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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집 소철
이름
권태헌
홈페이지
첨부화일


우리 집에는 오래 된 소철이 있다.
내가 개인 사업을 한다고 점포를 열 때
한 친구가 기념으로 가져왔던 것이니
벌써 35년이 지났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소철은 1년에 한켜씩 그 키를 쌓아간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이 소철의 나이는 80년도 더 넘는 것 같다.
키가 어른키만 하고
잎이 벌어지면 사방으로 넓게 퍼지기 때문에
겨울 철 에는
앞 베란다에는 놓지 못하고
잎을 묶어 세우고 뒷 베란다 한쪽에 세워두곤 하였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우리는 이 소철을 밖에 내어 놓는다.
겨울 내내 팔이 묶여서 고생 했는데
마음껏 활개를 펴고
비도 맞고 바람과 씨름도 하면서
그리고 무엇보다 탁 트인 대기 중에서
마음껏 숨쉬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여름이 한창 기세를 부릴 때쯤이면
병아리 같은 새 잎이 돋아나고
그 잎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서
가을이 오기 전에 푸르고도 튼튼한 소철이 되고
묵은 잎은 시들어져 쳐내어 지게 된다.
몇 해 전에는 조그마한 새끼를 옆으로 내어서
이제 자신의 수명이 다 되어 갑니다
알려주는 것 같았는데
한편으로는 오래 살았지 하면서도
좀 더 살아주었으면 하는 미련이
아련하게 내 마음 속에 서리어 오기도 하였다
실제로 지금은
밑 둥치가 썩은 고목 같이 푸석해져서
혼자 서 있기도 힘들 것 같은 상태이기 때문에
내어 놓을 때 마다
올해에도 비바람을 견디어낼까 염려스럽고
금년에도 새 잎을 내려나 하면서도
그래도 모든 것 극복하고
다시 새 잎을 내었으면 하면서
늙은 소철을 밖으로 내어 놓고는 한다.
이렇게 우리와 함께 살아오던 소철이
금년에는 커다란 수난을 당했다.
하루는 외출했다 들어오면서
아파트 뒤편에 내어 놓은 소철을 보니
잎이 모두 잘려 없어지고
몸통만 몽땅하게 남아 있는 것 아닌가.
아직 여름도 안되었는데
새싹을 빨리 내라고 미리 가지치기를 하였나
하면서 의아해 했는데
그리고 나서 며칠 후 다시 보니
누군가 화분을 산산히 부수어 버렸고
소철은 땅에 밑뿌리만 묻혀서
비스듬이 누여져 있는 것이었다.
경비아저씨가 발견하고
임시로 그렇게 묻어 놓았다면서
누가 그랬는지 왜 그랬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한다.
내가 무얼 잘못했는지
그 분풀이를 화초에다 했는가 의문이 들지만
그래도 말 못 하는 화초에다
저렇게 잔인한 짓을 하다니 원망스럽기도 하다.
그렇지 않아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금년 한해를 더 살 수 있을까
염려하면서 걱정했는데
이렇게 생을 마감하는가 생각하니
안타깝고 비통하기까지 하다.
비스듬이 뉘어져 있는 모습이
마치 눈물을 흘리면서 죽어가는
늙은 애마의 그것과 같아서
왜 비명에 먼저 가느냐 하는 울부짖음이
마음속에서 울리어 온다.
뿌리가 아직 싱싱하더라는 경비 아저씨말을 듣고
새 화분과 흙을 준비해서
몸통을 다시 심어 세우고
앞 베란다 양지바른 곳에 놓아주었다.
새싹이 날 것인가 하고 윗부분을 살펴보니
버들강아지 같은 순이 솟아 있기는 한데
갈색 솜털로 덮여 있는 것이
살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말라서 갈잎같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살아 있는 것인지 죽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생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 같아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른 낙엽 같은 갈색 순에 지나지 않는다.
매일 아침마다 들여다보고
저녁에는 무슨 변화가 있나 하고 보지만
아무 기미도 없다.
가지와 잎이 전혀 없는 몸통은
참고 기다리세요 하는 것 같아서 생각해 보니
실제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참고 기다리는 수 밖에 하면서도
다시 한 번 들여다보게 된다.
금년에는 일찍 더위가 찾아와서
계절은 초여름인데도 날씨는 몹시도 무더운데
저렇게 잎이 나오지 않다가 여름이 지나면
소철은 영영 잎을 내지 못하고
말라 죽게 되는 것 아닌가 하고 걱정스럽다.
그러기를 몇 달은 지난 것 같은데
(사실은 한 달이 좀 넘었다)
갈색 순에서 연한 초록색이 내비치기 시작했다.
생명이 살아 있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었다.
노쇄해서 쓰러졌던 애마가
눈을 껌벅거리면서 다시 일어서는 것이었다.
나보다 먼저 가지 않겠다고
나와 함께 가겠다고 연약하지만
온 힘을 다해서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이제 싹이 나오기 시작했으니 살아난 것이다.
마음껏 날개를 펼치라고
다른 화분들을 옆으로 밀고 앞 베란다 한복판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지금까지 뒷 베란다에서 묶여 지내온 서러움을
참고 견디어 준 고마움에서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준 감사함에서다.
돋아난 새싹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더니
이제는 날개를 활짝 펼친 장성한 잎이 되었다.
날 보란 듯이 자랑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당신도 힘내세요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죽은 것 같은 나무 덩치 속에
숨겨졌던 생명이 살아나서
팔을 활짝 펼치고 있는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노라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나니”
하시는 말씀이 들려온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 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린도후서 4장 16~18절말씀)


2016-08-22 11: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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