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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준 [ E-mail ]
  다빈치코드 유감
  

다빈치코드 유감

교수님!
2006년 4월 14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정동칼럼’<다빈치코드와 한국기독교>를 읽고 글을 씁니다.저는 예향 광주의 작은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국어교육에 헌신하셨고,평소 할 말은 하시면서 잡지 발행을 통해 문화 발전에 큰 공헌을 하고 계시는 교수님을 매체를 통해 부분 부분 접하면서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번 ‘정동칼럼’은 저에게 충격이었습니다.사실 저는 교수님이 그토록 못마땅해하는 기독교인이거든요.표면적으로 보면 교수님의 글은 균형감각을 갖춘 것처럼 보입니다.더욱이 해박한 지식과 빈틈없는 논리로 무장한 필봉은 ‘다빈치코드’와 관련,기독교인들을 마음껏 두들겨 패며 교수님과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속을 시원케하는 힘도 있었습니다.하지만 교수님의 문화적인 지식과 논리를 잠시 내려놓고 열린 마음으로 제 글을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교수님은 많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확립하라고 가르치셨을 겁니다.그러나 정작 교수님은 본인이 누구이고 어디서 와서 왜 살다가 어디로 가는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계신지요? 자아를 발견하지 못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인생을 포기합니다.자살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인본교육이 실시된 이래 수많은 교육자들이 도덕을 가르치며 제자들을 양성했지만 자살은 더욱 늘어나고 있습니다.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요? 그 책임은 1차적으로 교육자에게 있습니다.바쁜 세상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키워달라고 교육자에게 맡겼으니 말입니다.특히 석학으로 인정받는 교수님은 그 책임으로부터 더더욱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인간이 우주에서 차지하는 위치입니다.지구는 1년에 한 번씩 태양을 돌고,하루에 한 번씩 자전을 합니다.그런가 하면 지구 주변을 달이 1개월에 한 번씩 돌면서 바닷물을 정화하고 있습니다.그리고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지구에만 생명체가 살고 있습니다.물론 대기권,물,산소 등 생명체가 살 수 있도록 환경이 갖춰져 있기 때문입니다.이런 것들이 우연히 되었을까요?
우리가 하늘이라고 부르는 것은 몇 개의공간으로 나누어집니다.육안으로 볼 수 있는 하늘을 첫째 하늘이라고 한다면 '공중'이 속해 있는 둘째 하늘이 있습니다.또한,낙원에서부터 새예루살렘까지 이어지는 셋째 하늘,곧 천국이 있으며,하나님의 근본 보좌가 있는 넷째 하늘이 있습니다.천국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여러 천사들이 있는데 미가엘,가브리엘 등이 우리에게 알려진 대표적인 하나님의 사자들입니다.루시퍼도 처음엔 천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던 천사였는데 하나님과 비겨볼려다가 둘째 하늘,곧 공중으로 쫓겨내려왔습니다.그를 성경에서는 사단(satan)이라고 이름합니다.또한 사단을 벌주기 위해 하나님은 한 장소를 계획하고 있는데 그곳이 지옥이라는 곳입니다.사단은 기한이 되면 지옥에 던져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행성들 가운데 지구를 멋지게 장식하셨습니다.각양 식물과 날짐승,들짐승 들을 종류대로 창조하시고 맨 마지막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시고 에덴 동산에 살도록 하셨습니다.하나님이 만물(우주 및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을 창조하셨고,그 가운데 사람만이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습니다.인간만이 희로애락의 표현이 분명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구상의 인구중에 ‘나’와 같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그러므로 ‘나’는 결코 비교대상이 없는 고귀한 존재입니다.뿐만 아니라 개개인에게는 하나님 주신 달란트가 있습니다.사람 개개인은 하나님 최고의 걸작품인 것입니다.이것을 아는 것이 자아발견이고 이 자아발견을 돕는 것이 교육입니다.교육자들이 이것을 철저히 교육시키면 사람들이 고귀한 생명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에덴 동산으로 돌아가겠습니다.동산에는 각양 과일들이 넘치도록 준비되어 있어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단지 온 우주의 주권자가 하나님임을 인정하는 표시로 ‘선악과’ 하나만 건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그러면 행복은 영원히 지속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루시퍼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것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더구나 꽃,풀,과일,각양 짐승 들을 감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면서 마냥 기뻐하시는 하나님이라니.그래서 사단은 에덴 동산까지 침투하여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끼어들었습니다.첫사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고,루시퍼의 사주를 받은 간교한 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고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이후로 인류는 사단의 종이 되어 사단이 인도하는 대로 끌려다니다가 사단이 처해지는 지옥에 함께 떨어지는 운명을 지니게 되었습니다.사단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만 골라서 합니다.고대 사회의 순장제도나 인도의 사티제도(남편이 죽으면 아내를 함께 태워죽이던 풍습)는 사단의 작품이었습니다.사단은 사람을 병들게 합니다.사람 사이를 이간질시킵니다.부부가 갈라지게 합니다.부모를 거역하고 간음하게 합니다.이웃을 탐내고 도적질하게 합니다.우울증으로 몰아갑니다.정신 이상자가 되게 합니다.사람을 좌절케 하여 자살하도록 합니다.사단은 지금도 인류를 도처에서 도륙하고 있습니다. 모든 불행의 시발자는 사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단을 멸하고,사단이 왕노릇하는 세상에서 사단에게 매인 사람들을 하나님 자녀의 신분으로 원상회복시키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그가 다름 아닌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3년여의 공생애 기간 동안 이 사실을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사단의 영향력 아래 고통받고 있는 자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인간을 병들게 하는 사단의 세력인 귀신들을 쫓아내며 각색 병자들을 치료하셨습니다.‘다빈치코드’에 등장하는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 들린 자였는데 예수님이 억압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당시 이스라엘 관습으로 볼 때 귀신에게 시달리면 저주받은 사람으로 간주하고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단이 뿌려놓은,인류의 모든 고통의 씨앗인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매달려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습니다.예수님은 자신이 어떻게 생을 마감해야 하는지를 아셨습니다.예수님은 겟세마네 바위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십자가의 ‘쓴잔’이 비켜가길 원했습니다.하나님 앞에 세 번이나 부르짖었습니다.얼마나 고민하고 괴로워했던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먼저는 제자의 배신이 있었습니다.종교 지도자들 앞에서 채찍에 맞았습니다.당시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로마의 군병들은 예수님을 마음껏 조롱했습니다.‘유대인의 왕’이라면 면류관을 써야 한다면서 가시관을 씌웠습니다.왕권의 상징인 지팡이 대신 갈대(staff)를 예수님 손에 들리우는가 하면 그 갈대로 머리를 쳤습니다.옷을 벗기고 자색옷을 아무렇게나 입혀놓고는 그 앞에서 절하는 포즈를 취했습니다.‘선지자’라고 했으니 내가 누구인지 알아맞혀 보라며 주먹으로 치고 심지어 침을 뱉으면서 낄낄거렸습니다.십자가에 달려 고통스러워하는 예수님 바로 밑에서 로마군병들은 예수님의 통옷을 누가 가질까 제비 뽑기를 했습니다.마지막에는 확인사살을 하기 위해 옆구리에 창을 날렸습니다.예수님의 말씀대로 열두 ‘영’도 더 되는 천사들을 불러 당장이라도 십자가를 박차고 내려와 그가 힘있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창조주의 신분임을 보여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인류의 구원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오히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이 불쌍해 보였습니다.그래서 그들의 죄도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그러나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는데 다시 사심으로 우리도 덩달아 살아난 것입니다.(이 사실을 인정하고 예수님이 구세주되심을 입술로 고백만 하면 우리의 모든 죄는 도말되고 하나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40일동안 사람들에게 보이시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시면서 천국에 처소를 마련한 후 이 모습 이대로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물론 그때까지 하나님 자녀를 보호하고 인도하실 보혜사(helper)를 보내시겠다는 약속대로 성령님이 오셨습니다.성령님은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우리가 듣고 깨닫도록 하시면서 여러 가지 은사를 주십니다. 믿는 자가 예수의 이름으로 사단을 대적하면,예전에는 우리를 가지고 놀던 사단이 도망가게 되어있고,사단의 세력인 귀신을 쫓아내면 육체 안에 살던 귀신이 떠나가게 되어있습니다.그리고 하늘의 언어인 ‘방언’을 주시는데 제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 성도들 중 80% 이상이 방언으로 기도하고,저희 온 가족도 그 방언으로 기도합니다.
교수님!
사실이 이러한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 아니고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다는 내용의 영화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허용하자고 합니다.2000년 전에 인류가 예수님께 가했던 수모를 한국에서도 재현하자는 것입니다.그리고 이것을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을 편협한 배타주의로 몰아붙입니다.
사단은 인류가 자신의 신분,즉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피조물이고,이 땅에서 행복을 누리다가 육체가 죽으면 영혼이 하나님과 영원히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알지 못하도록 방해를 합니다.사도 바울(처음엔 예수 믿는 자들을 포박하러 다녔지만,다마스커스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뒤로 이방인들에게 예수를 전했던 사람이며 ‘예수를 아는 고상한 지식’앞에 ‘문화적인 지식을 배설물로’ 여겼음)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도 사람들이 이러한 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은 이 세상 신(사단)이 사람들을 혼미케(blind)했기 때문이라고 밝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이 땅의 지식인이요 교육자로서 올바른 생명의 길을 제자들에게 제시했다고 자신있게 말씀하실 수 있는지요? 그리고 ‘다빈치코드’와 관련하여 신문 독자들에게 분별력을 갖도록 했다고 떳떳하게 말씀하실 수 있는지요?
연작이 어찌 봉황의 뜻을 알겠습니까? 진리를 알지 못하고서 시시비비를 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다빈치코드’ 상영을 기독교계가 염려하는 것은 ‘성경적 사실에 대한 절대불변의 확신’이 흔들릴까 해서가 아닙니다. ‘큰 일이라도 난 듯 쌍지팡이를 짚고 나서는’ 것도 ‘신앙이 내적으로 허약해서’가 아닙니다.
인류를 사단의 세계에서 빼오느라 예수님이 그 고통을 받으셨습니다.그 조롱을 당했습니다.자신의 전부를 내 주었습니다.예수님은 사랑으로 그렇게 우리를 품었습니다.예수님은 사람이 아닙니다.하나님의 본체로부터 분리된,곧 근본이 하나님이신 분입니다.이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예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그것이 지각있는 사람이 응당 취해야 할 도리이자 의무인 것입니다.그런 의미에서 ‘다빈치코드’ 내용은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을 욕되게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또한,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향방없이 살다가 생을 마감한 뒤 사단을 따라 지옥불에 내동댕이쳐질 것을 염려하기 때문입니다.성경은 사람에게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은 다음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말씀하지만 ‘다빈치코드’같은 허구가 세상에 관영하게 되면 사람들은 진리에 근접도 못해본 채 자신도 모르게 사단과 동일한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수님의 논리대로라면 일본 사람들이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할 때 대통령까지 나서면서 ‘과민반응’ 보일 필요가 전혀없는 것입니다.일본 대사관 앞에서 시위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또한,국권을 수호하기 위해서 독립운동하다 갖은 고문을 당하고 처참하게 순국한 조상들은 ‘지나치게 요란’스러웠다 할 것입니다.
진리와 비진리와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닙니다.하나님의 사람과 사단과의 영적 싸움입니다.기독교계 내부의 잡음 때문에 비위상하신 것도 인정합니다.하지만 그것도 사람들을 진리로부터 등을 돌리게 하려는 사단의 술수가 상당부분 성공한 것입니다.기독교계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인정하지만 오늘날 삶의 질적 향상은 기독교의 공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겸손하지 못하고 안하무인격’인 기독교인으로서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그것은 예수님이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나 로마 군병 앞에서 그토록 조롱당하고 인간 이하의 모독을 견뎌내며 십자가를 졌던 것은 교수님을 사단의 세계에서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옮겨 주시려는 사랑의 몸짓이었다는 것입니다.

김기준 올림
* 인하대학교 김 모 교수가 경향신문에 칼럼을 게재했습니다.'다빈치코드' 영화 상영을 기독교계가 반대하는 것에 대해 온갖 수사를 동원하여 비난하고 조롱하는 글이었습니다.이에 대한 반박의 편지를 김 교수에게 보냈는데 그 편지의 전문입니다.영적인 내용은 작품으로 올리면서 수정을 했습니다.기독교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 세계에서 '다빈치코드'가 상영되고 말았습니다.
2006-05-11 21:49:09


     
  
   서로가 서로를 알아간다는 건
   삶은 여전히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