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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학에서의 기억 혹은 기억으로서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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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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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서의 기억 혹은 기억으로서 문학


김영택(문학평론가, 목원대 국문과 교수)


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제야 너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너무 늦었다/ 그렇다고 울지는 않는다/ 이미 잊힌 사람도 있는데/ 울지는 못한다/ 지상의 내 발걸음/ 어둡고 아직 눅은 땅 밟아가듯이/ 늦은 마음/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 모두 떠나고 난 뒤면/ 등불마저 사위며/ 내 울음 대신할 것을/ 이제야 너의 마음에 전했다/ 너무 늦었다 캄캄한 산 고갯길에서 홀로

윤후명의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라는 위의 시를 행 구분 없이 읽어가면서 문학이 궁극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추억이 없이 이 시는 읽히지 않는다. 시의 구절마다 돌이켜봄의 슬픔과 아름다움이 아로새겨져 있다. 그러나 그 회상의 대상은 결코 기쁨의 순간이 아니다. 그것은 ‘상처’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고통스런 과거에 대한 반추이기에 이 시는 아름답다. 상처는 뼈아픈 과거 시간의 흔적이다. 그것은 견디기 어려운 내면의 싸움과 자아의 파괴를 수반한다. 그 폭력적 힘이 클수록 상처의 흔적은 더욱 더 선명하고도 깊게 각인된다. 그렇다면 한 개인에게 상처의 윤곽이 확실하게 남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되돌아봄의 빈도와 관계되어 있을진대, 그러한 한 개인의 정신작용을 우리는 기억이라 부른다. 우리는 윤후명의 시 한 편을 통해 그 기억이 잉태하는 아름다운 서정의 세계에 빠져든다. 문학을 문학이게 하는 것, 특히 시를 시답게 함이 서정일진대, 우리는 이렇듯 지난 일에 대한 기억의 끈에 잇대어 살아옴을 느낀다.

현대 우리의 삶에 가해지는 불행.허무.불안, 이러한 인생의 질곡들은 과거를 아름답게 돌아보도록 유인한다. 때로는 현재의 안락함이 그것을 가져오기까지 축적되었던 지난 과거 속의 불행의 날들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어떤 이유가 되었든지 지난날의 모습은 돌아보는 자를 달콤함 속에 빠져들게 한다. “늘 반추하며 살아 온, 외로움과 그리움의 세상 인식을 여기에 담아 본다”고 시인은 자서(自序)에서 밝히고 있다. 그는 불행한 과거를 기억하면서 더 불행한 현재의 허망한 마음을 보듬고 치유하고자 욕망한다. 그러면서 시인은 과거가 지닌 사건들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자각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시인은 삶의 본질에 대한 이해에 보다 근접해간다. 인간의 성숙은 이러한 자기반성과 성찰의 과정 속에서 한 단계씩 이루어지는 게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기억은 과거의 단순한 돌이킴이 아니다. 기억은 늘 현실의 존재조건과 미래지향성을 담보한다. 기억은 현실인식을 전제한다. 현실은 언제나 과거와의 연속성 위에 존재한다. 현실의 참모습은 언제나 과거 속에 묻혀 있다. 그러하기에 현재의 진정한 존재에 대한 자각은 과거에 대한 기억에 기댈 때 가능한 것이다. 인간이란 이름에 상처를 입힌 것들, 인간성에 거슬리는 온갖 억압과 폭력의 실체들, 기억에 기반한 문학이 인식하는 과거란 항상 이러한 좌절의 국면들이다. 인간의 욕망이 충돌하면서 생성된 부정성을 문학은 기억코자 한다. 그리고 문학은 퇴치해야 할 악을 전형화하고 비판한다. 그것이 지극히 사소한 개인의 체험에 속하는 사안일지라도, 문학은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그것을 음미한다. 문학은 기억 저편에 있는 망각을 일깨운다. 망각의 늪은 인간에게 거듭된 악을 부추긴다. 인간의 역사에 망각보다 더 무서운 적은 없다. 이때의 망각은 가장 비인간적인 속성을 지닌다. 과거를 기억하는 인간은 미래의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를 가늠한다. 역사 속에 누적되어 온 상처들은 결코 망각 속에 사라져서는 안 된다. 과거의 불행과 미망을 반복하는 개인이나 집단보다 더 어리석은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문학의 언어는 본질적으로 기억의 형식을 지닌다. 그러나 문학이 지닌 과거에 대한 반추는 역사의 그것과는 다르다.


Ⅱ. 서사 장르에서의 기억, 혹은 소설의 역사성

“모든 진정한 문학은 역사적 사실 위에 존재한다. 문학기법은 역사적으로 조건지어진다.” 딜타이(Wilhelm Dilthey : 1833~1911)의 이러한 명제로부터 문학이 기억으로서의 역사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기로 하자. 문학이 근본특성으로 하는 허구적 세계는 인간이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현실공간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진다. 그것이 현실의 직접적 반영이냐 혹은 뒤틀림이냐는 우리가 살아가는 실존의 공간이 전제된 다음에 생각해 볼 일이다. 실재했던 사실들, 그것을 역사적 사실이라고 바꾸어 말할 때, 과거의 시간이 경험한 그 세계는 더욱 엄숙해지고 절대시된다. 역사는 이렇듯 사소함이나 망각을 벗어나는 엄숙함과 진지함의 대상으로 현존하는 인간에게 다가온다. 바로 현재의 인간들에게 잊혀질 수 없는 사건들로 기억되어 있는 것이 역사다. 개인과 집단, 혹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반추되면서 새로운 의미로 되새겨지는 것이 또한, 역사다.

문학은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전제로 한다. 문학이 이루어 가는 공간을 우리는 허구적 세계라 하거니와, 그것은 작가의 상상에 의하여 가공된 세계이다. 가공된 세계는 추상적으로 머물러 있으며, 그것은 관념의 결과물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상상력의 소산인 문학의 세계는 현실을 매개로 한다. 상상력의 활동과 기능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는 불가능하다. 상상작용이란 경험된 사실에 기초하여 발흥한다. 문학의 토대는 체험이다. 우리의 체험은 한 인생이 지속되는 동안 끊임없이 반추된다.

가장 원시적인 문명조차도 생의 체험과 기본적이고도 강렬한 형태로 문학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형태의 예는 제의.축제.무언극과 겹쳐지는 춤, 부족의 조상제의에 내재되어 있다. 문학은 신화 및 종교적 제의와 결합되고 축제의 화려함이나 유희의 즐거움과도 결합된다. 서사시는 집단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거대한 사건의 기록으로 한 민족이나 국가의 신성한 기억의 사건들을 담는다. 기억이야말로 서사물의 핵심적 요소이다.

기억으로서의 문학은 서정양식보다는 서사양식에 더 어울리는 표현이다. 서정은 이미 윤후명의 시에서 보았듯이 기억이 가져오는 감정이지 기억이 담고 있는 구체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서정양식에서 그 기억 속의 이야기는 이미지만 지닐 뿐이지 우리에게 그것의 실체를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이에 반하여 서사양식은 기억을 진술한다. 실제 서사양식이란 그 기억을 어떻게 풀어 나가느냐는 문제와 관련된 장르이다.

서사양식(이야기)이 기억에 의존하여 이루어진 예술임을 일찍이 간과한 사람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 1892~1940)이다. 그는 「이야기꾼과 소설가」에서 이야기체 형식, 즉 서사양식이 경험의 주고받음이라 규정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아무런 편견 없는 청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들은 이야기를 다시 재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자기 자신의 확신이며, 이를 ‘기억’이라 지칭한다. 그리고 그는 이제 더 이상 온 인류가, 최소한 한 민족 단위공동체가 신성하게 지켜가야 할 경험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사시의 붕괴는 그러한 경험의 가치하락을 의미하는 바에 다름 아니다. 경험의 가치가 하강곡선을 그으면서, 서사장르는 지배적인 양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소설은 근대 이후에 인류의 대표적인 서사양식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러나 소설은 이제 영상매체에 그 지위를 넘겨주어야 할 운명에 직면해 있다. 이처럼 시대적 변화에 따른 지배적 서사양식의 변화는 경험의 소통방식의 변화를 의미한다.

본래 이야기는 누군가에 의하여 구연(口演)되면서 전해졌다. 이야기꾼들이 끄집어내는 이야기의 원천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소설이 발흥하면서 입으로 전승되던 이야기는 몰락했다. 소설이 이야기와, 또 보다 좁은 의미에서 서사시적인 것과 구별되는 점은 그것이 근본적으로 책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소설의 본격적인 확산과 보급은 인쇄술의 발전과 더불어 가능했음을 상기해 볼 때 더욱 그러하다.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그가 말하는 이야기를 경험으로부터 얻고 있다. 그는 그 내용을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경험이 되도록 만들어 내는 것이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특이한 사건들을 인간적인 삶의 극단으로 묘사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소설은 이러한 풍부한 삶의 묘사를 통해서 풍부한 삶의 체험과 우리 삶의 복잡다단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아울러 그러한 다층위의 삶의 투시를 통하여 인간의 행위와 정신이 지닌 진실한 모습에 접근코자 한다. 요컨대 가장 일차적으로는 이야기가 말이었다가 문자로 전이되어 소통됨이 소설이다.

그러면 이야기의 예술성을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지가 보다 명확해진다. 이야기가 남아 있기 위해서는 이야기꾼의 기억이 요구된다. 민중예술 속에 면면히 내려온 서사형식은 모두 총기 좋은 이야기꾼의 기억 덕택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구연 방식은 지극히 순간적이다. 그러하기에 이야기는 늘 새로운 이본의 형태로 전승된다. 하나의 이야기는 그것을 구연하는 사람이 살았던 시대적인 상황과 개인적 체험의 영향을 받는다. 벤야민에 따르면, 이 같은 단순한 이야기에 나타나는 예술성이란 단순한 기억이다. 즉, 「천일야화」에서처럼 이야기를 엮어 짜는 그물이 만들어지고 이 같은 그물은 기억의 전수에 의존하게 된다. 따라서 이 때 이야기의 예술성이란 이 순간적 기억밖에는 달리 찾기가 어렵다. 이러한 순간적 기억이 지속적 기억의 형태로 바뀐 것이 문자에 의한 서사이다. 오늘날 대표적인 서사장르로 자리한 것이 서사시를 계승한 소설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소설이란 장르는 지극히 개인의 영역에 머무는 사적 체험을 기억으로 간직한다. 이와 더불어 경험의 가치하락은 시대가 지날수록 심화되었다.

자본주의가 선도한 개체화된 인간의 삶은 공동체의 의식과 유대를 가져올 집단적 경험세계가 아닌, 개체화되고 파편화된 주관적 경험세계를 조장하여왔으며, 이는 소설 내용에도 그대로 반영되어왔다. 그리하여 오늘날 소설가는 밀실에 갇혀 있는 사소한 경험의 내용물들을 끌어내서 허구의 세계를 구축한다. 소설이 탄생하는 공간은 신화가 구현한 집단무의식과는 대조된다. 소설가는 세계로부터 자신을 고립시켰다. 그들은 고독하게 자신의 주관성에 의해 타인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직조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소설 속에 그려지는 작중인물들은 세계와 잘 화합하지 못하는 국외자의 모습으로 전형화되기 일쑤였다. 작중인물이야말로 작가의 고통스러운 기억의 산물이다. 작가는 인간의 정체성을 상실한 파편화된 삶 속에서 구체적인 생존의 모습으로, 극단화된 존재들을 소설의 작중인물로 형상화시켰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이 이끄는 세계인식을 바탕으로 시대의 전형이든 미래의 인간형이든 이야기 속의 주제를 고안했다. 그러한 점에서 작가의 기억은 경이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창조적 기억이라 부를 수 있다.

이미 지나간 시간 속에 박제되어 버린 여러 사건들을 재구성하여 통일성을 부여한 가공의 세계가 소설의 공간이다. 새로운 세계를 희망하는 작가의 상상력은 자신의 기억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루카치(Georg Lukacs : 1885~1971)는 이러한 작가의 내면이 이끌어가는 정신작용을 창조적 기억이라 규정짓는다. 그리고 그는 오직 소설에서만 대상을 꿰뚫고 변화시키는 창조적 기억이 나타난다고 한정한다. 이렇듯 소설은 망각 속에 묻혀버릴 수도 있는 인간의 가치 있는 경험을 보다 풍요로운 세계로 재구축하는 창조적 기억과 밀접한 예술 양식이다.


Ⅲ. 한국 현대소설에서 작가의 체험과 기억

1. 집단적 경험을 상징하는 기억의 반추

한국의 근․현대 소설문학에 있어 작가의 체험과 그에서 비롯된 문학적 상상력은 중요한 위치를 점유한다. 곧 문학작품이 그것을 생산하는 작가의 체험과 기억에 의존함을 우리의 문학은 환기한다. 기억의 형식, 회상의 형식은 현대소설이 지닌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이자 이에 바탕을 둔 문학사 기술이 가능하리만큼 우리 문학은 작품의 수나 작가의 계보에 있어 지속성을 보여준다.

기억의 화두가 끊임없이 문학 주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은 역사의 격동성과 비극성에 말미암음이다. 일제강점, 6.25전쟁, 4.19혁명, 유신독재, 5.18광주항쟁 등 역사 위에 점철된 일련의 고통스런 사건들은 그 연대기를 살아간 개인에게도 치유될 수 없는 상처로 남거나 결코 지워질 수 없는 과거로 각인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체험의 고통이 문학의 지속적인 주제로 떠오름은 당연한 귀결이었으며, 또한 필요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의 한국문학에서 이러한 경향의 작가로 우리는 먼저 안회남을 생각할 수 있다. 안회남은 해방 직후 「오욕의 거리」(1945), 「탄광」(1945), 「쌀」(1946), 「철쇄 끊어지다」(1946), 「사선을 넘어서」(1946) 등 수편의 작품들을 통해서 자신의 탄광 징용체험을 회상한다. 작가는 자신의 징용 경유, 탄광에서의 혹독한 노동과 비인간적 모욕, 해방 직후 적지에서의 긴박감과 일본인의 야만성, 귀환과정의 고초 등을 기억을 빌려 거의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이러한 그의 소설들에는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될 여지를 남겨놓고 있지 않거니와 그는 기자와 같은 목격자의 위치에서 과거의 일들을 보고하고 기록코자 한다. 안회남은 자신이 체험했던 가증스런 기억을 생생하게 전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에서 구주탄광에 징용되었던 전재민의 이야기를 써내려간 것이다.

안회남의 소설이 체험에 대한 어설픈 형상화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6.25를 경험한 세대들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체험의 소설화는 주제나 기법 면에 있어 원숙한 수준으로 끌어올려진다. 김원일은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작가이다.
김원일은 남북한의 비극적 전쟁과 갈등을 전후로 한 연대기, 그러니까 자신이 철들 무렵 겪었던 사실들을 바탕으로 하여 집요하게 파탄의 역사가 지닌 의미를 현재적 상황에서 음미하고자 한다. 그의 경험은 역사나 민족이라는 거대 담론에 여과된 것이 아닌 개인적 참혹함과 생존에 얽힌 것이었으나, 기억이 일깨우는 고통은 분단된 국토와 민족의 현실을 엄숙하게 질정한다. 「어둠의 혼」은 삶이 굶주림과 두려움으로 다가왔던 작가의 기억이 소생된 잘 짜여진 단편이다. 이후 그는 「노을」(1978), 「불의 제전」(1983), 「겨울 골짜기」(1987)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원체험으로부터 분단민족의 파탄국면을 그려낸다. 특히 「노을」은 그 구조 자체가 지난날의 체험을 종합해 현재의 작가의 실체를 객관화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지닌다. 이 작품은 소시민인 ‘나’가 29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의 모습을 ‘나’가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객관화 ․ 역사화하지 않고서는 지탱할 수 없는 서사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실상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삶을 객관적 의미로 밝히려는 의도에서 이 같은 체험의 회상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장편소설 『노을』부터 나는 우리 민족이 겪은 수난의 역사, 즉 분단 문제를 내 문학 속의 큰 줄기로 끌어들였다. 우리 가족사의 한 부분이기도 한 해방과 육이오 전후사를 쓰기 시작하면서 내 글이 어느 정도 객관적인 힘을 얻지 않았나 싶다 ( ― 김원일, 「사랑하는 자는 괴로움을 안다」에서)

위 인용문에서 보여주는 작가의 이 같은 고백은 실상 그가 자신의 기억을 오늘의 우리에게 단순히 들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지닌 현실의 적극적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에 다름 아님을 확인시켜 준다. 그러면 앞에서 제시한 관점을 기반으로 하여 그의 소설 「노을」을 감상해보자.

① 그날 밤이었다. 나는 모처럼 그 악몽에 시달렸다. 근래에 와서 없던 꿈이었다. 그것은 내가 의식적으로 그 시절의 사건을 생각지 않으려 했던 탓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때의 사건이 꿈을 통해 내침해왔던 것이다. 아마도 이틀 앞둔 아버지의 기일(忌日)과 삼촌의 별세 소식이 그 기억을 회상시켜 준 모양이었다. 장면은 달랐으나 역시 1948년 여름의 일이었다.
“여보, 당신 또 그런 꿈 꾼 게 아네요?" 아내가 얕은 잠에서 풀려나오며 졸음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누운 자리에 엎드려 담배를 피워 물고 있던 참이었다. 몇 시인지 알 수 없으나 짐작컨대 자정은 지난 시간이었다. 방충망을 쳤기 때문에 창문은 열어 놓았으나 바람 한 점 없었다. 방안은 눅눅한 더위와 정적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늘에는 반달이라도 걸렸는지 열어 놓은 창으로 뿌연 빛살이 밀려 들어와 머리맡을 조금 밝혀 주고 있었다. 아내가 누비이불을 당겨 덮으며 내 쪽으로 돌아누웠다.
“내려가서도 말조심해요. 미군이 철수한다 어쩐다 하는 이 비상 시국에 묵은 얘기라고 취중에 떠들면 큰일나요. 당신 같은 사람은 어디를 가나 늘 말조심을 해야 돼요.” 아내는 훈계조로 말했다. 아내도 잠에서 완전히 깨어난 또렷한 목소리였다.
“누가 뭐랬나. 그러나 이미 삼십 년이 다 된 얘기 아냐. 사실 내려간대도 고향엔 이제 아는 사람이 있어야지. 나 같은 놈한테 고향은 무슨 개떡 같은 고향이 있다구. 임자도 쓸데없는 걱정만 하다가 늙겠군.”
“왜 아는 사람이 없어요? 우리가 답십리 살 때 당신이 경찰에 불려 갔더랬더잖아요. 그 배 누구라는 사람 때문에 말예요. 그 사람이 고향분이라 했잖아요?”
“기억력도 좋군.”
“당신 홀몸이라면 또 몰라요. 당신 뒤에 줄줄이 엮인 가족을 위해서 하는 소리지요. 그러니 그 배씨는 만나지 마세요. 나도…….” 아내는 뒷말을 끊었다. 아내에게도 말조심이라는 말이 떠올려 주는 괴로운 추억이 있어 그것이 뒷말의 덜미를 물어 버린 모양이었다.
아내의 고향은 황해도 금천군 금천읍이었다. 국민학교 이학년 때 송도삼절로 유명한 박연폭포에 소풍을 갔다 하니 금천읍의 위치가 개성에서 북쪽으로 오십리 남짓했다. 아내는 그곳 뼈대 있는 집안의 외동딸로서 태어나 육이오 때 어머니와 두 오빠와 함께 피난 내려온 삼팔따라지였다. 그래서 해방 뒤 몇 년간은 고향땅의 공산 치하에서 보냈던 것이다. 아내는 그때 갖가지 치욕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한 가지는 지주의 집안으로서 으례히 겪게 마련인 재산 몰수에 따른 곤욕이었다. 아내는 철부지 열한 살 때에 씻을 수 없는 기억 한 가지를 비밀히 지니고 있었다. 아내가 자기 또래의 동네 아이들 앞에서 자랑스레, 우리 아버지가 이사하려고 번쩍번쩍하는 금덩이를 모은단다, 하고 무심코 뱉은 말이 아버지를 내무서로 잡혀가게 한 결과를 빚었던 것이다. 사실 그때 장인 될 사람은 가족을 이끌고 서울로 내려오기 위하여 암암리에 가산을 처분 중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그 이야기를 들은 것은 결혼 직전이었다. 그때 아내는 사범학교를 나와 시내 국민학교에 교편을 잡고 있었다. 그러면서 꺼지지 않는 향학열을 달래다 못해 스물여섯 살의 늦은 나이에 야간 대학을 다니던 참이었다. 나 역시 대입 검정 시험에 합격하고 지금 회사에 편집 보조원으로 입사한 끝에 갖은 고초를 이기고 편집 정사원으로 발탁되어, 그즈음 스물아홉 살로 야간 대학에 적을 두고 있을 때였다. 우리는 직업인도 대학생도 아닌 어정쩡한 밤공부를 통해 서로 알게 되었고, 그 점이 우리로 하여금 막연하게나마 인생살이에 그 어떤 결정적인 상대가 아닐까로 점찍고 있었다. 아내가 나에게 어릴 적 치명적인 과실을 털어놓은 그 날은 내가 아내에게 내 출신이 백정의 자식임을, 또 아버지의 죽음을 처음 고백한 날이기도 했다. 이미 우리는 결혼이란 절차를 통해 서로가 맺어져야 함을, 그러기 위해 서로가 다 같이 서로를 원하고 있음을 확인한 뒤여서 나의 고백이 아내에게 미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로서는 그 말을 꺼낼 기회가 여러 번 있었으나 내 성격이 소심한 탓도 있었겠지만, 그 말의 후유증이 두려웠던 것이다. 나의 집안 이야기에 아내는 심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음이 분명했다. 아내는 내가 가난한 농사꾼의 자식 정도로 알았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나의 근면과 검소함과 장래성을 믿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우리는 결혼 적령기였고, 새삼 상대를 바꾸기에 이미 지친 나이기도 했다. 그래서 아내도 나의 고백에 뒤질세라 고향 얘기 끝에 아버지의 임종 경위를 털어 놓았던 것이다. “아버지의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의식 불명으로 내무서에서 실려 나왔어요. 그래서 집에다 뉘어놓자 하룻밤을 세우고는 장독(杖毒) 대문에 숨을 거두셨지요. 한번 잠시 깨어나서 하신 소리가, 모두 가라, 이남으로 가라, 이 땅에서는 백 년이 못가 씨족이 마르고 말 테니, 하고 헛소리같이 고함을 지르시더군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도 우리 가족은 이태를 더 견뎠지요. 참으로 지긋지긋한 세월이었어요. 재산이 풍지박산되니, 알거지가 따로 있나요. 우리는 집마저 빼앗기고 득실이란 소작인 헛간방에서 네 식구가 옥수수죽으로 살았으니깐요. 육이오가 나자 그것이 기회였지요…….” 아내는 맺힌 과거를 쏟으면서 줄곧 울었다. 그 울음 속에서 나는 그 시절 전후 서로의 가족이 당한 불행이 결코 먼 거리가 아님을 알았다. 그리고 서로의 그 고백이 둘을 더욱 다숩게 싸안았다.
“잠이나 잡시다. 내일 하루를 차에서 시달릴 생각을 하니…….” 나는 피우던 담배를 껐다. 잠을 청하려 했으나 쉬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리맡의 선풍기를 켜고 삼십 분 위에 저절로 멎도록 타임을 조절했다.
“내려가실 때 현구를 데리고 가면 어때요? 방학이 되어도 애들이 친가나 외가나 어디 갈 만한 데가 있어야지요. 여행도 공부라잖아요. 이런 기회에 시골 제 아버지 고향 구경도 시켜 주세요.” 아내가 말했다.
“고향이라도 뭐 자랑할 만한 게 있어야지. 죽은 제 할비가 백정이었담 그 녀석도 기가 푹 죽을 거야.”
“이분, 또 자학하시네. 거기에 할아버지 얘긴 왜 끼어들어요. 돌아가신 삼촌은 어물전을 하잖아요?”
“그래, 어물전을 한다. 그게 어쨌단 말이오?” 꼬치꼬치 따지는 아내의 말에 울컥 화가 솟았다. 그러나 아내는 그런 정도의 내 화쯤에는 이미 만성이 되어 있었다.
“내려가서도 옛날 할아버지 얘기야 현구 앞에서 안 할 수도 있잖아요. 득보다 손해가 많은 얘길 왜 해요.”
“뱀에 물린 놈, 새끼 봐도 놀란다더니, 내 참. 당신은 백정 얘기만 나오면 왜 그렇게 펄쩍 뛰나? 요즘이야 돈 없는 놈이 천민이지, 어디 씨종이 따로 있나.”
“세상 사람들이 어디 아직 그렇게 생각들 해요? 애들도 커가니 제발 그 말일랑 조심해요. 그리고 일본서 나왔다는 그 배씨는 제발 만나지 말고 상경하세요.”
나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나는 아내에게 눌려 기를 못 펴는 꽁생원은 아니었으나 화제가 백정 쪽으로 돌면 늘 별 할 말이 없었다. 입싸움을 오래 해 봐야 언제나 불리한 쪽이 나였다. 그러나 내가 입을 다무는 것은 아내의 말에 열등의식을 느껴서라기보다 내가 꺼낸 말이긴 하지만 우선 내 마음부터 그 말이 주는 곤욕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고향을 등진 지 스물아홉 해, 삼촌 댁을 잠시 들른 지도 벌써 다섯 해가 지났다. 그 옛날, 상것내 옆에 아버지가 일하던 도수장이 있었다. 그 상것내를 끼고 섰던 미루나무가 지금도 그대로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조금 전 꿈속에서 그 미루나무를 다시 만났던 것이다. 꿈속에서 미루나무는 콩넝쿨같이 자라오르고 있었다. 마치 동화 속의 이야기같이 성킁성큼 몸통을 늘려 나가 마침내 높은 가지가 하늘에 구멍을 뚫고 말았다. 하늘에 구멍이 뚫리자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고, 비가 아닌 피가 그 구멍으로 세차게 쏟아내리기 시작했다. 그 피는 상것내로 모여서 붉은 강물을 이루며 흘러 내려갔다. 미루나무는 밑둥치까지 강풍에 휘둘리며 나뭇잎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강풍 속에 피의 빗줄기는 끝없이 퍼부어 내렸고, 이윽고 나의 눈물이 베갯가를 적셨다. 나는 꿈속에서도 가위눌린 듯 신음을 쏟아냈던 것이다.

② 노을에 비낀 고향이 차츰 나의 시야에서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제 언제쯤 나는 다시 고향을 찾게 될 것인가. 차창변으로 지나가는 여래리와 그 뒤쪽 선달바우산을 멀거니 내다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숙모가 돌아가시면 그때쯤이나 내려오게 될는지, 어쩌면 이제 나는 영원히 고향을 찾지 못할는지도 몰랐다. 나는 고향을 버렸기 때문에 내려올 이유를 구태여 만들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고향을 떠나 산 스물아홉 해 동안 나는 하루도 고향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 치모의 말처럼 고향을 잊으려고 노력해 온 만큼 이곳은 나로 하여금 더욱 잊지 못하게 하는 어떤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을 좌익 폭동의 상처라 해도 좋고 굶주림이라 해도 좋다. 그러나 그런 이유를 떠나서라도 고향은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모태가 된 것만은 사실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두 군데의 고향을 가질 수 없으므로 나는 객지의 햇살과 비와 눈발 속에 떠돌면서도 뿌리만은 항시 고향에 다 내리고 살아왔던 것이다.
산 위에 걸린 쌘구름이 노을빛에 물들어 있었다. 노을은 산과 가까운 쪽일수록 찬란한 금빛을 띠고 차츰 거리가 멀어질수록 보라색 쪽으로 여리어져, 노을을 단순히 붉다고만 볼 수는 없었다. 자세히 보면 그 속에는 여러 가지의 색이 교묘히 섞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노을을 붉다고만 말한다. 진 노란색, 옅은 푸른색, 회색도 저 속에 섞여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무엇인가가 한 가지로 뭉뚱그려 구별지어 버리기를 좋아하는 것일까. 그러자 문득 아버지와 헤어져 봉화산에서 내려왔던 저녁이 생각났다. 장마 뒤끝이라 노을이 유독 아름다웠다. 폭동의 잔재도 완전히 소멸되고 백태도 기수도 죽고 없는 텅 빈 넓은 장터 마당에서 절름발이 미송이만이 홀로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었다. 제대로 걷지를 못하므로 늘상 하늘을 날고 싶은 꿈만 키워 온 병약한 미송이, 그날따라 그가 날려 올리는 종이비행기가 아주 유연하게 포물선을 그리며 노을빛 고운 하늘로 맴돌았다. “갑수야, 저 오늘 있제? 저 노을꺼정 이 비행기가 날아 올라간데이. 나를 태우고 말이다.” 미송이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노을 속에다 힘차게 비행기를 띄워 보냈다. 미송이가 그렇게 나는 희망을 키우는 만큼 그의 눈에 비친 하늘은 분명 어둠을 맞는 핏빛 노을이 아니라 내일 아침을 기다리는, 오색찬란한 무지개빛이리라.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 현구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고향도 반드시 어둠을 기다리는 그런 상처 깊은 고향이기보다는 내일 아침을 예비하는 다시 오고 싶은 고향일 수도 있으리라.

2. 개인사적 사소한 경험을 통한 자기존재의 추구

한 개인에게 기억이 역사적 거대 서사의 상징성을 지닐 수도 있으나 대개의 경우는 사소하고 주변적이다. 경험의 가치하락에 대한 벤야민의 지적은 단절되고 파편화된 개인, 도시 문명 속에 고립된 개인의 경험세계가 지닌 주관성과 일회성을 인식한 통찰의 결과이다. 포스트모던 문화는 이러한 개인의 파편화된 삶을 가치 있는 주체적 존재방식으로 보고 관례의 파괴적 국면과 독특함을 시대의 전형으로 삼고자 한다. 이제 사람들은 동일한 경험과 정서적 유대를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온 내력과 미래지향점이 각기 다른 개인들의 살아감을 서로 확인하고 인정하려 한다. 역사적 사건들을 다룬 작품들은 그러한 엄청난 사건이 가져온 폭력과 파괴, 이념적 갈등과 화해, 그리고 증오 등을 보다 강한 어조로 드러내고자 하였다. 이에 비하여 그것으로 인한 개인사적 상처나 치유과정, 아니면 개인의 일상적 삶에서 오는 정신적 아픔을 회상의 형식으로 그리는 일련의 작품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전쟁체험을 그리면서도 다른 분단소설에 비교하여 독특한 위치에 놓이는 작가가 박완서이다. 그의 작품들은 6 ․ 25라는 폭력에 의하여 ‘나’라는 개인이 어떻게 고통받았는가를 일종의 통과의례적 입장에서 회고한다. 「나목」(1970), 「조발기」(1978), 「엄마의 말뚝」(1980) 등의 작품에 나타난 상처는 민족적 의미로 확장된 전쟁의 고통이기보다 개인의 영혼에 가한 상처이다. 그 중 후에 「목마른 계절」로 출간된 「조발기」는 한국전쟁의 한복판에 위치한 1950년 6월에서 이듬해 5월까지, 한해 동안의 이야기를 달마다 나누어 엮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이데올로기의 허상과 전쟁의 비극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작품은 전쟁 자체에 대한 비판이나 폭로에 있지 않고 오히려 그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 개인들의 삶에 그늘을 드리우고 악몽처럼 생활을 지배하는 과거의 기억과 감정, 그리고 그것의 공유로 확인되는 운명공동체로서의 자기확인과 치유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목마른 계절」의 일부를 감상해 보자.

그렇지만 이 동족간의 전쟁의 잔학상은 그대로 알려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해요. 특히 오빠의 죽음을 닮은 숱한 젊음의 개죽음들, 빨갱이라는 손가락질 한 번으로 저 세상으로 간 목숨, 반동이라는 고발로 산 채로 파묻힌 죽음, 재판 없는 즉결처분, 혈육간의 총질, 친족간의 고발, 친구간의 배신이 만들어 낸 무더기의 죽음들, 동족간의 이념의 싸움이 아니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이런 끔찍한 일들은 고스란히 오해 기억돼야 한다고 나는 생각해요…… 오빠의 죽음의 경우 같은 참혹한 기억, 학살의 통계, 어머니의 경우 같은 후유증, 이런 것만이 전쟁을 미리 박아 보려는 노력과 인내의 밑바탕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작중 주인공 하진의 입을 통해 이야기되고 있는 위 내용은 작가가 왜 자전적 회상형식을 택하게 되었는가의 이유를 밝히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엄마의 말뚝」이라는 작품을 보도록 하자.

③ 아직도 빨래를 덜 개켰는지 허공에서 규칙적인 손놀림을 계속하고 있던 어머니의 손이 별안간 나를 향해 두 손바닥을 보이며 방어의 자세를 취했다. 푸른 귀기가 돌던 두 눈이 극단적인 공포로 튀어나올 듯이 확대됐다.
“왜 그래 엄마!”
나는 덩달아 무서움에 떨며 어머니한테로 달려갔다. 어머니의 팔이 내 목을 감으며 용을 쓰는 바람에 나는 숨이 칵 막혔다. 굉장한 힘이었다. 숨이 막혀 허덕이는 나의 귓전에 어머니는 지옥의 목소리처럼 질린 소리로 속삭였다.
“그놈이 또 왔다. 하느님 맙소사 그놈이 또 왔어.”
어머니는 아직도 한손으론 방어의 태세를 취한 채 문쪽을 보고 있었다. 나는 혹시 내 뒤에 누가 따라 들어왔는가 해서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순간 머리끝이 쭈뼜했다. (중략)
“그 놈이 또 왔다. 뭘 하고 있냐? 느이 오래빌 숨겨야지, 어서.”
“엄마, 제발 이러시지 좀 마세요. 오빠가 어디 있다고 숨겨요?”
“그럼 느이 오래빌 벌써 잡아갔냐?”
“엄마 제발.”
어머니의 손이 사방을 더듬었다. 그러다가 붕대 감긴 자기의 다리에 손이 닿자 날카롭게 속삭였다.
“가엾은 내 새끼 여기 있었구나. 꼼짝 말라. 다 내가 당할 테니.”
어머니의 떨리는 손이 다리를 감싸는 시늉을 했다. 그때부터 어머니의 다리는 어머니의 아들이었다. 어머니는 온몸으로 그 다리를 엄호하면서 어머니의 적을 노려보았다. 어머니의 적은 저승의 사자가 아니었다.
“군관 동무, 군관 선생님, 우리 집엔 여자들만 산다니까요.”
어머니의 눈의 푸른 기가 애처롭게 흔들리면서 입가에 비굴한 웃음이 감돌았다. 나는 어머니가 환각을 보고 있는 게 무엇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가엾은 어머니, 차라리 저승 사자를 보시는 게 나았을 것을…….

한편 이와는 달리 다른 사람은 결코 인식할 수 없는(인식할 수 없으니 묘사도 할 수 없겠지만), 지극히 개인사적인 기억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소설을 써낸 작가로 오정희를 들 수 있다. 「중국인 거리」(1979), 「유년의 뜰」(1980), 「별사」(1981) 등 그녀의 주요한 작품 대부분은 유년기에서 당대에 이르는 자신의 삶의 내력에 관한 기억에 의존하고 있다. 그 중 「중국인 거리」는 월남한 가족이 6 ․ 25를 겪으면서 항구도시(인천)에 뿌리를 내리는 과정을 어린 소녀 ‘나’의 시점으로 그려 놓은 작품이다. 일곱 번째 아이를 임신한 엄마를 둔 이 소녀가 이러저러한 환경 속에서 초조를 겪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내고 있는 이 작품은 실상 작가의 유년시절을 회상의 형식을 통해 드러낸다는 점에서 여타의 성장소설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소설이 지닌 의의는 무엇일까. 다음을 주목해 보자.

내게 있어 소설이란 ‘만들기’보다 자신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기를 원하는 탓인지 내가 그 동안 써 온 소설들을 읽어보면, ‘나, 오정희’를 주어로 내세워 토로하는 어떤 글들보다 더 자신의 모습이, 그 소설을 쓸 때의 심리나 상황, 나아가 살아온 자취가 어쩔 수 없이 확연히 보인다. 이미 어느 글에선가, 아무리 별개의 소재, 인물을 다룬다 할지라도 작가에게 있어서 그가 쓰는 소설은 어차피 자전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말로 변명한 적이 있다. (― 오정희, 「나의 소설, 나의 삶」, 『작가세계』에서)

인용문에서 보는 것처럼 오정희에게 있어 글쓰기는 자신이 살아온 자취를 드러내는 방법의 하나이다. 그 방법이 회상의 형식을 띠게 됨은 물론이려니와 그 회상형식 또한 작가가 자기의 체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조적 기억에 다름 아니다. 오정희 소설에 있어 특히, 이와 같은 회상형식의 소설이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도 실상 작가 스스로의 삶에 켜켜이 쌓인 기억 속에서 고통과 상실의 시간을 길어내어 독자를 일깨우고, 그러한 환기를 통해 인간실존에 대한 천착과 그것의 공허함을 지속적으로 노정시키고 있는데서 연유한다. 오정희의 「별사」를 감상해 보자.

④ 소녀 시절, 정옥의 친구들 사이에서 비밀히 유행하던 놀이가 있었다. 민담(民譚)책에나 나옴직한 얘기에서 비롯된 놀이였다. 달 없는 밤, 이마 위에 은장도를 대고 둥근 거울을 보면 미래의 남편으로 필히 맺어질 얼굴이 나타난다고 했다. 두려움과, 천박한 엽기 취미에 대한 경멸도 있었지만 그 나이 또래에서, 미래의 짝을 보고자 하는 호기심과 유혹은 물리치기 어려운 것이었다. 겨울에는 물론 아무런 상(像)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정옥은 꽤 오랫동안 그 놀음을 계속했다. 불을 끈 빈 방에 일어나 앉아 보다 더 어두운 거울 속을 들여다보며 간절히 만나기 원했던 것은 미래의 남편의 얼굴이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이제 우리는 부부가 되었소, 그가 말했을 때 낯설음은 사라지고 전생(前生)에서부터 걸어오듯 그렇게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 다가왔다.
정옥은 그때까지도 막연히 사로잡혀 있던 실패감에도 불구하고 충실한 수행자로서의 공손과 정절을 맹세하며 그의 손을 잡았다. 네, 정말 그래요. 그리고 비로소 달 없는 밤, 거울 속의 얼굴을 보았다.

이상 언급한 작품 이외에도 개인사적 경험을 통한 자기 존재의 추구가 두드러지게 드러난 소설로 김채원의 「겨울의 환」(1989)을 비롯하여 김인숙의 「무너지는 세월」(1992), 「멀리, 끝없는 길 위에」(1993)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작품에도 기억을 통한 작가 자신의 존재론적 탐구가 시도되고 있지만, 그러나 각자의 체험의 다양성만큼이나 그 방법에 있어서는 편차가 드러난다.
김채원의 「겨울의 환」의 일부를 감상해 보자.

처음 어둠 속에 서 있는 당신을 발견했을 때 저는 당신이 저의 상상의 산물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만큼 당신의 출현은 의외였으면서도 또한 필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은 제게 길을 물었지요.
당신의 부름에 잠시 멈추는 순간, 길에는 아무도 없고 당신과 저 둘만 있었습니다. 길에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전부 멀어져 간 것입니다. 당신은 물론 저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당신이 묻고 있는 집, 당신의 옛집을 충분히 잘 가르쳐드릴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담밖에 서서 그 집을 넘겨다보았습니다. 등나무덩굴이 드리워진 창으로 불빛이 흐를 뿐 집안은 조용하였습니다. 그 집에서인지 다른 어느 집에서인지 간간 텔레비전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습니다. 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당신의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뒤꼭지에 미련을 남긴 채 몸을 돌렸습니다. 이상한 끌림, 이대로 돌아서고 싶지 않은, 한 마디 얘기라도 건네고 싶은 마음을 그대로 이끌고 슈퍼마켓을 향했습니다. 슈퍼마켓에서 면실유와 몇 가지 물건을 사가지고 나오다가 그 골목에서 나서고 있는 당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연스레 조금 전 당신이 길을 묻던 그 지점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거지요.

다음은 외로움 및 그리움의 절실한 감정을 회상 형식을 통해 묘사하고 있는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의 일부이다.

어느 날 그 여자가 제게 책을 읽어 주었어요. 어느 대목이 재미있어서 막 웃고 있는데, 큰오빠가 들어왔어요. 큰오빠는 저를 노려보더니 다시 방문을 꽝 닫고 나가 버렸죠. 저녁에 큰오빠에게 혼날 일을 생각하니 무섭기만 했어요. 그래서 숨은 곳이 불이 안 들어서 쓰지 않고 있던 빈방의 다락이었어요.
그 다락은 경사진 좁은 계단을 몇 개 통과해야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저녁밥도 안 먹고 잠이 들어 버렸어요. 다락에서 잠이 든 줄도 모르고 잠청을 하다가 밑으로 굴러떨어져 내렸지요. 제가 쿵, 떨어졌을 때 달려온 이는 그 여자, 그 여자였습니다. 그 여자는 제 엉덩이를 세게 때렸어요.
집을 나가 버린 줄 알았잖니, 이것아!
그 여자는 거의 울 듯 했어요. 저 때문에 말이에요. 제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다른 식구들은 다 깊은 잠에 빠져 있었는데, 아버지까지 주무시고 계셨는데, 그 여자는 그때껏 마루에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그 여자는 악마다, 라고 했던 큰오빠의 말이 다 틀린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여자에게서 느껴지던 어질머리가 그 다음으로 다 사라, 사라졌어요. 그런데 그 여자는 그 향내를 다시 풍기면서 그 파란 페인트칠 대문을 빠져나갔습니다. 저는 그 여자가 처음 우리 집 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앉아 있었던 그 마루에 앉아서 집을 나가는 그 여자를 바라봤어요. 역시 환한 햇살 속에서요.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하고, 어서 아버지가 오셨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어요.
그때 제 눈에 띈 게 칫솔통이었습니다. 그 속엔 그 여자의 노란 칫솔이 그대로 있었어요. 저는 키를 세워 그 칫솔을 꺼냈어요. 그리고 마구 달려갔습니다. 마을을 빠져 나가는 길은 큰길과 소롯한 수리조합 둑길이 있었는데, 그 여자는 수리조합 길로 걸어가고 있더군요.
저는 정신없이 뛰어 그 여자 뒤에 섰어요. 제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음직도 한데 그 여자는 그저 여민 치마 한끝을 싸쥐고 뒷모습만 보이더군요. 그 여자 뒤에 바짝 서서 그 여자의 치마를 잡아당겼습니다. 그때서야 그 여자는 돌아다봤습니다.
아, 그때 그 여자의 얼룩진 얼굴이란, 눈물에 분이 밀려나서 그 여자 얼굴은 형편없었어요. 칫솔을 내밀자 그 여자는 웃을락말락했습니다. 그 여자는 내 손에 있는 칫솔을 가져가는 게 아니라, 손을 그대로 꼭 잡았습니다. 그리고선, 제 눈을 깊게 들여다봤어요.
나……나처럼은……되지 마.
그 여자는 한숨을 포옥 내쉬었습니다. 그리고선 곧 저를, 저를 떠밀었어요. 어서 가봐, 동생 잠 깨것다아.

부연한다면 소설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서사양식의 범주에 속한다. 이야기란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회상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말하는 자의 기억을 통하지 않고는 성립될 수 없음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서사양식은 기억의 되새김, 곧 작가의 기억 속에서 창조된 형상물이라 하겠다.


Ⅳ. 되찾은 시간, 기억으로서의 소설

소설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서사양식의 범주에 속한다. 한편, 이야기란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회상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말하는 자의 회상형식을 통하지 않고는 성립될 수 없음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그 회상형식이 작가 자신이 체험한 기억을 생생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어설픈 형상화 수준에 머문다거나 사회와 철저히 절연된 채 자기만의 세계에 안주하여 대상을 신비화해 가는 것만으로는 소설의 본질을 드러낼 수 없음도 자명해진다. 따라서 기억으로서 문학이 삶의 진정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대상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치밀한 묘사가 선행되어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서사양식에 있어, 무엇보다 기억으로서의 소설이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한 개인의 정체성 구현과도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기 때문이다. 알라이다 아스만은 기억과 정체성과의 관련성 문제가 특히, 80년대 이후 매우 현실성 있는 문제로 다루어져 왔음을 지적하면서 개인의 기억은 곧 정체성에 관한 문제로 이어지고, 이는 보다 확장되어 결국 개별자들이 모인 집단의 역사, 곧 공동체의 역사 및 그 정체성과 관련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테레사 로레티스 역시 기억과 관련한 정체성의 개념에 대해 “자신의 역사를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것이자 동시에 그러한 자신의 역사를 담론적으로 중재한 정치적 해석”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사회학자인 알브박스도 살아있는 인간들을 결속시키는 가장 중요한 결속력의 수단은 공동기억임을 인식했다. (알라이다 아스만,『기억의 공간』, 변학수․백설자․채연숙 역, 경북대학교출판부, 2003, 77~78면 참조.)

우리는 공동으로 체험하고 기억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자신을 정의한다. 이는 동시에 개개인의 기억이 모여 공동 기억을 만들어냄을 의미한다. 소설 속에 반영된 과거체험을 통해, 작중인물들이 반추하는 과거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다시금 현재의 삶을 추동하고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다. 기억으로서의 소설, 기억으로서의 문학이 존재함이다.

2013-06-08 07: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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