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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작가는 자기자신을 먼저 디자인해야/윤재천
이름
이상렬
홈페이지
http://cafe.naver.com/sungduk1
첨부화일

작가는 자기자신을 먼저 디자인해야

돌이나 흙 - 방치되어 있던 자연물을 인위적으로 다듬어 모양을 내거나 조합하여 축조물을 이루게 되면, 그것은 그 나름의 고유 의미를 지니게 되어 예술품이
▲ 윤재천 수필가
될 수도 있고 그 이상의 격(格)을 지닐 수 있어 문화유산으로 남게 되거나 생활에 필요한 것이 될 수 있다.

이런 공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석공이나 도공의 돌, 흙에 대한 자기만의 디자인(design)이다. 이것은 입안(立案) 설계(設計) 또는 도안(圖案)이라고 우리말로 옮길 수 있다.

의상이나 공업제품을 만들거나 건축물, 자동차 같은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 것만 아니라 모든 곳에 그 필요성은 더 요구되고 있어, 요즘은 디자인 시대라 할 만큼 공정의 중요성은 강조되고 있다.

예부터 '동가홍상(同價紅裳)'이라는 말이 회자됐던 것을 보면 이전에도 디자인의 중요성은 모든 경우에 절감되고 있어 이를 가시화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손재주가 특출해 '천부(天賦)'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유산으로 남기는 물품이 적잖다. 예술품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 중 이런 의도와 공정에 의해 생산된 작품은 수없이 많지만 우선 신라를 대표하는 다보탑이나 석가탑을 들 수 있고, 고려의 청아한 색깔과 품위 있는 모양의 자기(瓷器)를 비롯해 조선의 서민적 향취를 지닌 백자(白磁)나 사찰(寺刹)의 조각품을 들 수 있다.

이런 것을 만드는 데는 특별한 재주가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정성이다. 대상에 대한 지극한 마음 - 변함없는 사랑이 없으면 위대한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 이런 열정을 가진 사람을 우리는 '장인(匠人)'이라고 하는데, 여기서의 '장(匠)'자는 우두머리 또는 기술자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 능력이 인정되어 예술인의 반열에 오른 사람을 '장인'이라고 하는 것처럼, 글을 통해 감동을 양산할 정도의 능력을 지닌 사람을 '작가'라고 명명하고 있으니, 그 열정과 사랑은 이들에게도 자신을 지탱케 하는 생명과 같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 두 단어에는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그러면 디자인이라는 족적(足跡)은 어떻게 이어져 왔는가. 이것은 시대현실과 무관한 것이 아닌 만큼, 이를 통해 그때마다 무엇이 그들에게 간절한 소망이었고, 당시의 모습이 어떠했는가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디자인'의 바탕은 다름 아닌 정신이다. 덧붙여 잇고 보태는 것이 흔히 말하는 공정의 주류가 되었을 때는 감추고 싶은 것이 많고, 풍요를 갈망하는 마음이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에, 여러 예가 불필요한 부분이라고 여기게 되어 떼어내고 오려내어 단아(端雅)하게 꾸미려는 의도가 디자인의 본령이라고 인식되고 있으므로 그것은그 시대의 특성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이 사실은 우리 형편이 어려웠을 때는 덕지덕지 붙이거나 매달아 멋을 창조하려고 하는 욕구가 강했던 데 비해, 지금은 반대로 덜어내고 잘라내어 더 분해할 수 없을 정도까지 심플(simple)하게 간추리고 있는 추세를 통해서도, 디자인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다.

'유행(流行)'이라는 것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정서 중의 하나다. 일종의 흐름이라서 그렇다. 그것은 마치 강물의 방향이나 바다를 삼킬 듯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물살과 같다.

자연히 덮어 씌워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온갖 수고를 다하고, 상황이 바뀌어 반대의 경우가 되었을 때는 웬만한 것은 벗어던지고 당당한 모습으로 남 앞에 서며 자신을 갖게 된다. 따라서 우리 시대의 추세는 모든 예의 경우가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과거에 비해 비교적 풍요로워짐으로 인해 세련되고 발전된 면모로 보여주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수필도 자아(自我) - '나'에 대한 지나친 사변(思辨)과 변명으로 일관하는 태도, 좀처럼 끝날지 모르는 만연체문장(蔓衍體文章), 아전인수격의 독단적 논리 같은 것은 요즘 시대엔 피해야할 대상이 된다.

이젠 무엇이든 구테의연한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생활의 편리성이 강조되고 효율성을 가치의 척도로 여기게 되면서 현란한 기교나 엄격한 형식의 추종은 더 이상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가 없다. 부담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워야 멋이 될 수 있고, 교류의 통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연대기(年代期)를 지칭하는 어휘에 그친다면 그것은 무의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의 통념과 다른 - 새로운 면모로 가치를 낳기 시작된 이후, 새롭게 조성된 시대부터 오늘까지 지속되는 질적(質的) 개념으로서의 시대를 이끄는 견인차가 되어야 한다.

작가는 단순히 있었던 일을 기록해 후세에 전하는 사관(史官)이 아닌 만큼, 시대의 정신과 정서, 유행까지도 선도하는 역량과 확고한 소신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지쳐 낙오자가 되고 만다. 이것으로 볼 때 작가가 먼저 디자인해야 할 대상은 자기자신이다. 자르고 오려내고 필요 없는 부위를 조율하며 조화롭게 다듬는 노력이 없인 어떤 창조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사회 곳곳에서 '베끼기' 논란으로 인한 불상사가 일어나고 있어 사회문제뿐만 아니라, 국가 간의 갈등도 초래되고 있다. 일종의 산업스파이들이 국민의 자존심을 버리고 막대하게 투자된 자료를 홈쳐파는 일이 자행되고 있다. 이것은 디자인과 브랜드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예가 된다.

작가도 마찬가지다. 저마다 새롭게 자신을 무장해야만 우리 시대와 미래도 희망적이고, 세계문화까지 주도할 수 있게 된다. 질 높은 작품의 한 구절이 독자에게 새로운 세계를 경험케 하고, 작품이 조화를 이룰 때 우리의 수필도 크게 발전할 수 있다.

조화로운 수필의 수사적(修辭的) 디자인만이 위대한 작품을 창조할 수 있다.

■ 윤재천
수필가.《현대수필》발행인
2012-05-14 23:5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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