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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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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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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시23:1-6
시편 23편은 고독한 인생의 가장 친근한 벗입니다. 시편 23편은 많은 인생의 눈물을 닦아준 손수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괴로운 성도, 어쩐지 외롭고 슬프고 눈물나는 성도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 시편 23편이 우리 모두의 눈물을 닦아주는 위로의 손수건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따라서 이 시편을 새벽에 읽으면 더 은혜가 되고, 깊은 밤에 읽으면 한없는 위로가 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주석가 매튜 헨리는 말했습니다. 궁핍한 자를 풍성한 자로 만드는 시편이라고 말입니다. 루터도 말하기를 "슬퍼하는 자를 기쁨의 잔이 넘치도록 하게 하는 시편"이라고 했습니다. 칼빈도 "시편 23편은 시편 중에 황금 시편이다"고 한바있습니다. 유명한 시인 롱 펠로우의 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시는 누구의 시일까요?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다윗이 쓴 시편 23편이라고 대답하겠다고 했습니다시편 23편이야말로 수많은 성도들이 암송하고 있는 귀한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이 감명 깊은 시편 23편을 쓰게된 배경이 있습니다. 다윗의 셋째아들 압살롬은 인물이 훤칠했습니다. 얼굴이 잘났고, 몸의 균형이 잘 잡히고 두뇌가 명석한 천재형입니다.그래서 압살롬은 스스로 "내가 이만했으면 됐지"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내게 왕위를 줄 것 같지 않으니 이일을 어떻게 할꼬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은 엉뚱한 고민을 했습니다. "할 수 없다. 미안하지만 아버지를 죽이고 쿠데타를 일으켜 내가 임금이 되어야겠다" 그리고 계획한 대로 어느 날 갑자기 "압살롬 왕 만세"부르면서 예루살렘을 향해 질풍처럼 쳐들어 왔습니다. 아버지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때는 벌써 늦었습니다. 다윗은 불쌍하게 도망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아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낙망하지는 아니했습니다. 슬퍼하지도 아니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의 찬송을 불렀습니다. 마침내 다윗은 시편 23편을 쓸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 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다윗은 그의 시편 23 편을 통해서 우선 자기 자신이 위로를 받았고 후대의 수많은 인생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손 수건이 되게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삼으면 어떤 축복을 받을까요?

첫째, 부족함이 없는 축복을 받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너무도 만족스런 노래입니다. 성도는 어떤 사람인가요? 목자 되신 하나님 앞에서 마치 어린양과도 같습니다. ●시편100:3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고 했습니다. 양은 뜨거움도 추움도 견디지를 못합니다. 그만큼 약한 동물입니다. 따라서 목 자 없이는 살 수 없는 동물이기도 합니다. 나무가 흙을 떠나 살 수 없는 것과 꼭 같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는 것과 꼭 같습니다. 양은 목자를 떠나서는 살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물론 천하장사의 힘센 모습을 보십시오. 대단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학문이 있고 재간이 있습니다. 그 기술은 산을 뚫을 만큼 신기합니다. 그러나 죄를 이기는 데는 힘이 부족합니다. 상한 갈대요, 꺼져 가는 심지인 셈입니다. 더구나 구원에 대하여는 전혀 발언권이 없습니다. 신학자 커닐리스 반틸이 말했습니다. 구원에 대하여는 날개 부러진 참새와 같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수많은 고백과 찬양 의 시를 읊었습니다. 시편 150편 중에 태반이 다윗의 시입니다. 그러나 어느 한 구절에서도 나는 왕이 된 것을 만족하게 여기노라 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도 재물이 많은 고로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대상29:11)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다"고 했습니다. 내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고 모든 것이 주의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를 목자로 여기면 저절로 부족함이 없게 될 것이 아니냐는 말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고 나는 그의 기르시는 양입니다. 나의 돈, 사업, 집, 시간, 자녀, 생명 몽땅 주님 앞에 맡겨야 합니다. 주님은 그것을 창조 적인 이자를 붙여 내게다 주실 것입니다. 아멘.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삼으면 어떤 축복을 받을 까요?

둘째, 궁핍이 없는 축복을 받습니다.
본문 2절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지금 다윗의 형편이 어떠합니까? 신을 만한 신발도 없이 맨발로 도망하는 처량한 신세입니다. 너무 비참하고 암담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떠했습니까?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를 외치면서 줄곧 목자 되신 주님만 따라갔습니다. 산을 넘을 때에도, 강을 건널 때에도 주님만 따라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주님을 따라 주와 같이 가야합니다 그리하면 결과가 어떠합니까? 주님이 내가 주릴 때에 푸른 초장으로 눕게 하십니다. 주님이 내가 목마를 때에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푸른 초장이시고, 쉴만한 물가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무슨 뜻입니까? 내가 너희를 위한 푸른 초장이니라. 내가 너희를 위한 쉴만한 물가이니라는 것입니다. 양은 어리석은 동물입니다. 그래서 어디로 갈까 잘 모릅니다. 양은 반드시 목자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목자가 가면 가고, 멎으면 멎고 이것이 풍요롭게 사는 양의 방법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우왕좌왕합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아버지계신 곳이 어디입니까? 천국입니다.
천국 가기를 마음에 소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양인지라 목자 되신 예수님만 따라가면 천국에 이르게 될 것이 아닙니까. 세상에는 인생이 즐길 수 있는 놀이터가 많습니다. 오락장, 당구장, 남녀가 어울려서 춤을 추는 곳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쉴만한 인생의 푸른 초장은 눈 씻고 보아도 없습니다.
또 세상에는 먹을 것이 많습니다. 산해진미, 진수성찬, 인삼녹용도 있습니다.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영혼을 윤택하게 하는 양식이 아닙니다. 탕자가 먹었던 쥐엄 열매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벧전2:2이 말합니다. "너희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여기 신령한 젖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리라 이것이 우리의 구호입니다.
오늘 영혼이 쉴만한 푸른 초장이 어디 있을까요? 바로 우리교회가 푸른 초장이라는 말입니다. 교회에는 신령한 꼴이 있습니다. 잔잔한 시냇가가 있습니다. 사랑, 평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 교회를 열심히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삼으면 어떤 축복을 받습니까?

셋째, 두려움이 없는 축복을 받습니다.
본문 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 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편 23편은 다윗의 경험에서 만들어진 시편입니다. 그의 소년시절에는 양을 해치려는 사자와 싸운 일이 있었습니다. 골리앗과 맞서 그를 쓰러뜨린 일도 있었습니다. 여러 차례 블레셋과 싸워 승리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사울 왕이 죽이려고 추적을 했을 때,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공격해 올 때에 그는 위기를 피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다윗이 깨달은 것 있습니다. 그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바로 이것입니다. 양들이 푸른 초장에 눕고 쉴만 한 물가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동안에 그 양을 사랑하는 목자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목자는 잠시도 긴장을 풀 수가 없었습니다. 목자는 눈을 뜨고 그 양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양을 해치려는 이리가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121편의 시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목자 되신 주님의 생애를 여기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시기 위해서 주님이 죽으셨습니다 .나를 풍요롭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 자신이 가난해졌습니다.
예수님께는 재산목록이 없습니다./내게는 여유있는 것이 많이 있는데 예수님은 가난했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말씀하신 주님이 아니십니까. / 나를 높이기 위해서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나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피를 쏟으셨습니다. 주님 때문에 지금도 내 잔이 넘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의 노래가 이것 아닙니까. "내 잔이 넘치나이다"
여기 사망의 골짜기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입니다. 사망 없는 집안이 어디 있으며 사망 없는 인생이 어디 있다는 말입니까. 그런데 여기 사망의 골짜기는 푸른 초장과 너무도 대조적입니다. 하나를 밝은 낮이라고 하면 또 하나는 어두운 밤입니다.
하이덱거는 이것을 지적했습니다. "인생은 순간 순간 죽어간다. 인생은 죽음에의 실존이다" 그리고 니체도 말했습니다. 인간은 죽음을 정복하기에는 너무 늙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시고 우리 모두를 인도하십니다.
그렇다고 성도의 생활 속에 밝은 날만 있는 것 아닙니다. 푸른 초장만 있는 것 아닙니다. 골짜기도 있습니다. 어떤 골짜기일까요? 사망의 골짜기, 환난, 질병, 고통의 골짜기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눈물나게 하고 낙심, 좌절당하게 합니다. 그러나 다윗이 어떻게 했습니까? 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할렐루야

결론 ]
그렇다면 이와 같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일까요?
해답은 한 가지입니다. 목자 되신 주님 앞에서 우리 모두가 진실된 양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양 가운데는 더러 진실 되지 못한 양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양 같은 염소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염소는 결코 양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보면 목자가 양을 분별하면서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고 밝히 밝혔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우리 모두를 잃은 양으로 비유했습니다. 왜 잃은 양이 되었을까요? 본능대로 욕심, 정욕대로 자기 자기 하면서 먹을 풀만 보고 가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져 길잃은 양이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본능대로 살다가 곁길 가는 인생 많습니다. 재물만 탐하다가 탕자 된 인생 많습니다. 양은 욕심대로 살고 정욕대로만 살 수 없습니다. 목자만 따라가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남은 생애를 살 때 다윗처럼 살아가십시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시도록 살아가십시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고백하면서 믿음으로 살아 가면서 승리를 거두는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090215- 서대전중앙교회 주일예배
2009-03-11 13: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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