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board

 
제목
수필의 상상력과 허구, 그 경계선에 대해서/이상렬
이름
이상렬
홈페이지
첨부화일

수필의 상상력과 허구, 그 경계선에 대해서

이상렬

수필에 대해서 일반산문이냐 창작예술이냐, 즉 신변잡기냐 문학이냐를 결정짓는 것은 곧 '창작'의 유무다. 수필이 문학의 변방에서 홀대를 받는 이유는 창작이 없기 때문이다.

창작이란, 없는 것에서 있게 하는 것이다. 즉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문학의 본질이다. 수필이 비문학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창작은 없고 있는 사실과 있었던 사건에 대한 진술뿐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지금의 수필이 나아갈 바는 창작이다. 문제는 이미 있었던 사실을 어떻게 '창작화' 하느냐가 관건이다. 그것은 '상상력'으로 극복해야 한다. 즉 수필의 무한한 주관성을 확대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수필의 상상력과 허구, 그 경계선에 대해서 고민스럽다.

하지만 이 경계를 구분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수필에서 상상력과 허구를 결정짓는 것은 장르다. 사람들은 소설을 접할 때 허구라는 기본 전제하에서 읽는다. 비록 그 소설이 작가의 자기고백적 삶을 바탕으로 한다해도 내용이 소설적 옷을 입었기에 허구로 받아들인다. 반면, 수필은 작가가 비록 거짓 내용을 썼다고하더라도 그것은 작가적 양심의 영역이지, 수필의 진실성을 허물수는 없다. 수필적 옷을 입은 이상, 그 작품은 작가의 진실한 자기고백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수필에서 허구와 진실을 쟁점화한다는 자체가 무의미하다.

단, 물리적인 사건과 사실에 관한 것 가령, 내가 가지 않았는데 갔다던지,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일어났다던지 하는 사건의 진위가 분명히 가려지는 것은 허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또한 작가적 양심에 맡길 수 밖에 없는 영역이다. 그렇지만 수필의 범주안에서는 작가의 주관적인 상상은 막을 수가 없다. 생각을 누가 지배하겠는가.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은 결코 허구가 될 수가 없다. 이를테면, 눈 앞에 보이는 골목길을 돌아서면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골목안에서 있을 법한 일들을 짐작하는 것, 이것은 생각의 확대이지 허구는 아닌 것이다. 따라서 수필에서의 허구냐 상상이냐 이 자체가 문제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평론가 차주환은 '수필에서의 허구의 논쟁은 자아표출에 따른 주관성의 확대로 해석해야 한다' 고 말했다. 이것이 곧 수필의 상상력이 아니겠는가.

2013-10-31 18:46:09
     
  
이전
  수필의 상상력
다음
  수필로 접근해 본 수필론 / 유경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