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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甘泉권기훈 [ E-ma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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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 <하고 싶은 무엇> /권기훈





수강생들의 이력서를 살펴 볼 것 같으면 십대후반에서 오십대에 이르기까지 연령적으로도 다양한 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경력도 각양각색이라서 드라마에 대한 관심 내지는 의욕이 사회 전반에 걸쳐서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이십대에서 삼십대의 주부층이 압도적으로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과 고등학교 시절 또는 대학시절에 문예반 활동 비슷한 것을 경험하여서 시라든가 소설에 제가끔 도전해 본 경험의 소유자들이 대부분이라는 것도 예측한 대로의 판도라고 하겠다.



굳이 예측한 대로의 판도라고 말하는 까닭은 텔레비전이라는 매체가 여권 신장과 더불어 발전의 궤도를 함께 하였고, 주부들의 제국이라고 할 수 있는 안방에서 본다는 기능상, 여성들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괄목할 만한 여성들의 진출도 타방면에 비하면 가히 압도적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고, 또 요사이 사회 전반에 걸쳐서 직장에서의 성차별이 논란이 되고 있다.



자유업인 드라마 작가의 세계에서만은 성차별은커녕, 오히려 남성작가들이 차별대우를 받고 있지 않은가 느껴질 정도이니 여성들이 대거 드라마를 지향하게 되는 사회적 여건은 익을 대로 익은 셈이다.



그런데 그렇다 치더라도 왜 고등학교시절이나 대학시절에 가까이하던 시나 소설 쪽으로 매진하지 않고 드라마 쪽으로만 쏟아져 들어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시나 소설은 쓰기 어렵고 드라마는 쓰기 쉽다는 데에 있다.

브라운관을 통하여 안방으로 밀려들어오는 드라마의 홍수를 볼 것 같으면, 저 정도라면 나도… 라고 불현듯이 드라마를 쓰고 싶은 의욕을 북돋아주는 그런 드라마가 많이 방송되고 있는 것이다.



더 더군다나 생활 속의 일상성과 리얼리티가 텔레비전 드라마의 두 개의 기둥이라서, 《흔해 빠지고》, 《진부하며》 손쉽게 쓰면 된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이야기할 때 누가 니체나 엘리옷이나 까뮈를 말하랴.

그런 고답적인 철학이나 난해한 현대시나 부조리 문학은 소설이라는 분야에서 따질 일이지 드라마와는 무관한 세계이며, 드라마는 그저 생활 주변에서 소재를 찾아서 자연스럽게 구성하여 현대감각으로 써 들어가면 된다는 인식이 작가 지망생들의 지배적인 경향이다.



사실 드라마 쓰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지문과 대사만 잘 쓰면 되지 않은가? 그래서 수강생들은 조급하다.

자신이 쓴 극본이 제작되어서 전국의 네트워크를 타고 방송되어 수백만 시청자들의 갈채를 받고 명성도 얻고 돈도 벌고… 그날이 한시라도 빨리 와야 된다는 성취욕에 불타는 수강생들의 두 눈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다.



그들은 텔레비전 메커니즘의 기술이라든가 극본구성의 방법론을 익히면 자신은 금방 작가로 데뷔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진부》하고 《흔해 빠지고》, 《얼마든지 있는 이야기》로 극본을 꾸며내는 것이야말로 누워서 떡먹기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사실은 거기에 함정이 있는 것이다.



《진부하고 흔해 빠지고 얼마든지 있는 이야기》로 극본을 꾸며낸다는 것, 더구나 그 극본으로 수백, 수천만의 시청자들과 공감의 끈으로 이어져서, 즐겁게도 하고 눈물겹게도 만드는 공감의 장을 창출해 내기가 낙타의 바늘구멍 통과하기 만큼이나 힘 드는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텔레비전 메커니즘의 A. B. C. 라든지 극본구성의 요령 같은 것은 교육으로 전수할 수 있는 분야지만, 그런 것을 터득한다고 해서 극본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하고 싶은 무엇〉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시라든가 소설이 어렵기 때문에 손쉽게 보이는 드라마를 해 보자고 생각하여 덤벼들었다면 그것은 크나 큰 오산이다.



텔레비전의 기술적 요령을 익히고 극본이라는 독특한 형식의 노하우를 터득해서 작가가 되겠다는 것은 옳은 일이지만, 그 이전에 〈하고 싶은 무엇〉이 없다면 기술과 노하우를 암만 공부해도 공중누각에 불과할 따름이다.



〈하고 싶은 무엇〉이 있는 사람만이 시에서도 소설에서도, 또 드라마에서도 작품을 쓸 수가 있는 것이다.



내가 아는 시인이나 소설가들에게 극본을 써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 적이 있는데 모두가 극본에 관심을 표명하면서도 새삼스럽게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기 위하여 극본에 관한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가 번거롭고 두려움노라고 사양을 한다.



시에서나 소설에서나 말하고 싶은 〈무엇〉을 가지고 작품을 쓴 분들이 정색을 하고 드라마를 쓴다면 나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꾸어 말해서 시나 소설을 쓰고 싶다가 〈하고 싶은 무엇〉이 없거나 부족하여 뜻대로 안되자 에라 손쉬운 텔레비전 드라마나 써보았자 〈하고 싶은 무엇〉이 없으면 마찬가지로 안 된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무엇〉이란 작가의 내부에서 강물이 실어온 모래가 삼각주를 이루듯이 삶을 통하여 쌓여진 총체이며 그것은 때로는 아픔이기도 하고 때로는 사유이기도 하며, 때로는 감각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은 물질적 정신적 여유가 생겨서 가정생활에 별로 영향을 주지 않는 한도에서 여가를 선용하여 드라마 극본을 써볼까 하는 발상과는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른 것이다.



일요화가와 직업화가의 다른 점이 취미로 하는 것과 업으로 하는 것의 차이라고 주장할 때, 여가선용으로서의 드라마를 쓴다는 것이 어불성설임을 금방 알 수 있다.



드라마는 보는 것이지 만드는 게 아니다 라는 만드는 측의 고통을 여실히 증명하는 말로써 요샛말로 뼈를 깎고 살을 저미는 고통 없이 이루어지지를 않는다. 그것은 모든 문학 장르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취미로 드라마를 쓸 수 없다는 것을 재인식해야 되며, 무릇 드라마작가 지망생은 원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한번 자기정립을 해야 할 것으로 믿는다.



원점이란 인생의 초입, 청춘시절에 〈죄와 벌〉을 읽고 끝없는 회의에 빠지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자살에의 감미로운 유혹을 느끼던 그런 순수한 초심을 되찾아야만 〈말하고 싶은 무엇〉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의 탄력 있는 감성과 소박하고 앙양된 마음가짐은 사라져 버리고 생활인으로서의 욕망과 기능만으로 드라마를 써보겠다는 것은 이미 창작가의 초심을 잃어버린 상태이다.



그러한 토양에다 씨를 뿌리고 물을 대고 비료를 주어보았자 열매는 맺지를 못할 것이고, 설사 맺었다 하더라도 윤기 없고 시들시들한 과일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겸손하게 초심으로 돌아가자!



모든 자기기만을 떨쳐버리고 젊은 날의 싱그러운 마음, 요샛말로 마음을 비우고 긴 안목으로 첫발을 내 딛자!

(이 글은 고급두뇌들이 드라마로 몰리던 90년대 초에 쓴 것이지만 모든 문학 장르에 해당이 될 듯하여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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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훈(시인/시나리오라이터/방송작가)

본명 : 권기문(도서출판 드라마/영상미디어 기획 대표)

홈페이지 : http://scene2.wo.to

이메일 : kihoon12@naver.com



현재, 영화와 드라마를 기획 집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나리오, 드라마 극본 등을 개인지도 및 강의하고 있으며, 문학작품을 클리닉 하여 베스트셀러를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저는 감성을 배우고, 사람들에게는 제가 알고 있는 테크닉(노하우)을 줍니다.(가르친다고 하지 않음) 시청자 입장에서 참여(모니터)하고 싶으신 분은 누구나 환영합니다. 메일 주세요. 친절하게 안내해 드리고 고료를 지급합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감성과 저력으로 일하며 이제는 정말 사랑도 우정도 놓치지 않겠습니다.
2006-07-07 22:21:56


     
  
   한해를 보내면서
   아픈 만큼 삶은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