤 사물을 볼 때,
보는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하나의 사물일지라도
어떤 사람은 앞면만,
어떤 사람은 측면만,
어떤 사람은 뒷면만 볼 수 있다.
어떤 사태나 상황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부정적으로, 종합적으로 볼 수 있다.
일부분만 볼 수 있고, 전체적으로 볼 수 있다.
주관적으로 볼 수 있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본다는 것’은 단순하게 생각될 지 모르지만,
보는 사람의 삶을 통한 총체적 경험과 지식 정보를 투과해서 인식하는 행위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지상의 가시영역의 것일 뿐, 지하의 불가시영역의 뿌리는 보지 못한다.
또한 나무의 보이는 모습과 접촉해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
이를테면 햇빛, 바람, 비, 세월, 새, 나무의 일생을 연상해서 보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뿌리와 닿아있는 세계까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 보는 것은 눈을 통한 ‘가시영역’에만 국한돼 있다.
그리고 가시영역의 대상물은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보이는 것과 접촉돼 있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이것이 세상을 보는 눈이고,
수필을 쓰는 법을 깨닫는 일이다.

새를 보면서 단순히 보이는 외양만을 보는데 그치지 않고,
보이는 것과 접촉돼 있으나, 보이지 않는
하늘, 구름, 자유, 방향, 바람, 새의 삶, …
이런 불가시영역의 것까지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꽃의 외양의 아름다움은 누구나 볼 수 있다.
꽃의 보이지 않는 세계, 꽃씨가 새싹을 튀워 성장하기까지의 과정,
햇빛, 물, 바람, 나비등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꽃이 져야 할 때와 의미까지를 보아야 한다.

‘본다’는 것은 충동, 발견, 관찰, 탐구와 관련이 돼 있다.
‘본다’는 행위가 오감과 닿아있을 뿐 아니라,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5. 드러내기와 드러내지 않기

수필은 자신을 드러내는 글이다.
자조문학(自照文學), 고백문학이라고도 한다.
자신의 삶과 인생을 거울에 비춰내듯 드러내는 글이다.
허위, 과장이 아닌 진실과 순수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에게 친근감을 준다.

수필은 자신의 삶과 인생을 드러내는 모습을 취하고,
독자들은 글을 통해 작자의 삶과 인생을 보게 된다.
작자는 심리적으로 자신의 장점과 좋은 점을 보이고,
단점, 취약점, 잘못한 일 등은 감추고 싶어한다.

형용사와 수식어를 남용하는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
지나치게 독자를 의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삶과 인생을 드러내는 문학이라고 하지만,
독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드러내선 안된다.
자신의 삶과 인생을 드러내는 행위는 개인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의 삶과 인생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독자들은 성공담보다도 오히려 실패담에서 교훈을 얻으며,
화려하고 위대한 일 보다 소외되고 눈에 띄지 않은 것에 대해 애정에 관심을 갖는다.
작가가 자랑, 과시, 좋은 점 만을 드러내지 않고 나쁜 점, 취약점도 드러내
성찰의 모습을 보여주길 독자는 바라고 있다.

글을 쓰는 데 가장 어려운 것은 드러내야 할 것은 반드시 드러내야 하고,
드러내지 않아야 할 것은 반드시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와 진실 앞에서 생사를 걸 수 있는 문제까지 대두될 수 있는 문제다.
드러내야 할 것은 개인성, 일과성, 일시성이 아닌 공공성, 지속성, 영원성이 있는
가치와 의미에 닿아 있어야 하며, 절제하거나 드러내지 않아야 할 것은
자랑, 과시, 과장, 증오, 분노 등 독자들의 삶과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다.


6. 교훈과 깨달음, 지식과 지혜


문학의 2대 기능으로 쾌락성과 교도성을 들고 있다.

문학 작품은 방법은 다를 지라도 교도성을 띠게 된다.
문학은 교육이 아니므로 직설적인 교도, 설득, 설파는 거부감을 갖게 한다.
문학작품은 감동을 통해 변화를 가져오게 해야 한다.
작자가 독자들 보다 높은 위치에서, 지식의 전파와 경험을 설파하려는 것은
독자를 경시하는 태도일 수 있다.
지식의 나열이나 교도성에 치우친 수필이 의외로 많음을 본다.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교도성으로 감화를 받는 쪽보다
글을 읽는 동안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면 더 자연스러운 일이다.

'수필은 교훈보다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지식은 바깥에서 들어온 앎이다.
독서, 얘기, 교육을 통해서 비교적 빠른 시간에 습득할 수 있다.
지혜는 내부에서 형성된 앎이다.
체험을 통해 자신이 피운 깨달음의 꽃이다.
단시일에 얻어질 수 있는 게 아니고, 오랜 시일이 필요하다.
지식은 이미 보편화된 것이지만 지혜는 스스로 피워낸
깨달음이므로 특수성을 지닌다.

수필은 지식의 나열이 아닌 지혜의 꽃과 향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교훈보다 깨달음, 지식이 아닌 지혜를 보여주어야 하는 글이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않아야 한다.
독자자 스스로 생각해서 깨달음에 도달하도록 하고
마음에 여운을 주어야 좋은 글이다.


7. 완벽과 미완

좋은 수필의 척도로서 몇 가지를 살펴볼 수 있다.
주제의 통일성, 소재의 참신성, 구성의 효율성, 문장력, 감동성 등이다.

서두에서 결미에 이르기까지 주제가 통일성을 이루고 참신하고
흥미있는 소재를 동원하여 빈틈없는 짜임새로 구성돼 있으며,
감동이 수반된다면 좋은 수필일 것이다.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야만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다.
장인정신(匠人精神)으로 완벽을 위한 최선을 보여준 글에서 감동을 받는다.

수필에 있어서 완벽성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한 작품을 완성시키는데 오랜 시일과 많은 퇴고를 거쳐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단숨에 쓴 작품도 있을 것이다. 완벽성은 오랜 시일에 걸쳐 짜맞춘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생을 통한 삶의 총체성과 순간적인 집중력이
만나 피운 꽃이 아닐까.

서예가가 화선지 위에 단숨에 쓴 글은 오랜 글쓰기의
수련과정을 통한 경지의 솜씨가 아닐 수 없다.
문장을 단숨에 쓴다는 것도 오랜 글쓰기를 통해 자유스러움과
고도의 질서를 획득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수필은 인생을 담는 그릇에 비유되곤 한다.
완벽한 인간이 없다면 완벽한 수필도 없을 것이다.
완벽성의 추구와 노력은 문장력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인생경지와 상관돼 있다.
완벽하다는 것은 하나의 개념과 규격성을 말하는 게 아닐까.
미완의 부분이 있어서 독자들이 채울 몫을 남겨두는 것도 글쓰기의 한 방법이 아닐까.
너무 완벽하여 갑갑하다는 느낌이 드는 글도 있을 성싶다.
어딘가 빈 구석이 있어야 더 친근스레 느껴지고,
수수한 모습이 황홀 찬란한 모습보다 정겨워지는 것이 수필의 모습이다.
자연스러우면서도 빈 틈이 없어 보이는 수필,
빈 틈이 있어 보이면서도 흠 잡을 데가 없는 수필에 마음이 끌린다.

글쓰기의 방법에 왕도(王道)나 지름길이 없듯이
좋은 수필의 조건에 있어서도 독자의 인생과 삶에 유익함을 주되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있는 글이라는 것을 알 뿐이다.

수필은 자신의 일생으로 피워내는 의미와 깨달음의 꽃일 것이다.
‘내가 너가 아니고 나’인 고유하고 독자적인 모양, 빛깔, 향기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이런 것이 나만의 것에서 많은 사람들의 삶과 인생에 의미 부여와 가치를 창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일시성을 초월하여 오랜 시.공 속에도 퇴색되지 않은 꽃이 될 수 있을까.

좋은 수필은
눈과 마음이 황홀해지고 맑아지는 기분을 느낀다.
좋은 수필을 대하면 좋은 인생을 만나는 것이므로,
작자를 만나고 싶고 경배하고픈 생각이 든다.






2011-12-23 11:4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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