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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일기(32)-어떤 부고를 접하면서

이름

권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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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화일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전 1:31)

(1)

신문에 어느 큰 회사 회장님이 별세 하셨다는 기사가 났다. 유명한 여러 회사의 회장을 지내셨고 전국구 국회의원도 하셨는데 80이 못되는 연세에 지병으로 돌아가셨다면서 얼굴 사진과 함께 실렸다.
이분은 40여년전 그러니까 내 나이 30이채 안되었을때 내가 다니던 회사의 사장으로 계시던 분이었다. 그는 나의 사관학교 대선배이셨는데 기업하시는 부친의 대를 잇기 위하여 군에서 예편 하신 후 회사를 새로이 설립하고 공장을 막 짓기 시작할 때였고 나는 어느 원양 회사의 쟈카르타 주재원으로 나갔다가 회사가 도산하는 바람에 귀국하여 다른 직장을 구하고 있을 때 였는데 마침 동기생 친구의 소개로 그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장님은 나에게 구매담당을 시키셨는데 초창기에 큰 공장을 지을 때 인지라 정말로 눈코 뜰사이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었다.
구매 할 제품을 만드는 공장들을 직접 방문하기도 하고 자갈과 모래를 사기 위하여 북한강 골재 채취장 까지 직접 가기도 하였다 공휴일에는 공장에 내려가서 납품된 자제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공장 사람들의 의견과 요구 사항들을 청취하였다. 아침에 출근하면 견적서를 제출한 납품업자들이 나를 만나려 했는데 어떤 사람은 무엇을 파는 사람인지 모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였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것은 그렇게 많은 업자들을 상대하면서 나는 그들과 다방에서 커피 한 잔 마신 일이 없었다(주:그 때는 다방문화가 만개한 시절이어서 무엇을 하든지 모든 일을 다방에서 만나서 이야기 할 때이다).
나 개인 형편은 출퇴근 버스비를 신경써야 하고 매일 먹는 점심 값이 문제가 될 때였지만 회사 물품을 구매하면서 나 개인을 위한 다른 생각은 꿈에도 꾸어보지를 못했다. 명절때가 되면 회사내에서 유독 나에게만 상품권 같은 선물이 많이 들어왔는데 나는 그것을 모두 모았다가 다른 부서 사원들과 함께 나누어 가졌었다.
자재를 살 때에도 내가 판단하여 가격이 비싸도 품질이 좋은 것을 사야된다고 생각되면 그렇게 하였고 품질보다 가격이 중요하다 싶으면 그렇게 하였다. 그 당시 사장님 부친께서 회장으로 계셨는데 한 번은 나를 부르셨다.
그리고는 어떤 자재의 발주 상황에 대해서 물으시는 것이었다. 그 자재는 회장님 친구 한 분이 견적을 낸 사실을 내가 알고 있었는데 서류를 들고 들어가서 이러저러한 업체들이 어러저러한 견적을 냈는데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이 업체를 선정하고자 합니다 하고 보고를 드렸다. 물론 회장님 친구분의 회사가 제외되었던 것인데 회장님은 잠시 침묵하시더니 “그렇게 해”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비록 불의의 사고로 손가락 발가락이 잘리는 부상을 입고 예편은 하였지만 황금을 돌같이 여기라는 가르침이 몸에 배여 있었고 히틀러와 나폴레온을 존경하고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를 흠모하면서 세상을 아래로 내려다 보던 기고만장하던 때였던 만큼 부조리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고 리베이트 같은 것은 알지도 못했었다.

(2)
공장이 가동되고 제품이 나오기 시작하자 사장님은 나를 특별히 과장으로 진급시키시고 공장 관리를 맡도록 하였다. 제품 창고, 자재 창고, 생산관리 업무와 함께 통관 업무도 담당하게 되었다.
기계류 뿐 만 아니라 고정적으로 많은 양의 원자재를 수입해다가 공장에서 현장 통관을 하였기 때문에 자연히 세관 사람들과 어울릴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술마시는 기회가 많아졌다.
지금은 어떠한지 모르지만 그 당시는 수입된 자재를 먼저 사용하고 통관은 나중에 하는 사후통관이라는 것이 있었다.
은행에 자재대금을 납입하고 선적서류를 받아서 그것을 가지고 통관 수속을 끝낸 후에 수입자재를 사용해야 하는데 쌓여 있는 자재를 놔두고 공장 가동을 멈출 수가 없으니 부득이 그러한 편법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일을 맡아서 하면서 나는 내가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 당시는 내가 보기에 회사가 살려면 그 길 밖에는 없는 처지였음으로 나는 그 일을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나의 소임이라고 여기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혼자 책임으로 아주 열심히 해 나갔다.
그 때는 내가 하나님을 몰랐던 시절임으로 업무상 술마시는 일이나 회사를 위하여 법을 어기는 일 따위가 잘못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사관학교에서 국가를 위하여 목숨도 바친다는 훈련을 받고 그 생각이 뇌리에 뿌리 박혀 있던 나로서는 회사를 위하는 것이 결국은 나라를 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지금 같으면 생각지도 못할 일을 했던 것 같다.
그때 나의 월급이 삼만원이었다.
일만원을 어린 동생들 데리고 혼자사시는 어머님께 보내고 이만원가지고 공장 근처 단칸 셋방에서 아내와 큰아이 세식구가 살았는데 서울 본가도 살 수가 없고 나도 살아가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자주 술을 마시면서 내 주머니에는 언제나 회사 돈이 있었고 내가 쓰는 접대비에 대해서 간섭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나는 십원 한 장 내 가족을 위해 쓰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인도네시아에 합작공장을 세우기 위하여 진출하는 회사에서 사원을 구한다.는 광고가 있어서 응모 하였더니 과장으로 발탁하여 줌으로 인하여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사장님에게 개인 형편상 외국에 나갈 수 밖에 없어서 회사를 그만 두는 것이라고 말씀드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사장님은 “보내기 싫은데 외국에 간다니 잡을 수도 없고”하시면서 그동안 수고 했다면서 수표 한 장을 건네주시는 것이었다.
공장과 본사와 그리고 특별히 가까웠던 사람들과 이렇게 세 번씩이나 환송연을 받으면서 그 회사를 떠났었고 그렇게해서 그 사장님과 작별을 하였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공장을 다 짓고 제품이 막 생산되어 판매가 시작될 무렵인데 회사의 자금 사정이 극도로 어려워서 부도가 난다는 걱정을 할 때이다. 내가 모르기는 해도 사장님이 자신의 부친인 회장님에게 최종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던 것 같다. 회장실에서 고함 소리가 들리고 던져진 재떨이가 바깥 사무실까지 미끄러져 나오던 장면이 생각난다. 그 당시 사장님은 얼굴이 반쪽이 되도록 여위시고 옆에서 보기에도 참 안타까울 정도로 혼자 고군분투 노심초사 하시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3)

그렇게 그 회사를 떠나고 그 사장님과 헤어진지 40년이 지난 지금 그 분이 돌어가셨다는 소식을 신문지상을 통하여 접하게 된 것이다.
그 동안 기회를 봐서 틈틈이 인사라도 드렸어야 하는데 물론 다른 회사에 들어가서 해외로 다니면서 정신없이 그곳 일에 몰두하다 보니 그렇게 할 여유가 없었다고 핑계를 댈 수 는 있겠으나 어떻든 배은망덕한 나, 인간관계를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나, 자신을 탓하는 마음이 앞서면서 후회스럽고 죄송스럽기 한량없다.
그리고 요즈음은 웬만하면 80은 다 넘기는데 그렇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이 애석하면서 인생이 짧고 허무하다는데 정말 그렇구나 하고 새삼스레 허전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나의 죽음도 임박하였구나 하는 생각과 그러므로 지금은 언제라도 나의 생이 마감 될 수 있는 시기에 내가 도달해 있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나의 인생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그 회장님은 세상적으로 내가 원하였었고 목표로 꿈꾸었던 삶을 살다 가셨는데 택시 운전을 하고 있는 나의 인생은 무엇인가 하는데 생각이 미치니 야릇한 시기심도 생기고 패배자의 자괴감 같은 것도 엄습한다. 이러한 나에게 하나님은 창세기 45장 말씀을 들려주셨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 즉 나를 이리로 보낸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로 삼으셨나이다”(창세기 45:7~8)

이 말씀은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서 천신만고 끝에 총리까지 된 요셉이 자신을 미워하여 노예로 판 형들이 곡식을 구하러 왔을 때 그 형들에게 행한 아주 유명한 말씀인데 그 가운데

“나를 이리로 보낸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라는 말씀이 내 마음을 치는 것이었다.
그렇다. 내가 그 회사를 그만두고 인도네시아로 가고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가 실패하고 다시 다른 회사에 취직하여 동남아로 중동으로 다니면서 일을 하다가 방글라데시까지 가서 비로서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게 되고 정년 퇴직후 “말년은 하나님 뜻대로 살아 보겠습니다."라고 기도드릴 때 나에게 주어진 일이 이 택시일인데 이 모든 것이 죄 많고 목이 곧은 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의 역사하심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이었다. 아니 그 이전에 내가 사관학교에 들어간 것부터 사고로 예편한 일 까지가 모두 나를 구원하시려는 그리고 우리 식구들과 나를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알게되었다.
세상적으로 보면 나의 삶은 실패한 삶이다.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 때 죽을 뻔했다가 겨우 살아나서 예편했으니 시작부터가 실패였던 것이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스스로는 남보다 더 열심히 더 많은 일을 했다고 하나 그 역시 성공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고 개인 사업도 시작했다가 완패로 끝냈으니 모든 것에 실패한 삶을 살아 왔던 것인데 깨닫고 보니 이러한 모든 실패가 나에게 있어서는 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 구원의 역사하심이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일찍부터 손을 내미시고 내가 그 손을 잡기를 원하셨는데 나는 그것을 전혀 모르고 내 고집 나 자신의 의에 눈이 멀어서 세상을 헤메었던 것인데 그래도 하나님은 사랑의 손길을 거두어들이지 않으시고 어리석은 내가 스스로 깨달아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기까지 참고 기다려 주셨던 것이다.
비록 인생의 말년에 들어선 늦은 나이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며 거듭나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신 은혜를 생각하면 그저 감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독생자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하시고 모든 죄의 용서를 받으면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고 이 축복을 통하여 영생의 소망을 갖게 하신 은혜가 또한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
성령님의 함께 하심과 역사하여 주심으로 말미암아 나 자신을 성화되어 가게 하시고 영원한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기 위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지는 삶을 살아가게 하고 계신 것이다. 아무것도 나의 것으로 생각지 않고 나의 죄많음과 또한 능력 없음을 뼈저리게 통감하면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만족하고 하나님만을 영광스럽게 해 드려야 한다는 마음자세를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아 가게 된 것은 택시 일을 통한 연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나에게 허락하신 은혜이다.
내가 워낙 죄가 많고 목이 곧으며 강퍅한 심령의 소유자인지라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택시 일을 시키시고 이 일을 통하여 나를 낮아지게 하시고 나의 능력 없음을 깨닫게 하시며 나의 죄인 되었음을 회개하게 하시어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게 하고 계시니 이 택시 운전이 결코 후회나 부끄러움이나 낙망할 일이 아니고 오히려 나에게 있어서는 누가 무어라 해도 더할 수 없는 감사이고 은혜이고 축복인 것이다.

이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들은 한 개의 질그릇에 지나지 않아서
이렇게도 쓰임받고 저렇게도 쓰임 받다가
이 세상을 떠나는데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되는지 몰라서 두려움에
떨며 이 세상을 하직하지만
나는 누가복음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 같이
하나님 품에 안기는 복을 누리게 되었으니
이아니 영광이고 이아니 축복인가
그리고 또한 이 보다 감사한 일이 또 있을 수 있는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는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찬양 하리라
아멘
(찬송가 405장)

2011-08-22 13: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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