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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권기훈/코 푸는 남자
이름
權奇薰 [ E-mail ]
홈페이지
http://cafe.daum.net/HELS
첨부화일



권기훈/코 푸는 남자






와이 시의 중심가에 위치한 케이 종합병원.

어느 병실에서 엄살 섞인 사내의 비명과 함께 앙칼진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악--”

“아니, 왜 이렇게 엄살이 심해요?”

“얼마나 아픈지 알아요?”

“남자가 그것도 못 참아요?”



그 병실에서 소영은 주사를 놓고는 새침하게 돌아섰다.

그 순간, 현재의 책이 떨어졌다.

“어머, 어떡해……?”

소영이 책을 집어 드는데, 책갈피 사이에 여자 사진 한 장이 삐죽 보였다.

“애인…이예요?”

현재는 얼른 사진을 낚아채었고,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애인은 무슨…….”

“이름이 뭐예요?”

“지원이, 서지원이요.”

“그럼 서현재 씨 동생이에요?”

“왜 실망했어요?”

소영은 입을 삐죽하며 돌아섰다.

“참 고향이 어디죠?”

“그건 왜 물어요?”

“아뇨. 내가 아는 사람과 닮은 것 같아서…….”

“그게 누군데요?”

“음악 선생님!”

“네?”



소영은 동료 언니 재희와 땀을 흘리며 무용연습을 하고 있었다.

“글쎄, 초등학생처럼 음악 선생님 어쩌고 기가 막혀서, 난 처음에 농담하는 줄 알았다니까!”

“네가 그 사람의 선생님을 닮았겠지 뭐.”



재희와 소영이 무용연습을 끝내고, 샤워하고 있었다.

“근데 그 환자 뭐 하는 사람이래?”

“모르겠어! 알게 뭐야! 언닌 참 별걸 다 알려고 그래!”

“너도 내 나이 돼 봐라.”

“자기 말은 학생이라고 그라는데 이상한 책만, 그것도 보는 건 한 번도 못 봤으니…….”



그날 오후 재희와 소영은 홍엽이 떨어지는 한적한 가로수 길을 걷고 있었다.

“재미있네! 뭐. 근데 너 오늘 뭐 할 거니?”

“엄마한테 가 봐야 해.”

“참 그렇지…….”



버스에 탄 소영은 창밖으로 돈 봉투를 내밀었다.

“이것 갖고 싼 방 하나 얻어 봐.”

“그래, 알았어. 어머니 병간호 잘해 드리고 와.”

소영은 말없이 끄덕였다.



스쳐 가는 저녁 풍경……. 소영은 수심에 잠긴 채 달리는 버스에 앉았다.



초췌한 어머니는 자리에 누워 있었고, 소영은 물그릇을 들고 들어와 앉았다.

어머니는 일어나려다 심한 기침을 했고, 소영은 얼른 부축하고 약봉지를 뜯었다.

“병원 일 고단할 텐데 뭐하러 왔누……?”

“약…….”

“약 먹어서 날 병 같음 벌써 낫제…….”

“제발 기운 차리고 일어나세요.”

“틀렸어…….”

소영은 그만 눈물을 쏟아 놓을 듯이 글썽였다.

“엄마가 이러시면 난 어쩌라고…….”



다음 날, 병원 복도에서 소영이 주사용품 카트를 밀며 바삐 지나는데, 재희가 뒤따르며 물었다.

“잘 갔다 왔니? 어머닌 좀 어떠셔?”

“맨날 그렇지 뭐. 가까이 모셔 와야 하는데.”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하다.”

“별 소릴 다 하고 있어. 참, 그런데 언니, 방은 구했어?”

“아직. 알아보긴 했는데 그 돈 갖곤 쉽지가 않더라.”

그때, 넥 브레이스(목 보호대)를 착용한 현재가 휠체어를 타고 오다가 유재희에게 다가섰다.

“방 구하려고 그래요?”

소영은 자신에게 묻는 줄 알고, 보지도 않은 채 쏘듯이 말했다.

“아뇨!”

재희는 민망한 듯이 현재에게 말했다.

“자취방요. 혹 서현재 씨, 알고 있는 방 하나 없어요?”

“아, 그런 거라면 진작에 말씀했어야죠. 제가 누굽니까. 어떤 방을 원해요? 말씀만 하시죠.”

소영은 돌아보며 현재에게 말했다.

“그만 됐네요, 훼방꾼님!”

“아니, 얘…….”

“나 원 참, 기가 막혀서……. 해결사란 말은 들어 봤어도 훼방꾼이란 말은 생전 첨(처음) 들어보네.”

“미안해요. 대신 사과할게요.”

“유 간호사 님, 방 얻어 주면 황 간호사한테 커피 한잔 얻어먹게 해주는 거죠?”

“그럼요.”

“유재희 씨, 고마워요!”

하고 소영을 보자 소영은 샐쭉하고 갔다.



소영은 주소쪽지를 들고 선우의 집 앞을 찾아왔다.

열린 대문 안쪽으로 조금은 낡은 건물과 작고 아담한 정원에 하얀 마리아상이 보였다.

소영은 기웃거리며 들어갔다.



선우는 낮은 사다리 위에서 정원수를 다듬고 있었고, 소영은 넋 나간 듯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선우가 돌아보며 물었다.

“누구요?”

“저…….”

선우는 소영을 보는 순간, 놀라며 그대로 발을 헛디디고 사다리에서 떨어졌다.

소영은 황급히 다가앉으며 물었다.

“괜찮으세요?”

선우는 땀을 훔치며 어쩔 수 없이 태연한 척하며 일어섰다.

“어떻게 왔어요?”

“저, 빈방 있어요?”

선우는 고개를 저었다.

“빈방이 하나 있긴 하지만……. 세놓은 적은 없는데요.” 소영은 멋쩍게 웃으며 정원이 마음에 드는 듯 주인에 대한 믿음의 뜻으로 말했다.

“정원이 참 예쁘네요‥“



소영은 아쉬운 듯이 나왔다.

그때, 연 선생이 들어가다가 돌아보았다.

“아가씬 누구요?”

“자취방 구하려고요.”

소영이 돌아보는 순간, 연 선생의 눈이 확 커졌다.

“그럼…….”

“잠깐만!”

소영이 돌아보았다.

“방이 꼭 필요하면 잠깐 기다려 봐요.”

연 선생은 갸웃하고 들어갔다.



소영은 백화점의 선물 코너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 눈에 모형 금송아지와 목각 송아지가 대조적으로 보였다. 판매원이 나서며 말했다.

“금송아지 한 마리 몰고 가세요. 금송아지는 행운을 가져다준답니다.”

소영은 금송아지를 하나 샀다.



소영은 이불을 덮고 벽에 기대앉은 채 책상 위에 놓인 금송아지를 보며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펌프질하는 소리, 세수하는 소리, 코 푸는 소리, 가래침 뱉는 소리가 들렸다.

소영은 역겨운 듯 얼굴을 찌푸렸다.



선우는 수돗가에서 세수하고 있었다.

연 선생이 들어왔다.

“너무 닮았어! 똑 같아! 어쩌면 닮아도 저렇게 닮을 수가……?”



소영은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연 선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그 여자가 다시 돌아온 줄 알았다니까! 하마터면 까무러칠 뻔했지 뭐야! 나도 놀랬는데, 자넨 어땠는지 안 봤어도 알만하네!”

대답 대신에 선우의 세수하는 소리, 가래침 뱉는 소리, 코 푸는 소리가 들렸다.

소영은 역겨운 듯 얼굴을 찌푸렸다.

“괜히 들어왔어. 이럴 줄 알았으면…….”

하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소영이 주사용품 카트를 밀고 지나가는데, 현재가 휠체어를 타고 와서 소영의 앞을 가로막았다.

“커피 사줘요. 안 사줘요?”

“왜요?”

“주사 아프게 놨으니까!”

소영은 주사용품 카트를 밀며 새침하게 갔고, 현재는 앞질러가며 말했다.

“그리고 또 있어요.”

소영은 눈을 흘겼다.

“바빠요! 비켜요!”

“그 눈 흘기는 모습까지 똑같다니까!”



소영은 재희에게 말했다.

“언니, 그 환자 왜 그렇게 장난이 심한지 모르겠어. 한 번도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다니까!”

“글쎄, 난 모르겠던데, 소영이 너한테만 그러는 거 보니, 아무래도 수상하다, 얘.”

“무슨 뜻이야?”

재희는 생각난 듯이 말했다.

“얘, 참, 알고 보니 그 환자 아버지가 소문난 땅 부자라더라. 게다가 외아들인 데다가 한때, 고시공부까지 했다더라.”

“……?”

“그러니 네가 찾는 왕자님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만하면 나 보기엔 괜찮은 것 같으니 잘해 봐라.”

소영은 주사용품 카트를 밀며 말했다.

“환자는 취미 없네요!”

그때, 현재는 오다가 멎었고, 소영과 재희는 그대로 다른 병실로 들어갔다.



현재는 휠체어를 타고 따라 들며 말했다.

“환자는 뭐 평생 환잔가. 이봐, 새침데기 아가씨! 나, 이래 봬도!”

“집에 가면 나도 금송아지 있다고요!”

현재는 빈정대듯 말했다.

“커피 한잔 얻어먹기 되게 힘드네!”

소영은 노려보았다.

“아, 아니에요, 유재희 씨!”

하며 현재는 재희를 보며 소영을 안으려 했다.

“왜 이래요!”

하고 소영은 밀어 버렸다.

현재는 넘어졌다.

소영은 황급히 현재를 부축했다.

재희는 깔깔대며 웃었다.



유리는 악보를 보며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다. 서툴지만 열정적이었다. 순간, 툭! 하고 줄이 끊어졌고, 유리는 낭패한 표정이 되었다.

얼른 일어나 책상 서랍을 뒤졌다. 그러나 없는 모양이었다. 유리는 잠시 생각하다가 밖으로 나갔다.



소영은 책상 위에서 유난히 반짝이고 있는 금송아지를 보고 있었다.

“이게 진짜 금이라면…….”

그때, 유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소영은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유리가 웬일이야?”

유리는 끊어진 바이올린 줄을 내보였다.

“내일까지 연습해 가야 하는데…….”

“그런데?”

“무서워서 혼자 못 가겠어.”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유리와 소영은 정원을 나오고 있었다. 유리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별이 참 아름답죠?”

그러나 소영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래, 아름답구나.”

“아이 참, 언닌…….”

소영과 유리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한 곳을 보았다.

선우도 저만치 정원에서 별을 보며 서 있기 때문이었다. 쓸쓸한 모습이었다.

소영은 갸웃했다.

그러나 유리는 알고 있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바이올린을 켜는 유리와 신기한 듯 보는 소영.

유리는 바이올린을 멈추었다.

소영은 유리를 보았다.

유리는 문득 물었다.

“우리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생각하다니?”

“선생님과 결혼할 뻔한 여선생님이 있었대요.”

“그런데?”

“그런데 연 선생님의 말씀으론 언니가 그분을 참 많이 닮았대요.”

소영은 더욱 이상한 눈으로 유리를 보았다.

“어쩌면 선생님께선 그래서 언니한테 이 방을 주었는지도 모르겠어요.”

“……?”

“그동안 이 방은 그 여선생님이 떠나신 후론 이제까지 한 번도 다른 사람한테 빌려준 일이 없었는데 말이어요.”



연 선생이 정원수를 다듬고 있는 선우의 사다리를 잡아 주고 있었다.

그때, 소영과 유리는 테니스장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소영이 쿡! 웃었다.

“왜 웃어요?”

“요즘 닮았다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연 선생과 선우는 함께 웃으며 들어가는 소영과 유리를 바라보았다.



현재는 휠체어를 탄 채 창밖을 보고 있었다.

재희가 지나다가 보며 물었다.

“오늘은 왜 그렇게 우울해 보여요? 황 간호사 못 봐서 그래요?”

“오늘은 왜 안 보이죠?”

“쉬는 날이에요.”

“그랬군요.”

재희는 다가서며 물었다.

“황 간호사 어디가 그렇게 좋아요?”

“그 새침데기 아가씨 그냥 귀엽죠. 뭐.”

“그럼 혼자만 끙끙 앓지 말고 정식으로 데이트 신청해 보시지 그래요.”

현재는 쓸쓸히 웃었다.

“황소영 씨 너무 깨끗해서 내가 다가서면 반드시 때 묻히고 말 것 같아서요.”



선우와 연 선생은 바둑을 두고 있었다. 연 선생은 자신만만하게 돌을 놓고, 선우는 초조한 표정이었다.

“이거 낭팬데…….”

“졌으면 돌 던지지그래!”

그러나 선우는 묘수 자리를 찾은 듯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러다가 해지겠군.”

연 선생은 일어서려 했다.

그때, 선우는 그 묘수 자리에 돌을 놓았다.

연 선생은 탄식하듯 무릎을 쳤다.

“아차! 그걸 몰랐군! 딱 한 수만 물리세!”

“그럴 순 없지!”



소영이 물었다.

“유리는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부모님은?”

유리는 금세 눈시울이 젖었다.

소영은 유리를 보았다.

“중학교 2학년 때 두 분 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저런…….”

“이 선생님은 아버지 후배 되셔요.”

“그랬구나…….”

소영은 분위기를 의식하며 말했다.

“너 참 바이올린 잘 켜더구나. 바이올린은 언제부터 배웠니?”

“아버진 제가 유능한 바이올 리스트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시면서 박봉으로 모아 둔 적금을 해약해서 제게 바이올린을 선물하셨죠. 그런데 바로 그날…….”

소영은 그만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다시 분위기를 의식하며 말했다.

“그럼 연 선생이란 분은 이 선생님과 어떤 사이시니?”

“네, 같은 학교에 근무하셔요.”

“하지만 그분은 이 선생님하곤 딴판인 것 같아.”

“어떤 점이요?”

“암튼 말씀도 잘하시고 때론 허풍도 세신 것 같고…….”

“겉보긴 그래도 마음씨가 좋으셔요. 이 선생님을 돕던 오 선생님이 떠나신 후 여러 가지로 도움을 참 많이 주시곤 해요.”

“언제 기회 있을 때 연주 좀 부탁해도 되겠니?”

“그러죠. 뭐. 잘은 못하지만…….”

“실은 내 꿈이 발레리나였거든.”

“어쩐지 그런 분위기를 느꼈어요.”

“너 참 감각이 대단하구나.”

“아니, 뭘요.”



연 선생과 이 선생은 까르륵……!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는 아랫방 쪽을 보았다.

연 선생이 물었다.

“오늘은 출근 안 했나 부지?”

“응, 쉬는 날인가 봐. 유리하고 꽤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애가 외롭게 자라서 그런지 부쩍 따르고 그래.”

“사람은 어때?”

“모르겠어. 별로 얘기 나눌 기회가 없으니, 그냥 착하고 좋은 사람 같아.”

“아무 느낌도 없어?”

“무슨 소리야?”

“처녀 총각이 한집에 살면서 너무 재미가 없는 것 같아서.”

“처녀 총각? 자네 정말……?”

“아, 미안. 노총각은 총각 아닌가……? 그나저나 그놈은 아직도 소식 없나?”

“그놈이라니?”

“자네 제자 말이야!”

“아, 글쎄 어디서 무얼 하는지 통 소식이 없으니 걱정일세.”



연 선생과 이 선생은 마루에서 내려왔다.

그때, 소영이 나오다가 연 선생을 보았다.

“안녕하세요?”

“오늘 쉬는 날이라고요?”

“네.”

유리도 나왔다.

“안녕하셔요?”

“너 요즘 예뻐지는 것 같구나!”

“아이, 선생님은…….”

소영은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어디 가세요?”

“바람 좀 쐬려고요?”

“점심은?”

“먹었어요.”

“나 참, 맛있는 거 혼자만 해 먹지 말고 이 선생이랑 좀 나눠 먹고 그래요.”

선우는 민망해했다.

“원 싱겁긴 어서 가기나 하게.”



근처 호수에서 연 선생의 비명이 들리었다.

“아이쿠우!”

소영이 돌아보면, 연 선생은 저만치에 주저앉아 있었다.

“어머, 왜 그러세요?”

“아유, 나 참, 소영 씨 쫓아오다가 그만 발목을 뼜지 뭡니까. 무슨 여자 걸음이 그렇게 빨라요.”

소영은 쿡 웃었다.

“남은 아파 죽겠는데 웃긴 왜 웃어요?”

“죄송합니다.”

소영은 호숫가 바위에 앉았다.

연 선생도 앉았다.

그들의 시야에 잔잔한 호수의 물결…….

소영은 호수 건너편에 위치한 넓은 정원의 별장을 보고 있었다.

연 선생은 하늘을 보는 듯 딴청을 부렸다.

“하늘이 맑군요.”

소영은 여전히 별장을 보고 있었다.

연 선생은 하늘을 보며 말했다.

“하늘처럼, 눈 부신 햇살처럼 그렇게 살고 싶군요.”

소영은 여전히 별장을 보고 있었다.

연 선생은 소영을 보며 물었다.

“부러워요?”

“…….”

“참 이 선생 어때요?”

“……?”

“사람이 어떠냐고요?”

“그냥 그렇죠. 뭐.”

“소영 씨한테 잘 안 해줘요.”

“말씀이 없으신 분 같아요.”

“그 사람 옛날엔 그렇지 않더니만 소영 씨가 얘기 좀 시켜 봐요. 알고 보면 외로운 사람이에요.”

“…….”

“그렇게 지내다 보면 누가 또 알아요. 인연이 될는지……. 옛말에 친하게 지내다 보면 밥 먹여 준다는 말도 있잖아요.” “옛말에 그런 말도 있어요?”



소영은 간호사실에서 뭔가를 급히 찾고 있었는데, 현재의 목소리가 들리었다.

“뭘 그렇게 찾아요?”

현재는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며 싱글벙글 웃었다.

소영은 대꾸하지 않고 계속 뭔가를 찾고 있었는데, 그때, 재희가 나타나며 소영에게 물었다.

“수술환자 차트 아직 못 찾았어? 큰일 났네. 곧 수술 들어갈 시간인데.”

현재는 시늉을 해 보이며 물었다.

“이렇게, 이렇게 생긴 거 찾아요? 내가 도와줄까요?”

재희가 대신 대답했다.

“그래 주실래요?”

“찾아 주면 커피 사주나요?”

소영이 본채도 않고 대답했다.

“알았으니 빨리 찾아 주기나 해요.”

“정말이죠?”

“속아만 봤어요?”

현재는 차트를 내주었다.

“여기 있어요!”

소영은 어이없다는 듯이 쏘아보았다.

“아니?”

“저쪽 휠체어 위에 있던데요.”

재희가 말했다.

“오! 맞아. 조금 전에 그 환자 이빈후과 보냈었잖아.”

소영은 새촘하게 차트를 낚아채었다.



휠체어를 탄 현재에게 소영이 커피를 뽑아 주고 있었다.

그때, 목발 짚은 환자가 일부러 부딪힐 뻔하며 지나갔다.

소영은 놀라며 그 환자를 쏘아봤다.

“어머머!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환자는 저만치 가다가 소영을 힐끔 돌아보고 갔다.

현재가 물었다.

“괜찮아요? 기왕이면 한잔 더 뽑지 그래요.”

“아니, 두 잔씩이나 마시게요?”

“혼자 무슨 재미로 마셔요.”

소영은 새촘하게 돌아섰다.

“소영 씨!”

소영은 돌아봤다.

“바람 좀 쐬고 싶어요.”

“그래서요?”

“간호사가 뭐 합니까?”

“뭐예요?”

현재는 넥 브레이스(목 보호대)가 지겹다는 듯 말했다.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아요.”

“난 바빠 죽겠다고요!”

“그래도 소영 씨는 행복한 죽음이네요.”

“뭐예요?”

“아, 아니에요. 혼자 나가 보죠. 뭐.”

현재는 급히 가며 말했다.

“하지만 사고 나면 책임져야 할걸요.”

“기가 막혀서…….”



소영은 현재의 휠체어를 밀고 잔디밭에 와 멎었다.

“소영 씨는 음악 선생님 얘기 듣고 싶지 않으세요?”

소영은 시큰둥하게 말했다.

“관심 없어요!”

현재는 커피를 마시며 회상에 잠기었다.

어느 양로원에서 무의탁 노인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고, 옷을 입혀 주는 오 선생과 선우의 모습 위에 현재의 목소리가 들리었다.

“음악 선생님과 영어 선생님은 정원 가꾸는 게 유일한 취미였죠.”



현재는 회상에서 돌아오며 말했다.

“음악 선생님은 영어 선생님과 같은 학교에 근무하셨는데, 영어 선생님 댁에서 자취하셨죠.”

“…….”

“그리고 전 부모님 성화에 영어 선생님 댁에 덤으로 맡겨졌고요.”

“…….”

“그런데 음악 선생님도 소영 씨처럼 꽤 새침데기였죠.” 소영은 짜증스럽게 본다.

“영어 선생님이랑 데이트할 때면 내가 영어 선생님 대신 음악 선생님께 ‘선생님, 추우신데 안아 드려도 될까요?’하면 ‘얘가 왜 이래!’하셨죠.”

소영은 현재의 시늉에 쿡 웃었다.

“소영 씨, 손 한번 잡아 봐도 될까요?”

하고 손을 잡으려 하자 소영은 그 손을 뿌리쳤다.

“어머, 왜 이래요!”

현재는 쓸쓸히 웃으며 생각에 잠기었다.

소영이 물었다.

“영어 선생님과 음악 선생님은 서로 무척 사랑했나 봐요?”

“음악 선생님도 소영 씨처럼 영어 선생님 앞에선 새침을 떨곤 했지만, 영어 선생님은 모른 척하곤 했죠.”

“…….”

“하지만 난 달라요. 이상보단 현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니까요.”

“…….”

현재는 소영의 손을 힘 있게 잡았다.

소영은 조금 놀랐다. 그러나 그대로 보았다.

현재는 손을 놓으며 말했다.

“커피 잘 마셨어요. 다음엔 내가 살게요.”



그 밤도 소영은 금송아지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현재의 목소리가 들리었다.

“환자는 뭐 평생 환잔가! 이봐, 새침데기 아가씨! 나, 이래 봬도!”

“집에 가면 나도 금송아지 있다고요!”

소영은 여전히 금송아지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재희가 들려주었던 말을 생각했다.

“얘, 참 알고 보니 그 환자 아버지가 소문난 땅 부자라더라!”

소영은 금송아지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게 진짜 금이라면…….”

소영과 재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었다. 소영이 말했다.

“생각보다 얘기해 보니 쬐끔은 괜찮은 치 같아.”

재희가 말한다.

“그 친구 제법이네. 무슨 얘길 했길래 그렇게 꼴도 보기 싫다던 우리 소영 양의 마음을 싹 바꿔 났지?”

“그 사람은 만날 때마다 자기 고등학교 선생님들 얘길 하곤 해. 특히 영어 선생님과 음악 선생님 얘길.”

“영어 선생님? 얘, 참 너희 집 아저씨도 영어 선생님이라며? 그렇다면 혹……?”

“말도 안 돼. 영어 선생님이 어디 한둘인가 뭐.”

“하긴……!”



소영과 재희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얘!”

소영이 돌아보았다.

“오늘, 네 자취방 구경 좀 해도 되겠니?”

“좋을 대로.”



선우의 집 앞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어맛!”

“아이쿠!”

나오던 연 선생과 재희의 부딪힘!

쏟아지는 과일……!

연 선생은 허겁지겁 과일을 주웠다.

소영과 재희는 멍하니 보다가 웃었다.



소영과 재희는 과일 봉지를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미안해서 어째!”

“미안하긴! 이 혹 좀 봐 얘! 그런데도 그친 미안하단 말도 없었잖아! 아유 아파!”

“사람이 정말 미안하면 말도 못하잖아.”

“그런데 그 치가 네가 말하던 너희 아저씨니? 진짜 깨어진다! 깨어져!”

“뭐가? 머리가?”

“환상이!”

“연 선생님이라고 이 선생님의 친구분이신데, 수학 선생님이셔.”

“아니, 뭐 수학선생? 그러면 그렇지! 아휴 꼭 정원사 사다리 잡아 주는 아저씨 같이 생겼더라 얘!”



재희와 소영이 방에서 나왔다.

“왜 벌써 가려고? 저녁 먹고 가지.”

“다음에.”

그때, 선우가 들어오며 소영에게 물었다.

“아! 손님이 오셨나 보죠?”

“아, 네.”

“유재희라고 해요.”

“이선우라고 합니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소영이 귀엽게 봐…….”

소영은 재희를 꼬집었다.

“아야!”

소영은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럼.”

하고 선우는 들어갔다.

소영은 재희에게 말했다.

“왜 그래, 언니!”

하지만 재희는 선우라는 지성미에 취한 듯 연기하고 있었다.

“진짜 근사하게 생겼다, 얘! 뭐랄까……? 시적이랄까……? 아니, 그 분위기, 그 목소리……!”

“뭐가 좋다고 그래, 남자가 좀 남자다운 데가 있어야지.”

“더는 어떻게 남자다울 수가 있단 말이니.”

“암튼 난 싫어!”

“오 그래, 너 참 그런 애였지.”



그 밤에 소영은 병원 앞으로 걸어오는데, 휘파람 소리가 들리었다.

소영은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잔디밭에 앉아 있던 현재가 일어섰다.

“야근이에요?”

소영은 놀랐다가 알아보고 다가섰다.

“밤 기온이 찬데 여기서 뭐 해요?”

“갑갑해서 나왔어요. 저 넓은 밤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음악 선생님이 생각나요.”

현재와 소영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 보육원에서 오 선생과 선우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고 있었고, 입을 맞추었고, 다독거려 주고 있었다.

그 회상 위에 현재의 목소리가 들리었다.

“음악 선생님이 떠나신 후 그 정원은 영어 선생님의 몫이 되었죠. 얼마나 열심인지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가 아니라 마치 꿈을 가꾸는 정원사 같았어요.”



현재는 회상에서 헤어나며 말했다.

“난 영어 선생님의 잃어버린 현실을 찾아 주고 싶었지만 결국은 실망만 안겨 드리고 말았죠.”

“그분은 결혼하셨나요?”

“아뇨.”

“……?”

“왜 그래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참 이상해요. 음악 선생님이 영어 선생님을 그렇게 좋아했다면 왜 떠났을까요?”

현재는 별을 보며 우울해졌다. 소영은 더욱 의아히 보았고, 현재는 울적하게 말했다.

“저 하늘 어딘가에 별이 되셨을 거예요.”

“어쩌면……, 제가 공연한 걸 물어봤나 보군요‥“

소영은 젖은 눈으로 보았다.

별님 같은 오 선생의 영혼이 휘황한 달빛 아래, 선우의 정원 잔디밭에서 나비처럼 춤(고전무용)을 추고 있었다.

그 회상 위에 현재의 목소리가 들리었다.

“영어 선생님께선 밤마다 별이 되신 음악 선생님의 영혼이 그 정원에 내려와 춤을 추는 꿈을 꾸신다고 하셨죠.”



그 밤. 이불 속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 소영 위에 현재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왔다.

“그래서 영어 선생님께선 그런 환상에서 깨어나기 위해 한때 신부님이 되시려고 하기도 하셨대요.”

“…….”

다시 현재의 목소리 울려왔다.

“하지만 잊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그 환상은 지울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소영은 뭔가를 알았다는 듯 불현듯 밖으로 나갔다.



그 정원의 달밤. 소영은 달려와서 확인하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밝은 달……, 푸른 잔디밭…….

소영은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오 선생처럼 춤(현대무용)을 추기 시작했다.

그때, 바이올린 소리…….

소영이 돌아보면, 유리가 바이올린을 켜며 오고 있었다.

“아니, 유리야?”

“잘 추시네요. 며칠 있으면 이 선생님 생신인데, 우리 축하선물로 연습해 두는 건 어떨까요?”

“좋아!”

소영은 살포시 유리를 안았다.



소영과 선우는 출근을 서두르며 나왔다.

“병원 일 힘들지 않아요?”

소영은 웃었다.

“소영 씨도 빨리 결혼해야죠. 결혼하면 생활이 조금은 덜 힘 든다고들 하더군요.”

“그런데 선생님은 왜 안 하셨어요?”

“글쎄요‥“

소영은 선우를 보았다.

“그럼.”

“저, 선생님.”

선우는 소영을 보았다.

“혹……, 병원에 입원한 제자 분 계세요?”

“아뇨. 없는데…….”

“그럼 혹 이름이……?”

그때, 전화가 울리었다.

선우는 전화를 받기 위해 마루로 올라갔고, 소영은 뭔가를 말하려다가 돌아서 나갔다.

선우는 전화를 받으며 소영을 보았다.



병실에서, 목발 환자가 불량하게 화를 내며 소리 질렀다.

“아니, 뭐 이런 게 다 있어! 갈아 달라면 갈아줄 일이지 간호사가 하는 일이 뭔데 그래, 엉?”

소영은 파랗게 질리어 있었고, 목발 환자는 더욱 무섭게 소리 질렀다.

“나한테 혼나고 싶어? 이 병원 원장이 누구야? 원장한테 당장 가볼까?”

소영은 겁이 났지만 대들듯이 따졌다.

“지금 시트도 없고, 또 이만하면 깨끗하니, 내일 갈아 주겠다는 데, 왜 화를 내고 그래요?”

환자는 더욱 화를 내었다.

“얘가 아직 내가 누군지 모르는 모양인데, 너 당장 쉬고 싶어? 좋은 말할 때 내놔!”

“없는 걸 당장 어떻게 내놓으란 말이에요?”

환자는 때릴 듯이 목발을 치켜들었다.

“이게 그냥!”

소영은 겁에 질린 채 어쩔 줄을 몰랐는데……. 그때, 현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영 씨!”

돌아보면, 현재가 나타났다.

현재는 급히 소영에게 말했다.

“저, 지금 원장님께서 급히 찾던데 빨리 가 봐요.”

하고 소영을 잡아끌고 나갔다.



소영은 잔디밭 벤치에 앉아 홀짝홀짝 울고 있었고, 현재는 소영을 위로했다.

“그 사람 소문 듣자니 별이 일곱 개라던데, 그러다가 당하기라도 하면 누구 손해예요.”

“체! 인간도 아니야…!”

소영은 울다가 다시 현재를 보며 물었다.

“아니, 그런데 어떻게 된 거예요?”

“뭐가요?”

“오늘은 말짱하잖아요.”

현재는 실없이 웃으며 말했다.

“나 실은 중환자 아니에요. 그동안 소영 씨한테 관심 끌려고 엄살 좀 피운 거죠.”

“아니, 뭐예요? 그럼 원장님께서 찾는다는 건 또 뭐예요?” “원장님이 소영씰 왜 찾겠어요.”

“아이 참,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위기에서 구해 줬는데, 고맙다는 말도 안 해요.”

“고마워요.”

“마지못해서?”

“그럼 어떡하면 되죠?”

“실은 나 내일 퇴원해요. 그동안 즐거웠어요. 소영 씬 괴로웠겠지만……, 진심으로 사과할게요. 그동안 괴롭힌 거 미안해요.”

“…….”

현재가 손을 내밀었다.

소영이 그 손을 잡았다.

“잘 있어요.”

소영은 아쉬운 듯 말했다.

“잘 가요‥“

소영은 깊은 눈으로 현재를 보았다.



소영은 출근준비를 하다가 뭔가를 생각하고는, 금송아지를 핸드백에 넣고 나갔다.



아기를 업은 지원이 간호사실을 찾아왔다.

“저……, 서현재 씨…….”

재희는 지원을 보며 말했다.

“말씀하시죠?”

“몇 호실이에요?”

“아 네, 삼백 구혼데 저기 복도 끝 방이에요.”

“고마워요.”

지원은 병실을 찾아가고 있었고, 재희는 지원의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때, 소영은 꽃다발을 들고 오고 있었다.



소영은 놀라게 하려는 듯 꽃다발을 감추고 현재의 병실을 들어섰다.

그때, 지원은 아기를 업은 채 짐을 챙기고 있었다.

순간, 소영은 어리둥절하다가 다가서며 물었다.

“저, 서현재 씨……?”

지원은 돌아보며 말했다.

“아, 예. 퇴원 수속하러 갔어요.”

소영은 지원의 아기를 보며 말했다.

“아기가 참 예쁘네요.”

“고마워요. 아빠 많이 닮았죠?”

소영은 기가 막힌 듯 되물었다.

“네?”

지원은 글썽이며 말했다.

“저희 아빠랑 오늘 첫 상봉하는 거예요.”

“……?”

“우린 동성동본이었기 때문에 양가의 반대에 부딪혀 헤어졌더랬어요.”

“……?”

“그런데 애 아빤 이 녀석을 가진 줄도 모르고 글쎄, 제가 딴 데로 시집간 줄만 알았대요.”

소영은 더욱 기가 막힌 듯 보았다.

“며칠 전에야 겨우 친구를 통해 입원소식을 들었는데, 하마터면 또 못 만날 뻔했지 뭐예요.”

마침내 소영은 뻥하니 보았다.



병실을 나오는 소영은 꽃다발을 휴지통에 처박고 갔다.



재희는 호수에서 돌아서며 빽 소리쳤다.

“야! 너 그 얘길 왜 이제야 하는 거니?”

소영은 핸드백을 열고 뭔가를 찾는 듯했고, 재희는 계속 흥분해서 소리 질렀다.

“어쩐지 오후 내내 네 표정이 이상하더라니!”

소영은 핸드백 속의 금송아지를 보았다.

“뭐 그런 자식이 다 있어!”

소영은 금송아지를 꺼내 들고 호수 건너편의 별장을 보았다. “유부남 주제에 총각행세하고 말이야!”

소영은 금송아지를 만지작거리며 여전히 호수를 보았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 더니!”

“……?”

“알고 보니 그 사람 아버지가 글쎄……!”

“무슨 말이야?”

“그런데 너 혹?”

소영은 약간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넌 신문도 안 보니? 그런데 너 혹?”

“난 아무렇지도 않다는데 왜 그래, 언니!”

“아니, 그런데 너 아까부터 뭐하는 거니?”

“아무 것도 아니야.”

재희는 소영의 금송아지를 보며 물었다.

“너 이거 그 치 주려고 가지고 나왔지? 그렇지?”

소영은 금송아지를 핸드백에 넣고 닫았다.

“얘! 그만 가자!”



그 밤의 나이트클럽에서, 소영과 재희는 현란한 불빛, 사람들 속에 어울려 춤을 추고 있었다.



소영과 재희는 흐느적거리며 밤거리를 걸어오고 있었다.

소영은 혀 꼬부라진 소리로 흥얼거리며 걸었고, 재희는 소영을 부축하며 위로했다.

“잊어버려……. 까짓거 흙탕물에 옷 한 벌 버린 셈 치고…….”

소영은 마침내 진하게 울었다.

“엄마아…….”

“얘, 정신 차려……. 안 되겠다. 택시! 택시이!”

소영은 그만 축 늘어졌다.

“어머, 얘 좀 봐. 정말 취했나 봐.”



그 밤의 문을 열어 주던 선우가 눈이 둥그레졌다.

재희와 소영이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

재희는 소영을 부축한 채 선우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술 마셨어요?”

소영은 울음을 터뜨리며 안기었다.

“선생니임!”

선우는 어쩔 줄을 몰랐다.

“부탁합니다, 선생님.”

재희는 가버렸고, 선우는 엉거주춤 소영을 안은 채 재희를 바라보았다.

“아니, 재희 씨…….”

소영은 축 늘어졌고, 선우는 난감했는데…….



선우는 소영을 안고 들어와서 이불 위에 눕히었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떠 와 수건을 헹구어 짜서 찜질했다.

소영은 죽은 듯 조용했고, 선우는 소영을 보았다.

잠시 후 부스스 일어나는 소영은 주위를 살피었다.

“정신이 좀 들어요?”

“아이, 머리야……. 죄송해요, 선생님…….”

선우는 물 대야를 들고 나갔고, 소영은 흐느껴 울었다.



소영은 가벼운 음악을 들으며 천장을 보고 누운 채 나풀대는 발부터, 노래 따라 흥얼거렸다.

그때, 문이 덜컹 열렸다. 유리가 들여다보며 말했다.

“큰일 났어요, 언니!”

“왜 그래, 유리야?”

“선생님이 사다리에서 떨어지셨어요!”

소영은 벌떡 일어났다.



선우의 엉덩이에 주사를 놓았다. 그리고 소영은 선우의 다리에 붕대를 감았고, 반창고를 붙이었다.

“아!”

선우의 짧은 비명!

유리는 지켜보며 물었다.

“많이 아프세요?”

소영이 대신 대답했다.

“당분간 아플 거예요.”

비명 지른 게 민망한 듯 선우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참을 만해요……. 쉬는 날인데 미안해요. 하지만, 집안에 간호사가 있으니 좋네요.”

소영은 간호사 특유의 주의를 시켰다.

“이만하길 다행인 거 아시죠?”



소영은 막대를 짚은 선우를 부축하고, 호숫가 바위에 와 앉았다.

그들의 시선에 잔잔한 호수의 물결…….

소영은 호수 건너편의 호화별장을 바라보았다.

선우도 보았다.

소영이 버릇처럼 물었다.

“저런 집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선우는 말없이 하늘을 보았다.

“전 그게 늘 궁금해요.”

선우는 여전히 하늘을 보고 있었다.

“선생님은 알고 계시겠죠?”

“그게 그렇게 부러운가요?”

“선생님은요?”

선우는 여전히 하늘을 보고 있었다.

“전 사람답게 한번 살고 싶어요.”

“사람답게 산다는 게 어떤 거로 생각해요?”

“선생님께선 ‘사람이란 최소한의 의식주만 해결하면 된다. 그러니 꿈을 가져라.' 뭐 그렇게 말씀하고 싶으신 거 아네요?”

“…….”

“하지만 전 누구나 알고 싶고, 갖고 싶은 욕망 때문에 살아간다고 생각해요.”

“어머니의 병환은 좀 어때요?”

소영은 우울해졌고, 선우는 소영을 보았다.

“어머니의 병은 수술만 하면 회복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머니 자신이 그만한 돈이 없다는 걸 아시니까 가망 없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선우는 대답 대신 일어섰다.

“가볼 데가 있어요.”

소영은 절룩거리며 가는 선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천막 안에 임시로 설치된 백열등. 가설 교단에서 막대를 짚은 채 열강하는 선우의 모습…….

수강하는 각양각색의 불우 청소년들.

“오늘의 수업은 이것으로 마치겠어요. 숙제 잊지 말고, 결석한 친구들은 꼭 데리고 나오도록!”

“안녕히 계세요!”



청소년들이 나왔다.

잠시 후 나오는 선우는 몇 발짝 지나다가 돌아보았다.

“아니……?”

소영이 서 있었다.

“추울 텐데 안에 들어오잖고선.”

그리고 돌아섰다.

“선생님…….”

“……?”

“왜 고생을 사서 하세요?”

“그만 갑시다.”

선우는 절룩거리며 갔고, 소영은 바라보고 있었다.



소영이 대문을 열어주면, 집배원이 서 있었다.

“전보 왔습니다.”

소영은 받아보았다.

보다가 순간 흑! 했다.



새로 이룬 봉분……. 흐느끼는 소리……. 상복을 입은 소영이 엎드린 채 오열하고 있었다.



재희가 소영을 부축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소영은 무너지며 울음을 터뜨렸다.

재희는 눈시울이 젖었다.

소영은 여전히 오열했다.

재희는 다가앉으며 위로했다.

“소영아…….”

소영은 더욱 흐느껴 울었다.

“그만해 소영아…….”

소영은 발딱 일어나 앉으며 표독하게 보았다.

“아니, 소영아?”

“난 살고 싶어! 엄마처럼 죽지 않아! 난 누구를 닮았다는 것도 싫고, 세상의 그 어떤 이상도 믿지 않을 거야!”

재희는 위로할 말을 상실한 듯 멍하니 보고 있었고, 소영은 다시 엎드려 흐느껴 울었다.



다음 날 아침. 수돗가에서 펌프질하고, 세수하는 선우는 코를 풀고, 가래침을 뱉었다.

그때, 소영은 나오다가 보며 역겨운 듯 지나려는데, 선우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소영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었다.

“소영 씨,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요.”

“…….”

“아무쪼록 상처를 잘 치료해 봐요. 머지않아 새 살이 돋아날 겁니다. 그런 소영 씨를 지켜보겠어요.”

그리고 선우는 들어가려는데, 소영은 어떤 결심의 말을 했다.

“저……, 이 집을 나가려고 해요.”

선우는 순간, 놀란 듯 돌아봤다.

“왜 그래요, 소영 씨?”

“친구 자취방으로 옮기려고 해요.”

“뜻밖이군요. 뭐 불편한 점이라도……? 하기야 낡은 집에 바퀴벌레도 나오고,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겠죠.”

“그래서가 아니에요.”

선우는 소영을 보았다.

소영은 비를 맞으며 울적하게 호숫가를 걸어오고 있었다. 그 위에 가슴 속에서 마음의 소리가 울려 나왔다.



선우는 우울하게 창밖의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위에 소영의 목소리가 가슴 속에 날아와 박히었다.

“앞으로는 꿈을 가꾸는 정원사보다 선생님의 현실부터 가꾸는 정원사가 되어 보세요!”



소영은 비를 맞으며 호숫가를 걸어오고 있었다. 그 위에 선우의 목소리가 울려 와 가슴 속에 박히었다. 이럴 테면, 영혼과 영혼이 주고받는 대화의 목소리였다.

“난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니에요. 다만 세상 사람들의 눈에 그렇게 보였을 뿐이겠죠.”



선우는 우울하게 창밖의 비를 보고 있었다. 그 위에 자신의 목소리가 가슴속으로부터 울려 나왔다.

“솔직히 말하면 소영 씨를 처음 보았을 때 난 한 사람을 다시 보는 것 같았어요. 볼 때마다 구별이 잘 되지 않았죠.” 빗방울은 더욱 세차게 쏟아졌다.



얼마 후 여름날의 지긋한 장맛비도 그치고, 날씨는 화창한데 소영은 생각에 잠긴 채 걸어가고 있었고, 재희는 걸음을 재촉하며 소영을 쫓아갔다.

“얘, 소영아!”

소영은 깜짝 놀랐다.

“준비됐니? 준비됐으면 어서 가자!”

“뭘?”

“얘 좀 봐, 너 여태 무슨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오늘 이삿짐 가지러 가자고 하고선!”



선우는 생각에 잠긴 채 여전히 그 창밖을 바라보며 서성이고 있었고, 연 선생이 들어오며 물었다.

“아니, 어떻게 된 거야? 자네 혹 내가 모르는 걱정거리라도 있다는 건가?”

선우는 애써 빙긋이 웃어 보였다.



재희는 소영에게 물었다.

“너 혹 아직 결정 못 한 거 아니야?”

“나도 모르겠어‥“

“네 일을 네가 모르면 누가 아니?”

소영은 다시 걸어갔고, 재희는 갸웃하고 따라갔다.





선우는 생각에 잠긴 채 서성이고 있었고, 연 선생은 다그치며 물었다.



“말 좀 해 보라고? 자네와 나 사이에 못할 말이 뭐란 말인가?”

“아니, 이 사람, 난 아무렇지도 않다는데 왜 이러나!”

연 선생은 ‘오, 그래!’하는 듯 주위를 살피며 물었다.

“유리는 바이올린 배우러 갔을 테고, 그런데 참, 소영 씨는 오늘 쉬는 날인데, 자기 방에만 들어앉았나?”

“갔다네.”

“아니, 뭐야?”



소영은 재희에게 되물었다.

“길들었다고? 내가? 겨우 오 개월이었는데……?”

재희는 소영의 말을 수긍하며 해설을 붙였다.

“그래 맞아! 설령 그것이 잡음이라 해도 어느 날 갑자기 그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면 마음의 평화 같은 게 깨어진다고나 할까……!”

“……?”

“어떤 사람들은 그걸 사랑이라고도 한데더라!”



연 선생은 화가 나서 되물었다.

“아니, 뭐가 어쨌다고? 가다니? 갑자기 어딜 갔단 말인가?” “병원이랑 거리가 멀다고 친구 집으로 옮겼어.”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애초에 병원 가까운 곳에 방을 얻을 일이지!”

“그냥 나갔다니까! 이 집이 싫어진 거야.”

“그럴 수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일이야. 그렇게 다정다감하고, 사리가 분명한 아가씨가 한마디의 말도 없이 이럴 수가……?”



재희는 조언하듯 말했다.

“잊을 건 빨리 잊는 게 좋아!”

“응, 그려야겠지.”

“너 혼자 할 수 있겠어? 내가 도와줄까?”

“아냐. 괜찮아. 나 혼자 할 수 있어.”



선우와 연 선생은 외출준비를 하고 나왔다.

“그 아가씨 그렇게 안 봤더니……. 에이 참,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군! 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들이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 이게 다 내 실수야! 공연히 자네 맘만 다치게 했으니 내 잘못이 크네‥!”

“그 아가씨가 뭐라고 말한 줄 아나?”

“아니, 뭐라고 말했는데?”

“글쎄, 나보고 꿈에서 깨어나라는 거야.”

“아니, 뭐야?”

“내 딴엔 이제야말로 꿈에서 깨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었어.”



선우의 집 앞에 소영과 재희가 나타났다. 재희는 마치 고향에 돌아온 듯 좋아했다.

“아! 이 공기! 이 흙냄새! 난 여기만 오면 꼭 옛집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해!”

재희는 마악 대문을 들어서려는데……. 그때, 나오던 연 선생과 부딪혔다.

“아앗!”

“아이쿠!”

뒤로 물러서던 연 선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선우도 나오다가 놀랐다.

소영은 고개를 숙이며 겨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우도 고개를 숙여 보였다.

소영은 죄진 사람처럼 말했다.

“짐 가지러 왔어요.”

“…….”

연 선생은 애써 태연해지며 밝게 말했다.

“아, 그래요? 우린 학교에 급한 일 때문에…….”

“네, 다녀오세요.”

“그럼…….”

연 선생은 몇 발짝 가다가 돌아보았다.

“소영 씨! 우리가 올 때까지 가지 않을 거죠?”

소영은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래요! 오늘 이 선생 귀빠진 날인데, 우리 저녁이라도 함께해요!”

재희가 연 선생에게 물었다.

“저도 끼워 줄 거죠?”

연 선생은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글쎄……, 아가씬 생각해 보고요!”

“어머, 너무해! 숙녀의 청을 거절하다니!”

“거절은 안 했어요!”

하고 연 선생은 소리 내어 웃으며 선우와 함께 걸어갔고, 재희는 머리를 만지며 중얼거렸다.

“인연치고는 별난 인연이야! 이런 걸 가지고 박치기 사랑이라고 해야 하나?”

소영은 애써 웃었다.

재희는 들어가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노총각도 다 늙은 노총각을 뭐가 좋다고 이러는지.”

그러나 소영은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 들어가다가 물끄러미 돌아다보았다.

그 눈에 저만치 가고 있는 선우의 쓸쓸한 모습…….

그때, 재희는 내다보며 물었다.

“얘! 뭐하니? 어머, 너 왜 그래? 울고 있잖아?”



소영과 재희는 방에서 짐을 싸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들리는 펌프질하는 소리, 선우의 세수하는 소리, 코 푸는 소리, 가래침 뱉는 소리…….

순간, 소영은 강렬한 무엇을 느꼈다.

재희는 그런 소영을 무심히 보다가 의혹에 휩싸였는데…….

그때, 소영은 발딱 일어나 뛰어 나갔다.

재희도 놀라며 쫓아나갔다.

“아니, 소영아?”



소영과 재희가 쫓아 나왔다.

소영은 수돗가를 보았다.

그러나 수돗가엔 아무도 없었다.

소영은 멍하니 보고 있었고, 재희는 어리둥절하며 소영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소영은 울 것 같은 표정이었는데…….

재희는 더욱 놀라며 다그쳤다.

“소·영·아, 너……, 왜 그래……?”

소영은 초롱한 눈으로 마치 바로 앞에 누군가를 보고 있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난……, 지금……, 꿈을 꾸고 있나 봐…….”

아니, 뭐야?”

“언니…….”

“말해.”

“이런 게 사랑이란 걸까?”

“그게 무슨 소리야?”

“어쩌면 나도 그동안 이 선생님처럼 꿈을 꾸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게 무슨 소리냐고?”

“난 이제야 알 것 같아.”

“뭘?”

“현재라는 터널을 통해 선우라는 목적지에 닿은…….”

“안 되겠다. 정신 차리고 어서 짐이나 싸자. 이곳에 더 머물다간 나까지 돌아 버리겠다.”

소영은 뭔가를 생각한 듯 급히 방으로 뛰어들었다.

재희도 들어가려는데, 뭔가를 들고 나오는 소영과 부딪고 넘어졌다.

소영은 그대로 뛰어 나갔다.

“소영아! 소영아!”

하며 재희는 일어나 소영을 쫓아 나갔다.



재희는 소영을 쫓아왔다.

소영은 호숫가에 와서 손에 든 금송아지를 보았다.

판매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금송아지 한 마리 몰고 가세요. 금송아지는 행운을 가져다준답니다.”

소영은 결심한 듯 건너편 별장을 향해 금송아지를 힘껏 던졌다. 금송아지는 긴 곡선을 그리며 호수에 떨어졌다.



소영과 재희는 어느 서민 아파트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와 앉았다.

소영은 그 아파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 많은 집엔 누가 다 살까……?”

“왜 부러우니? 집 없는 사람이 어디 너뿐이겠니.”

“저렇게 집들은 많은데, 내 것이라곤 하나도 없으니…….”

“별장의 꿈은 어디 가고, 기껏 서민아파트란 말이니?”

“오늘처럼 내가 작아 보이긴 처음이야…….”

“이게 다 그놈의 금송아지 때문 아니겠니…….”

소영은 우울했다.

“너 그동안 어머니 약값만 아니었음 저런 서민 아파트 한 채는 살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소영은 더욱 우울했다.

“하기야 네 아버지 사업 실패만 아니었음 지금쯤 네가 꿈꾸던 발레리나가 되어 있겠지만……“

순간, 소영의 눈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횃불을 밝혀 든 여고생 소영과 어머니가 헐떡이며 고향의 뒷동산을 황급히 오르고 있었다.

“소영 아부지―”

“아부지―”

여전히 숨 가쁘게 외쳐 부르며 두리번거리던 소영과 어머니는 어느 순간, 한 곳에 시선이 얼어붙었다.

그들의 시선에, 나뭇가지에 목을 맨 채 축 늘어진 소영의 아버지가 보였다.



흥건히 젖어 있는 소영의 눈과 재희의 눈…….

재희는 소영을 보며 분위기를 바꿔 보려는 듯이 눈물을 훔치었고, 뭔가를 생각하다가 문득 말했다.

“참, 나 며칠 전에 이 선생님 봤다.”

소영은 재희를 보았다.

“……?”

“새벽에 잠이 깨서 조간이나 볼까 하고 나갔다가…… 우연히 신문 배달하는 아저씨를 봤는데……. 글쎄, 그게…….”

“……?”

“중 3쯤 되어 보이는 학생 두 명과 함께였는데, 언뜻 보기도 틀림없었어.”

“……?”

“틀림없다니까. 그렇잖아도 너한테 말하려고 했는데…….” “…… 말도 안 돼.”

“네가 몰라 그렇지 세상엔 그런 분들이 뜻밖으로 많단다. …… 그런 분들이 너처럼 돈 때문에 그런 일을 하시겠니.”

“그럼 그게 정말 이 선생님이었어?”

“응, 그렇다니까.”

“세상에…….”

“오늘 이 선생님 생일인데 늦겠네!”

소영은 눈물을 훔치었다.

“나도 가도 되는 거지?”

소영은 끄덕였다.

“하지만 빈손으로 갈 순 없잖아?”

순간, 소영은 발딱 일어나 재희의 손을 잡아끌고 달려갔다. 백화점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는 소영과 재희……. 급히 의류 판매대를 둘러보며 지나가는 소영과 재희…….

소영과 재희는 귀금속 판매대를 둘러보며 지나고 있었다.

그들의 눈을 현혹하는 귀금속품…….

재희는 더 보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소영에게 끌려갔다.

급히 선물 코너에 나타나는 소영은 어느 곳에 시선이 딱 멎었다.

그 눈에 대조적으로 보이는 금송아지와 목각송아지.

판매원이 나서며 말했다.

“손님, 금송아지 한 마리 몰고 가시죠! 금송아지는 행운을 가져다준답니다!”



소영과 재희는 헐떡이며 선우의 집 앞을 달려왔다.

“소영아! 제발 숨 좀 돌리고 가자!”

“끝났으면 어떡해?”

“도대체 지금까지 우리가 산 게 뭐니?”



선우, 연 선생, 유리는 정원의 비치파라솔 아래에 둘러앉아 케이크에 불을 붙여놓고, 축하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이선우(선생님)의”

재희의 목소리.

“생일 축하 합니다!”

돌아보는 선우, 연 선생, 유리.

소영과 재희는 헐떡이며 나타났다.

유리는 소영이 많이 반가웠다.

“언니!”

재희는 아직도 헐떡이며 말했다.

“늦어서 죄송…….”

연 선생은 반가운 듯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아, 아니에요! 늦지 않았어요! 어‥어서 앉아요!”

소영과 재희는 앉았다.

재희는 여전히 죄송한 듯 어쩔 줄 몰랐다.

“너무 바빠서 선물도…….”

그러나 소영은 조그만 상자 하나를 내놓았다.

재희는 뜻밖이란 듯 보았다.

“아니, 소영아?”

유리는 선우에게 말했다.

“선생님, 열어 보세요.”

선우는 연 선생에게 말했다.

“자네가 열어 보게.”

연 선생은 아니라는 듯 손을 저었다.

“이 사람 자네가 오늘 주인공인데, 당연히 자네가 개봉해야지!”

선우는 망설였다.

유리가 선우 앞으로 나섰다.

“궁금하잖아요. 어서 열어 보세요.”

선우는 상자를 개봉했다.

목각송아지가 나왔다.

의아해하는 일동.

소영은 조심스레 선우를 보았다. 연 선생은 중계하듯 말을 시작했다.

“아, 잘은 모르지만…….”

재희도 연 선생을 거들었다.

“네, 그래요. 설명하자면…….”

소영은 담담하려고 애쓰며 말했다.

“아무 뜻도 없어요.”

재희는 소영의 말을 따라 하다가 소영의 선물을 보며 궁금해하며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중계했다.

“네, 그래요. 아무 뜻도 없어요. 하지만……, 언뜻 보기엔 아무 뜻도 없는 것 같으면서도 알고 보면 깊은 뜻이 담긴 게 마음의 선물이 아니겠어요.”

연 선생은 이어서 진행했다.

“아무튼, 좋아요! 계속 진행합시다. 이 선생, 촛불 꺼야지!” 선우가 촛불을 껐다.

일동은 손뼉을 쳤고, 선우는 케이크를 잘랐다.

그리고 일동은 나눠 먹었는데…….

그때, 재희는 선우를 보며 소영이가 처음 선우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했다.

“저, 빈방……있어요?”

모두는 어리둥절 했다.

유리는 눈치 채고 중계하듯 말했다.

“이 집이 맘에 드는 사람이 있대요.”

그때, 선우는 알아듣고 쓸쓸히 웃으며 고개 저었다.

모두 실망한 눈빛으로 선우를 보았다.

선우는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빈방은 있지만 더는 세는 놓지 않을 겁니다.”

소영은 발딱 일어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사람이 저라면요?”

순간, 선우는 포크를 떨어뜨렸다.

소영은 절체절명으로 말했다.

“이대로 떠나가면 죽을 때까지 이 집, 이 정원, 그리고 이 선생님과 모두를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연 선생은 목이 타는 듯 물 한 모금 마시고, 싱긋 웃으며 말한다.

“오늘은 유난히 커피 맛이 좋은 데요!”

유리는 웃으며 개그 했다.

“그건 커피가 아니에요, 선생님.”

연 선생은 천연덕스럽게 개그를 이어갔다.

“그런가……? 어쩐지 맛이……!”

모두는 함께 웃었다.

그리고 잠시 후 소영은 선우에게 말했다.

“아직 대답 안 하셨어요.”

선우는 여전히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뭘요? 뭘 말입니까? 아! 방 말이에요?”

모두는 초조히 보았다.

선우는 더욱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글쎄요. 아무래도 셋방은 안 되겠는데요.”

소영은 울먹이며 되물었다.

“네?”

모두는 ‘우―’하며 땅이 꺼지듯이 실망했다.



선우는 소영의 눈물이 안쓰러운 듯 다소 긴장을 풀어주었다.

“그 대신에 정원을 빌려줄 테니 우리 함께……, 가꾸어 보지 않을래요?”

그러나 반대로 모두는 더욱 긴장했고, 선우는 시선은 소영을 보았고, 몸은 모두를 향하며 말했다.

“물론 방은 그대로 쓰시고요.”

순간, ‘와’ 하고 손뼉 치는 일동―

소영은 눈물을 글썽였다.

재희는 원망스러운 듯이 선우에게 말했다.

“아이 참, 선생님은 진작에 그러실 일이죠!”

소영은 눈을 흘기며 입을 삐죽였다.

선우는 그런 소영을 그윽이 보았다.

소영은 수줍은 듯이 보았다.

선우는 마음의 영혼과 영혼이 통한 듯이 말했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그동안 왜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을까요?”

소영은 선우 영혼의 말을 소영 영혼의 말로 이었다.

“우리 사이엔 꿈과 현실이란 벽이 있었으니까요.”

모두는 흐뭇하게 보았다.

선우는 말을 계속했다.

“사람들의 가슴속엔 정원이 있죠, 넓고 화려한 정원이 있는가 하면 작지만 소박한 꿈을 가꾸는 정원이 있죠.”

소영이 말했다.

“제안 하나 해도 될까요?”

“뭔 데요? 해봐요.”

“저, 이곳에 청소년을 위한 학교나 보육원을 세우는 게 어떨까요?”

“소영 씨한테서 그 말이 나오길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답니다!”

모두는 흐뭇하게 손뼉 쳤다.

연 선생은 또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일어서며 개그를 했다.

“에― 그럼 다음은…….”

유리는 어느새 바이올린을 켰고, 소영은 유리를 보았다. 그러자 유리는 재희에게 눈짓했다.

재희는 눈치채고 소영을 끌어내었다.

소영은 끌려 나와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유리는 다시 연 선생에게 눈짓했다.

연 선생은 알아채고 선우를 끌어내어 소영과 손을 마주 잡게 했다.

유리는 서툴지만 열정적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선우도 서툴지만, 소영을 리드하며 열심히 무용했다.

바람이 불었다.

재희와 연 선생은 환호하며 손뼉을 쳤다.

더욱 세차게 바람이 불었다.

바람결에 정원수가 온몸을 휘청이며 춤을 추었다.

소영과 선우도 옷깃을 펄럭이며 춤을 추었다.

선우가 소영을 들어 올리자 소영의 속살이 드러났다.

순간, 소영은 속살을 가리었고, 선우는 소영을 잡으려다가 실수로 소영을 떨어뜨렸다.

찰라, 선우가 소영을 안으려는데, 그 움직임이 허공에서 멎었다.



소설이 말을 하다: 날마다 귀에 익은 담 너머 이웃집 아저씨의 세수하는 소리, 코 푸는 소리, 가래침 뱉는 소리. 그런 역겨운 소리마저 어느 날 갑자기 들리지 않게 될 때, 우린 '혹시 그 아저씨가……?' 하는 궁금증을 느끼게 되고, 때론 문득문득 다시 듣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작가의 말: 사람들은 그런 느낌을 사랑이라 말하기도 한다. 나와 가까운 이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허황한 탐욕보다 작은 행복에 만족하며 살고 싶다.










2017-07-28 02: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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