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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민생활 속에서
이름
김사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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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주년 기념물 제막식에

하와이는 이민 100주년 되어 각종 행사로 사람들의 마음에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고 들뜬 기분으로 만들었다.
거리마다 차의 홍수로 넘쳐 나고 거리마다 한국 사람들의 얼굴에 홍조가 띠었고, 발그레한 미소가 넘쳐 나고 있다 .
사실 말이지 하와이는 살기로 말하면 얼마나 적당한 날씨인가, 이곳에 산것도 이십 팔 년이 되어 가는데 날마다 살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처음 이민 올적에, 다섯 살서부터 큰애가 열 세살 올망졸망한아이들, 네놈 키우느라고 삶이 좋은 지,슬퍼 할새 없이 지나갔습니다. 길가로 즐비하게 피어 있는 후르메리아꽃과 ,베냔 추리 늘어진 모습도 익히지 못하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그
놈들 다 제 갈길 가고, 우리는 구세대라고 하고, 세대 차이가 난다고 하는 소리를 듣는다. 이렇게 한국 문화에 , 미국 문화에 소외되고 보니,이렇게 살면 안되지 하며 다급하여, 한국에 문화와, 예술이라는 곳을 찾아다니다 보니, 올해에 백주년 기념에 여러 곳을 참석하게 되었다.
독서 클럽에도 쫓아가서 참여하고, 문학 동인회에도 참석하여 귀기울이다 보니 살아 있다는 것을 공감한다고 할까, 다른 세상을 기웃거리는 있는 것 같았다. 적어도 한 달에 한번쯤은 우리 문화 속에 나를 담아 보게 되었다.
나이 들고 메마른 인심 속에서, 이러 다간 이것도 저것도 아닌 국제 고아가 되어 반 선 머슴아 될 것 같아 세월을 잡고 열심히 다니었다 .
오늘은 문학 동인회 회장님인 김해숙씨가 백주년에 바치는 시를 낭송한다니 예배가 끝나자, 곧장 달려오니 그래도 늦어서 자리는 없지만 사진이라도 찍으라고 천막 옆에 바싹 붙어서 있었다 . 천막 옆은 따가운 햇살을 막아 주는 그늘은 되어주었다. 와서 보니 앞에 의자에 앉아 있는 분들에 하와이에서 내노라 하는 유지들이다. 그들은 목에다 레이를 하나씩 걸고 의젓하게 앉아 목에 힘을 꽉 주고 있었다 . 그럴듯한 분위기 이었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 오며 가며 보던 것인데 그것이 바로 한국 백주년 기념 물 제막식이라고 한다.
본토에서 양성철 대사님, 하와이 주지사, 하와이 상 의원, 하의원, 김창원 준비위원장님이 먼저 나가 개회를 하고 목사님의 기도로 시작하니 , 이어 대원사 절에 다섯 스님도 나와 목탁을 두드리고 염불을 하고 있다. 조금 생소하다 .스님들이 나와서 행사에 염불을 하는 것이 어색하게 보이는 것은, 미국은 기독교가 세운 나라이라서 인 것 같다. 한번도 그런 경우를 본적이 없었다. 누런 장삼을 입고 나와 염불을 하는 것이, 왜 낯설어 보이나, 생각을 하며, 그래도 사회를 영적으로 이끌어 갈 분들은 저분들이다, 목사님이나 신부님이나 스님들이 것이라는 것이 실 감이 난다.
하와이도 현승이란 분이 전도사로 와서 통역을 하면서 초기 이민 사회를 이끌어 가는데 길잡이가 되었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사물놀이로 식을 시작하여 미국국가를 먼저 부르고 한국 국가를 부르고 국기에 대한 경례가 하였다 .
나는 이민 와서 살다 보니 국기에 대한 경례를 30년 동안 두 번 하였다. 국기를 볼적마다 눈물이 났다 .이것이 애국인지 모르지만 ...
하와이 영사가 축사를 하고 하와이 주 정부에 주지사 상의원 주미대사 이런 순서로 식이 진행되었다 .
김 희숙님의 백송이 장미를 바치는 시 낭송을 하고 나서 마지막에 아리랑 불렀다 .
이민 30년에 아리랑 식장에서 처음 불러 보았다. 아리랑을 T V에서 부르는 소리는 들었지만 식장에서 같이 부르기는 처음이다.
그 아리랑을 연주를 하고 앞에서 노래를 부르니 일제히 일어서서 아리랑을 부르고 있었다 . 우리 나라 사람 아리랑 부르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슴에 조국을 그리고 잔잔히 부르는 아리랑이 온 공원으로 퍼지는데 눈물이 흘러나온다 . 부끄러울 정도로 눈물이 났다. 아리랑은 어머니의 품안 갔다 . 혼자 멀리 떠나 있다가 어머니 품에 안긴 것 같았다 .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오 나를 버리고 가시면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 ."
아리랑 얼마 만에 불러 보는 어머니 같은 노래인가 . 설음이 터져 나왔다. 이민의 어려움의 설음, 어머니를 버리고 온 설음, 아버지 땅에 묻어도 가보지 못한 설음, 아이들 키우면서 적응하기가 어렵고 힘들던 설음, 언어가 통하지 않아 겪었던 설음이, 설음이 하얀 구름이 되어 하늘 높이높이 흐르고 있었다.
각자의 마음속에 사연이 많을 것이다 . 더욱이 초창기에 이민 온 사람들. 팔십, 구십을 바라보는 분들은 그들의 애환이 다 실려 있을 것이다 .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 표정 속에는 숙연한 진지함이 배여 있었다. 젖어 있는 눈을 볼 수가 있었다.
얼마나 더 살 것인가 이런 좋은 행사를 볼 수 있다니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민 와서 느끼는 것은 지금 이민 현장에 쏟아 놓은 노력을 내 조국에 하였다면 이보다 더 잘살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결론을 얻었다. 내가 한국을 떠날 올 때에는 여자들의 일자리가 많이 있지 않았다. 일할 균등의 기회가 없었다 .
미국은 일을 얼마던지 할수 있다. 부지런하면 살수 있는 좋은 세상이다. 누구에게나 일을 할 수 있는 균등한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를 하였다.
직업의 개념이 귀천이 없어서 좋았다 . 어디서 일하느냐 하고 물으면 청소를 하지요, 하면서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사회 인 것이다. 식당에서 일하고 있어요. 하고 더러는 밤업소에 나갑니다. 당당한 여유를 나는 사랑한다. 직업에 상하가 없는 것이 나는 좋았다. 나 같은 사람도 일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였다.
우리 아이들은 내가 청소하는데 데리고 가서 같이 청소를 시킬 수가 있었다 . 그 아이들 의사 되고, 목사도 되었다.
그 아이들 자랑스럽게 엄마 청소하는데 도와주었다고 말한다. 아리랑이 울려 퍼지면서 우리 마음속에 이민의 역사도 울려 퍼지고 저 아리랑처럼 이 땅에 뿌리박고 앞으로 백년 이 백 년 길이 이 땅에 저 기념비처럼 우뚝 서서 조국을 빛을 내 주기를 비는 마음이다 .
2006-01-27 04:30:34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김동욱 깊은 감회를 느낍니다 수고하셨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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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후란 이십 팔년이란 세월을 참으로 열심히사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반듯한 님의 삶이 자녀들의 본이 되어 훌륭히 자라났군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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