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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이름
권태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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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어느 날 텔레비전 여행 프로그램을 보니 외국의 어느 해변 풍경이 나온다. 끝도 없이 펼쳐 진 백사장에는 아무 인적이 없고 푸른 하늘 아래 광활한 바다만이 출렁이고 있었다. 이 경치를 보면서 출연자는 두 팔을 높이 치켜 들고는 백사장을 뛰어가며 “야! 이 바다와 이 백사장이 오늘은 내 것이다!” 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접하고 탄복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하겠지만 “이것이 내 것이다!”라는 외침에서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하는 한 인간의 교만과 우둔함을 느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우리들에게 맡기셨음으로 우리가 지배하고 다스리고 즐기고 이용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과 욕심에만 빠져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면서 좀 안타깝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였고 예전에 하나님을 모를 때의 내가 생각나기도 하였다.
요즈음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계여행을 많이 한다. 그냥 여행만 하는 것이 아니고 세계 방방곡곡 안 가는 데가 없이 다닌다. 다른 나라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 문화, 문명을 접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보지 못하는 또 다른 자연의 신비로움을 마음껏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한다던가 신비로움에 대한 감탄을 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 가운데서 역사하고 계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함께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 일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가 목도 하였느니라.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 하셨느니라.” (신명기 29:3-4)

( 2 )
옛날 아람국에 나아만 이라는 군사령관이 있었다. 그는 여러 전쟁에서 승리하여 왕으로부터 신임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주변 나라의 백성들로 부터도 인정을 받았다. 그런데 그가 문둥병에 걸린 것이다. 고심하고 있던 중에 이스라엘에서 잡아온 계집종이 이스라엘의 한 선지자에게 가면 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는 소리를 전해 듣고 나아만 장군은 왕의 허락을 받고 이스라엘로 가서 선지자 엘리사의 집을 찾아 갔다.
나아만 장군이 왔다는 전갈을 받고 선지자 엘리사는 나와 보지도 않고 사환을 시켜서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 그러면 병이 낫고 피부가 회복 되리라.” 라는 말을 전하게 하였다 이 말을 사환으로부터 듣고 나아만은 대노하였다. “일국의 군사령관인 내가 이렇게 먼 길을 찾아 왔는데 최소한 자기를 영접하여 병세를 묻고 환부를 살펴보고 환부에 손을 얹고 자신의 하나님께 기도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자기를 보지도 않고 사환을 시켜서 요단강에 가서 몸을 씻으라고? 우리나라에는 강이 없어서 내가 여기 까지 왔나? 우리나라 강들이 이스라엘 강들 보다 훨씬 더 깨끗하므로 내가 돌아가서 우리 강물에 몸을 씻으리라.” 하고 돌아서려 하였다.
이때 그의 종들이 그를 만류 하였다. “장군이시여. 만일 그 선지자가 더 어려운 것을 하라고 시켰어도 그것을 했을 것 아닙니까? 하물며 강물에 씻으라 한 것을 못할 것이 무엇입니까.”이 말을 옳게 여기어 나아만 장군은 요단강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씀대로 일곱 번 몸을 물에 담그니 그 피부가 회복되고 어린 아이의 살같이 되었다.
나아만 장군은 모든 종들을 데리고 선지자 엘리사에게 가서 “이스라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는 줄 알겠습니다. 그리고 가지고 온 예물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간청 하였다. 엘리사 선지자는 예물을 고사하고 받지 않았다. 나아만 장군은 앞으로 다른 신에게는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 하나님께만 드리겠다고 약속하고 돌아갔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성경 열왕기 하 5장에 있는 말씀인데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자신의 병이 위중하고 급박하기도 했지만 나아만은 어린 여종의 말을 믿고 외국에 있는 선지자를 찾아 나섰다는 사실에서 마음에 겸손함이 있었고 다른 신을 믿는 믿음이지만 신앙심도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환을 통하여 선지자의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자존심의 상처를 받아 일시적으로 분개 하였지만 종들의 말을 듣고 자신의 뜻을 굽힐 수 있었음으로 인하여 병도 고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끝으로 우리들은 이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나아만이라는 인간을 구원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속에 내가 살아있는 한에 있어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다. 내가 부족한 인간임을 스스로 인정할 때 그리고 내가 죄인임을 깨달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나 주시는 것이다. 하기야 이러한 깨달음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역사하셔야 가능한 일이기는 하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에스겔 36 : 26)

( 3 )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유일하게 칭찬 하셨으며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뛰어나고 훌륭한 왕이었던 다윗은 평생 동안 그가 진리 안에서 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길을 가르쳐 달라고 기도하였으며 실제로 그 길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았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시편 86:11)

( 4 )
미국의 링컨대통령은 기도의 사람으로 유명하다. 남북전쟁 당시 군 지휘관들이 대통령에게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어 주시기를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하고 요청했다 한다. 이에 대하여 링컨은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어 주시기를 위하여 기도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설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한다.
우리는 보통 내 뜻을 펼치기를 희망 한다. 크던 작던 내 뜻을 이루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삼기도 한다. 내 뜻대로 사는 것을 삶의 보람으로 여기기도 하고 내 뜻을 이룬 삶을 성공적 삶이라 한다. 내 뜻을 이루기 위하여 고심하기도 하고 싸움도 한다. 내 뜻을 굽히는 것은 굴복이요 실패라고 여긴다. 가끔은 내 뜻을 굽힐 때도 있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 내 뜻을 펼치기 위한 일보 후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우리들은 내 뜻을 죽이지 못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원 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게세마네 동산에서 기도 하셨고 결국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신다. 이는 내 뜻이라는 것이 보통은 나의 탐욕, 나의 교만, 나의 명예, 나의 정욕을 충족시키기 위함에 있으며 그것이 필경은 모든 불행과 분란과 패망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로 하여금 죄의 노예에서 벗어나서 성령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게 하려 함에 있다. 시기, 미움, 질투, 탐욕과 같은 것들에서 벗어나서 사랑하고 용서하며 인내하는 삶을 삶으로써 빛과 즐거움 가운데 거하다가 육신의 장막을 벗는 날 영생하게 하려 하심이다. 내 뜻이 하나님 뜻과 합치 될 때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합치되는 내 뜻이 되고 그것이 실현되는 삶이 될 때 참다운 삶이 되는 것이고 진실로 보람 있고 성공한 삶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십자가 위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 라고 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나를 통해서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 뜻을 이루어 가는 삶을 살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 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 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야고보서 4:2-3 )
2018-01-06 06:3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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