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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일기(31)-은혜가운데

이름

권태헌

홈페이지

첨부화일

(1)

손님들 가운데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정이 많아서 말을 몇 마디 안해도 봄철 아카시아 향기같이 그 정을 풍기는 분들이 참 많이 있다. 그런 분들을 모시고 갈 때면 내 마음은 잔잔한 기쁨으로 충만하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하는 것 같은 행복감에 젖곤 한다.
여자 손님 한 분이 탔다.
목적지를 향해 가다가 사거리에 이르러 ‘직진으로 갈까요 오른쪽으로 갈까요’하고 물으니 얼른 대답을 못한다.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손님께서 선택하시라고 말씀 드린 것입니다’ 하니 그제서야 방긋이 미소지으면서 ‘오른쪽으로 다녔었는데 직진하는 길도 있더라구요’ 하는 것이었다.
마침 직진 신호가 켜졌으므로 ‘그냥 직진하겠습니다’하고 곧 바로 진행하였다. ‘바로 가는 길은 좀 꼬불꼬불 해도 신호가 적기 때문에 요금은 비슷하면서도 빨리 갈 수 있으므로 나는 이 길을 선호합니다. 경험삼아 이 길로 한 번 가보세요’ 하니 손님은 조용히 웃기만 한다. 따스한 봄기운이 차안에 그득 차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몇 개 있는 신호등 마저 계속 푸른 빛을 비추었다. ‘결과적으로 길을 잘 선택한 것 같네요’하고 말하니 ‘그러네요. 감사합니다’ 하면서 공손히 인사를 하고 내리는 것이었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마음씨가 한참동안 내 가슴속에서 잔잔하게 메아리쳤다.

(2)
이마트 앞에서 나이 지긋한 여자 손님 한 분이 탔다. D-아파트까지 가는 손님인데 사거리 신호를 보니 좌회전 신호가 막 꺼지고 붉은 등이 켜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호를 오래 기다리지 말고 우회전하여 이마트 뒤로 돌아서 가면 어떻겠느냐 물으니 그냥 기다렸다가 가자고 퉁명스럽게 말하는 것이었다. 택시요금이 시간과 거리의 병산제이므로 기다리는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가면 그 만큼 손님에게 득이 될것이므로 그렇게 물었던 것인데 손님이 그것을 원치 않으니 나는 그 뜻을 따를 수 밖에 없다. 손님의 뜻을 무시할 수도 없지만 혹시 내 고집을 세워서 내 마음대로 갔다가 길이라도 막히면 그 원망을 어떻게 감당하는가. 그래서 신호가 다시 켜지기를 기다렸다가 좌회전하여 진행하였다. D-아파트에 가려면 중간에 좌회전해서 가는 길이 있지만 그곳에서는 잠시 기다리더라도 그냥 직진했다가 다음 사거리에서 좌회전 하면 목적지까지 신호가 연결되어 제일 빠르게 갈 수 있으므로 다녀 본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가는데 이 손님은 먼저 좌회전 하는 것이 빠르다면서 그렇게 가자는 것이었다. 그러니 직직 신호가 켜진 다음에도 한참을 지나야 좌회전 신호가 들어오는데 그것을 기다릴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바로 갔으면 벌써 N-병원 앞을 지나 D-아파트 쪽으로 향하고 있을 만큼 시간이 지나서야 좌회전 신호가 켜졌다. 골목길을 지나 우회전을 하여 N-병원 사거리에 이르니 다시 빨간불이었다.
누구네집 안주인인지는 몰라도 그 고집을 보니 함께 하는 식구들이 적잖이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보통은 기본요금 정도 나오는 거리인데 오백원이 더 나왔다. 그 손님은 나보고 일부러 늦게 왔다고 불평하면서 문을 꽝 닫고 가는 것이었다.
이런 사람을 보면 역시 모든 것이 내 마음속에 있구나 하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그러면서 이러한 불쾌한 경우를 당하면서도 맞부딪치지 않고 화 안내고 인내할 수 있을 만큼 연단된 나 스스로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3)
출근 시간인데 금정역으로 간다는 젊은이가 탔다.
뒷골목길로 갈 것인가 조금 멀어도 큰 길로 갈 것인가를 물으니 기사님 편리한 대로 하세요 한다. 뒷골목길은 가깝기는 하지만 손님을 내려드리고 난 후에 나는 공단의 좁은 길을 멀리 한 바퀴 돌아서 여기까지 빈차로 다시 와야만 되고 큰 길로 가면 바로 다른 손님들을 태울 수 있는 곳으로 연결 되므로 마음대로 하라면 더 생각할 필요없이 큰 길을 택하게 된다.
출근 시간이므로 뒷골목길이 혼잡하여 막힐 염려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기사들 형편을 배려해 주는 마음씨가 여간 고맙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뒷길로 가면 요금이 보통 삼천원 정도 나오니 혹시 요금이 더 나오더라도 그냥 삼천원만 지불하세요’ 하고 말하니 그 손님은 ‘신경쓰지 마세요’하는 것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이 젊은 손님은 ‘우리 아버지도 택시 운전을 하세요. 그냥 받아 두세요’ 하면서 오천원을 주고 내리는 것이었다.
순간 내 가슴속이 뭉클하고 두 눈에는 눈물이 핑그르 도는 것이었다. 택시 운전하는 늙은 아버지를 생각하는 아들의 사랑을 느끼고 있노라니 내가 혼자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과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결코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새로워지면서 무릎에서부터 가슴으로 새로운 힘이 뿌듯하게 솟구쳐 오르는 것이었다.

(4)
야간에 택시 운전을 하면 술취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데 이런 손님들을 모시는 일은 정말 어렵다. 무디 목사님은 일부러 술취한 사람을 찾아서 전도를 했다고 하는데 나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술취한 사람들은 악취만 내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온갖 죄악된 본성들을 거리낌없이 노골적으로 품어내기 때문에 말짱한 정신을 가지고 이들과 함께 하는 일은 고역중의 고역이다.
내가 택시를 통하여 이러한 사람들을 보면서 저들보다 훨씬 더 했던 나의 옛 모습을 떠올리고는 부끄럽고 후회스러워 그렇게 좋아하고 즐기던 술을 단번에 끊어 버렸던 것이다. 회사 택시를 할 때는 야간조가 되면 어쩔 수 없이 하는 수 밖에 없었지만 개인 택시를 하고 나서는 야간 일은 하지를 않는다. 체력이 야간 늦게까지 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도 하지만 술취한 사람 만나는 것이 겁도 나고 싫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내가 술취한 사람을 태운 일이 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대낮인데 저 앞에서 체격이 우람한 남자 한 사람이 차도에 내려서서는 우산도 안쓰고 지나가는 차에다 연신 손을 저어 흔든다. 비틀거리는 모습이 멀리서 보아도 영락없이 술에 취한 사람인데 순간적으로 내 마음속에 내가 안태우면 저 사람을 태울 차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저 사람을 태우라 하는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사람 앞에 차를 세우니 뒷자석도 아니고 앞좌석에 앉는데 체격이 워낙 커서 차가 꽉 차는 느낌이었다.
그 손님은 정신이 없을 정도로 술에 취했는데 그래도 어렵게 어렵게 목적지를 물어서 차를 몰았다. 술냄새와 비와 땀에 젖은 옷 냄새하며 역겨운 악취가 코를 찌르는데 그 손님은 알아듣지 못할 말로 자꾸 말을 걸어 오는 것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하였다.

하나님 이 손님을 잘 모셔다 줄 수 있도록 하여
주십시오 술취한 이 사람을 개의치 않도록
내 마음에 평화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평정심이 나를 주장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평정심이 나를 주장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하면서 목적지에 도달하여서는 손님의 아파트 동수를 묻고 또 묻고 하여 간신히 그 앞에 차를 세웠다. 그러나 이 손님은 내릴 생각을 않고 잠꼬대 하듯 헛소리만 계속 하는 것이었다. 시비를 거는 것 같기도 한데 맑은 정신에 하여야 그것이 시비던지 아니던지 하지 제 정신이 아닌데 내가 그러한 말에 개의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체격이 적으면 끌어내리기라도 하련만 워낙 크니 그렇게도 못하고 손님이 듣던 말던 조용한 목소리로 그저‘손님 다 왔습니다. 내려주세요’하면서 나 혼자서 반복해서 외우고 있으려니 답답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 와중에서도 그 손님은 요금은 정확히 계산하는 것이었는데 얼마가 지났을까. ‘어이, 소변 마려워’ 하면서 비틀비틀 차에서 내리더니 아파트 앞 화단에다 대고 바지를 내리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뒤로 하고 떠나오면서 나는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이 일을 감당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당하게 하신 이는 성령님이십니다
영광이 있다면 성령님께 모두 돌리기 원합니다
감사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11-06-29 12:36:59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김기준	운전을 하시면서도 주님과 동행하시는구요! 건강하세요!
권태헌	김선생님 오래만입니다 안녕하시지요 감사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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