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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독교문예 9호원고 수필1편
이름
염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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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화일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은....


나는 유년주일학교 시절부터 하나님을 알고 믿었다.
우리 부모님이 어떻게 나를 만드셨는지 논리적으로 따지는 불경(不敬)한 사람은 없는 줄 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비롭기 그지없는 우주만물과 모든 생명체도 당연히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시는 하나님 품에서 나왔다고 믿어졌던 것이다. 여기에는 그 어떤 장황한 설명도 필요치 않았다. 하나님이 그냥 만유의 주인으로 믿어졌다.

어려서부터 아무런 저항도 없이 하나님이 믿어졌다는 사실이 무한히 감사하다. 하늘 천사들도 신들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은 훨씬 후에야 알게 되었지만, 신들 중의 으뜸이 되시는 홀로 한 분, 유일하신 하나님 신앙은 내 마음에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복 중의 복이 아닐까 한다.
내게 있어 이 믿음은 털끝만큼도 의심이 가지 않는 믿음이라고 자부한다.

나는 그 어떤 경우에도 내 자식을 털끝만큼도 미워하는 마음이 없다고 단언하는 것처럼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혹 내가 불완전한 나 자신의 존재를 의심할 수는 있을지언정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본질 중의 본질(本質)되시는 하나님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세상 사람들은 그토록 자명(自明)한 하나님을 그렇게도 모르고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지, 그 하나님을 인정하는데 그렇게도 힘들어야 하는지 나는 그것이 더 이상하고 신기하기만 하다.
마음에 더러운 때가 끼고 어둠이 지배하면 눈이 멀어 마땅히 볼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말씀했는데(요1서2:11), 그렇다면 나는 원래부터 마음이 깨끗해서일까? 그것은 절대로 아니다. 내가 나 자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하나님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소위 특별한‘믿음의 은사’같은 것을 은혜로 주셨는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도 해본다(고전12:9).
학창시절 언젠가 누군가와 대화하는 중에 “만일 성경이라는 책이 세상에 없었다면 이와 비슷한 그 어떤 경전 같은 것을 내가 만들어 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했던 기억이 문득 새롭다.
하나님은 마음 중심을 감찰하시고 판단하시는 여호와이시다(창16:13,시139:1). 하나님의 말씀이 위대한 것은 우리 마음을 그 언제나 참된 본질(本質) 앞에 적나라(赤裸裸)하게 세우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본질 중의 본질이 되시기 때문에 이 일이 가능하다.
내용을 담는 형식도 중요하지만 그 언제나 본질적인 진실한 내용이 더 중요하며, 우선적 가치를 지닌다. 예수님과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바리새인이 자주 충돌하셨던 까닭은 형식과 내용에서 주객이 전도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음에 탐욕을 품으면 그는 이미 도적질 한 것과 같고, 마음에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으면 이미 살인한 것과 같고,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한 것과 같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그러므로 너희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장 요약).

하나님 앞에 발가벗은 몸으로 설 때에야 비로소 사람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죄악 된 무능한 존재인지, 얼마나 구원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인지를 뼈저리게 제대로 알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본질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고 힘과 능력을 주십사 하고 기도할 수 있게 된다.

‘이채’라는 시인은 마치 마태복음 5장의 내용을 주석이라도 하는 듯이 ‘마음이 아름다우니 세상이 아름다워라’라는 시를 통하여 잘 담아냈다.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이 없고
곱게 보면 꽃 아닌 사람이 없으되
내가 잡초 되기 싫으니
그대를 꽃으로 볼 일이로다

털려고 들면 먼지 없는 이 없고
덮으려고 들면 못 덮을 허물없으되
누구의 눈에 들기는 힘들어도
그 눈 밖에 나기는 한 순간이더라

귀가 얇은 자는
그 입 또한
가랑잎처럼 가볍고
귀가 두꺼운 자는
그 입 또한 바위처럼
무거운 법

생각이 깊은 자여!
그대는 남의 말을
내 말처럼 하리라

겸손은 사람을 머물게 하고
칭찬은 사람을 가깝게 하고
넓음은 사람을 따르게 하고
깊음은 사람을 감동케 하니

마음이
아름다운자여!
그대 그 향기에
세상이 아름다워라
마음이 아름다우니 세상이 아름다워라

어떤 분은 이 시를 다음과 같이 풀어서 썼다(좋은 생각 중에서).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은 상대가 자기를 알아주기 전에 먼저 상대를 알아주는 사람이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은 상대가 자신의 정당한 청을 거절할 때도 자신은 상대의 정당한 청이라면 거절하지 않는 사람이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은 상대가 자기를 미워하여도 상대를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은 상대가 자기를 악하게 대하여 생명의 위험을 느껴도 아름다운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는 사람이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은 상대가 자기 뜻에 지배되듯 따르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자신이 지배받듯 따르려 하는 사람이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은 상대를 자신의 뜻대로 붙잡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픔을 이기고 상대의 마음을 생각하며 상대를 고이 보내 주는 사람이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은 상대를 자신의 뜻대로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뜻에 따라 순종하고 정복당해 주는 사람이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은 상대에게 무엇이나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할 수만 있다면 모두 주는 사람이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은 상대에게 불필요한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내가 상대에게 상처를 입는 것을 마음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은 상대를 배신하여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상대에게 배신당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은 자신을 버리고 떠나버린 상대를 위해 즈린 가슴 부여잡고 눈물로 축복해 주는 사람이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은 자신을 배신하고 떠나버린 상대를 못 잊어 홀로 우는 사람이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은 떠났던 상대가 다시 자기를 찾아 돌아와 줄 땐 지난날의 잘못을 다 용서해 줄 수 있는 사람이며 반가워 뛰어나가 영접할 수 있는 사람이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은 언제나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더 생각하고 살려는 마음이며 상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과 봉사로...심지어는 자신이 생명의 위험에 처해도 상대를 배려하는 사람이다.

나는‘말숨’ 글을 쓰면서 몇 가지 원칙을 끝까지 지키려고 한다.
그것은 독자와의 약속이기도 한데,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정직한 살아있는고백적인 글을 쓰는 것이 그 첫째고, 하나님을 나타내는 글을 써서 이웃 사회에 하나님의 이름을 기념하고 전파함으로서 교회와 사회에 봉사하고자 함을 그 목적으로 하는 것이 그 둘째다. 이를 위해 모든 사심을 버리고 내게 주어진 모든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아낌없이 쏟아 붇는다는 것이 그 셋째다.
이런 소박한 원칙 때문에 부족한 가운데서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2014-02-03 11:31:00 / 182.227.18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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