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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이름
권태헌
홈페이지
첨부화일

( 1 )

사랑하는 아내 라헬로부터 늦은 나이가 되어서야 얻은 아들 요셉을 야곱은 다른 여인들이 낳은 여러 아들들 보다 특별히 더 사랑하였다. 요셉의 형들은 아비가 요셉을 편애함으로 그를 미워하고 시기하였다. 그들은 양을 치고 있는 형들과 양들이 잘 있는지 보고 오라는 아비의 분부를 듣고 찾아간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넣었다가 애굽으로 가는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아버렸다.
그리고 아비 야곱에게는 요셉이 들짐승에게 잡혀 먹힌 것 같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상인들은 요셉을 애굽왕의 시위대장인 보디발에게 팔았다. 보디발의 종이 된 요셉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히 수행 하였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심으로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였다. 시위대장 보디발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을 알고 그에게 그 집과 밭과 모든 소유를 맡기고 관리하게 하였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는데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한 요셉에게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의 손길을 내밀기 시작 하였다. 처음에는 눈짓을 하다가 드디어는 동침하기를 요구하였다. 이에 대해서 요셉은 단호히 거절하였다. “나의 주인이 집안 모든 것을 내게 위임하고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 뿐이니 당신은 자기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 하리이까.”
이 요셉이 나중에는 애굽의 총리가 되고 애굽을 7년간의 극심한 가뭄에서 건져 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비와 형들을 포함한 모든 가족을 애굽으로 이주하게 하여 기근에서 구하고 드디어는 이스라엘 민족이 형성되게 하는 밑거름의 역할을 감당하는 인물이 되었다. “어찌 하나님께 득죄 하리이까.” 이 한마디가 요셉이라는 인간의 특출한 위대성을 포괄적으로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이다.

( 2 )

요셉의 형들 가운데 유다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취하여 동침하고 장자 엘을 낳고 이어서 오난과 셀라를 낳았다. 장자 엘은 다말이라는 여자를 아내로 맞았으나 엘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죽자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 차남 오난과 재혼하여 후사를 보도록 하였다. 이 당시에는 계대결혼(繼代結婚)의 풍습이 있었다.
차남도 하나님께 죄를 범하여 후사가 없이 죽자 유다는 다말에게 어린 삼남 셀라가 장성하기 까지 기다리라 하고 재혼을 시키지 않았다. 셀라가 장성 하였는데도 결혼을 시켜주지 않음으로 다말은 얼굴을 가리고 창녀의 차림을 하고 시아버지가 지나가는 길거리에 다가섰다. 이때에 유다는 그 창녀에게 염소 새끼를 주기로 하고 그 약속의 보증으로 자신의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를 주면서 그 창녀와 동침하였다.
다음날 유다는 친구를 시켜서 염소 새끼를 보내고 보증으로 맡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를 찾아오려 했으나 그녀를 찾을수가 없었다. 석달 쯤 지난 후에 누군가가 유다에게 며느리 다말이 행음을 하였고 그래서 지금 임신을 하고 있다고 일러 주었다.
유다는 그 말을 듣자 즉시 자기 며느리를 끌어내어 불사르라고 명령하였다. 다말은 끌려가면서 시부에게 이 물건의 임자로 인하여 잉태 하였다고 하면서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를 보여 주었다.
유다는 자신이 다말에게 셋째 아들을 주지 않은 잘못을 깨닫고 다시는 며느리에게 접근하지 아니 하였다. 다말은 쌍둥이를 낳았는데 먼저 나온 자를 베레스라 불렀고 다음은 세라라 하였다. 이렇게 태어난 베레스가 다윗왕의 조상이요 예수님의 육신의 조상이다. 유태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택하심을 받은 언약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는데 성경에 이러한 이야기를 상세히 기록함은 결코 유태인들이 더 나아가서는 우리들 모두가 하나님 앞에 내 세울 것이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아 알게 하려 하심이다.


( 3 )

예수님께서는 보리떡 다섯 개 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오천명쯤 되는 사람들을 다 먹이시고도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차는 이적을 행하셨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 땅에 오실 선지자로 여기고 그를 이 세상의 임금으로 삼으려 하였다. 예수님께서 임금이 되시면 자신들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제국으로 부터 해방도 시켜 주실것이고 병도 고쳐 주시고 배 부르게 먹고 살게도 해 주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열심당원이라는 사람들은 실제로 예수님 중심의 정치적 혁명을 일으키려 하였고 심지어는 예수님의 12 제자들 마저 언젠가는 높은 자리 한자리 하겠거니 하고 기대를 했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들은 육신을 배부르게 하는 떡 만을 구하고 있구나 하시면서 썩어질 양식을 찾지 말고 영생하는 양식 곧 생명의 떡을 구하라 하시고 자신이 하늘에서 온 생명의 떡이니 자신을 먹으라고 하셨다. 사람들은 사람을 어떻게 먹는가 그리고 예수님의 부모를 우리가 잘 아는데 어찌하여 자신이 하늘에서 왔다 하는가 하면서 이 말씀을 믿지도 않았고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보통의 떡은 육신의 힘을 유지 시켜 주는데 그치지만 생명의 떡인 예수님은 영혼을 살찌울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음으로 생명을 살리고 나아가서는 영생하게 하신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시고 성경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졌으며 예수님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임으로 결국은 성경 말씀이 예수님이라 할수있을 것 같다. 그러므로 생명의 떡을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으면서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기도하며 성경 말씅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좇아 사는 것이다. 생명의 떡을 먹는 것, 예수님을 먹는 것, 말씀을 먹는 것이 모두 같은 의미로서 매일 매일 육신을 위하여 밥을 먹는 것 못지 않게 더 중요하고 요긴한 것은 이것이 생명의 길이요 진리의 길이요 영생의 길이기 때문이다.


( 4 )

구약에서는 십계명을 통하여 “간음 하지 말라.”하셨는데 신약에서 예수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 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 하였느니라. 하시면서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내 버리라. 네 백체중 하나가 없어 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 손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찍어내 버리라. 네 백체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마태복음 5:27-30) 라고 말씀 하셨다. 따지고 보면 구약에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계명 보다 예수님의 계명이 훨씬 포괄적이고 근원적이며 엄격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마태복음 5:17) 라고 하신 것 같다. 마찬가지로 십계명에서는”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라고 하셨지만 예수님께서는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누가복음 12:15) 라고 하셨고 사도 바울은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골로새서 3:5) 라고 하여 하나님이 가장 혐오 하시는 우상숭배 와 우리의 탐심이 같다고 하였다. 더 나아가서 사도 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한 1서 2:15-17 ) 라고 하여 탐심을 멀리 하라고 한다. 성경은 이렇게 우리들에게 탐심에 이끌리는 생활을 하지 말라고 하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전혀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유명한 성인 어거스틴 같은 이도 그의 참회록을 보면 요한 1서의 말씀을 놓고 여러 가지로 고민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가 고뇌하던 탐심은 무슨 커다란 재물이나 명예나 권세 같은 것들이 아니고 필요 이상으로 식욕에 탐익하는 것,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꿈속에 나타나는 성욕, 감각의 기쁨을 즐기고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좇는 것 과 같은 쾌락을 추구하는 마음과 그리고 주님께서 주신 선물로 해서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때 그 선물 보다 칭찬을 더 기뻐하는 교만과 같은 보통은 죄로 여기지도 않는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원천적인 탐심에 대하여 고심하였다. 어거스틴 같은 성인이 그러한데 하물며 우리네 같은 범인들이 어떻게 이 말씀을 좇아 살아갈 수 있겠는가. 어거스틴은 결론적으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3) 하시는 바울의 말씀을 의지하고 주님께서 자기에게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함으로써 이 문제의 해결을 예수님께 의탁하고 있다. 탐심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볼 수 없게 하고 예수님과 교제할 수 없게 하는 장애물이다. 탐심은 우리로 하여금 생명의 떡을 먹지 못하게 하고 그래서 결국은 우리를 파멸로 이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탐심은 인류의 조상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들어온 원죄이기 때문에 가련하고 안타깝게도 우리네 인생은 이 죄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다. 이렇게 죄 가운데에서 헤메이며 허덕일 수 밖에 없는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셔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시고 대속의 제물로 삼아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는 은혜의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믿는자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셔서 연약한 우리들로 하여금 성경 말씀을 좇는 삶을 살아갈수 있도록 돕게 하신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이 세상이 아무리 탐심의 소용돌이 속에서 들끓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야 한다. 이 말씀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그것은 이 말씀이 우리가 참된 행복을 누리는 길이기 때문이며 진정한 평안을 누리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가라고 하시는 길이요 예수님 나라로 향한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들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을지라도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께 구해야 할 축복의 길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쫓아내 죄과를 도말 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시편 51:1-3)
2018-02-03 13: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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