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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가 시나 소설을 쓰지 않는 까닭/곽흥렬
이름
이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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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나 소설은 쓰지 않는 까닭

곽 흥 렬

나는 시나 소설을 쓰지 못한다.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면 제대로 쓸 줄을 모른다. 하지만 명색이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며 어느 정도 기초적인 문예창작 수업을 받았으니, 제대로 쓸 줄은 몰라도 어설프게 흉내 정도 낼 줄은 충분히 안다.

그래도 시나 소설은 쓰지 않는다. 단순히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예 쓸 생각 자체를 갖지 않는다는 말이 오히려 맞을 것 같다.

“수십 년 세월 동안 수필을 써 왔으면 이제 시나 소설도 한번 써 보시지요.”

어쩌면 질문 같기도 하고 어쩌면 요청 같기도 한 이 말을 주위의 지인들로부터 여태껏 심심찮게 들어왔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칼로 무 자르듯 일축해 버리곤 했다.

“아직 수필도 뭔지 확실히 모르는 주제에 어떻게 시나 소설까지 넘보겠습니까.”

이렇게 대답을 해 놓고 봐도 기분이 별로 개운치는 않다. 그들이 무슨 복선을 깔고서 그런 소리를 꺼내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속마음을 나는 모르겠다. 단순한 인사치레라면 그냥 대수롭잖게 넘기고 말 일이지만, 혹여 은근히 시와 소설을 수필보다 윗길에 두고 하는 말 같기도 하여 배알이 뒤틀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여기든, 수필만이 내가 옆 돌보지 않고 일편단심으로 아끼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라는 나의 심지心志에는 조금치의 흔들림도 없다.

반풍수가 집안 망친다는 속담이 있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는 속담도 있다. 이 금언들이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수필가로서의 길에 맏아들처럼 든든한 응원군이 되어 준다.

왕왕 시도 쓰고 소설도 쓰면서 수필에까지 기웃거리는 사람들을 만난다. 참 능력 한번 대단한 작가이구나, 싶으면서도 어쩐지 그리 믿음성이 느껴지진 않는다.

문어발식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기업들을 심심찮게 본다. 그런 기업은 백이면 백, 모두 얼마 안 가서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전문성의 부족 때문이다.

글도 마찬가지인가 한다. 시와 소설, 수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사람이 시면 시, 소설이면 소설, 수필이면 수필 어느 한 분야에 목숨 걸고 달려드는 사람을 당해낼 재주는 없을 것이다. 한 우물을 파도 될까 말까 한 마당에 이곳저곳 여러 우물을 파서야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자명하지 않은가. 무릇 세상 모든 일에서 전문성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그쪽으로 알아주는 고수가 될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기왕에 이 길로 들어서서 수십 년 세월을 달려온 이상, 나는 오로지 수필 하나에다 작가로서의 전부를 걸어 보겠다며 오늘도 다짐에 다짐을 놓는다. 이것이 내가 지금껏 시나 소설은 쓰지 않았고, 앞으로도 결코 쓸 생각이 없는 까닭이다.

<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2012년 9월 26일자>

2013-03-05 00:4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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