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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당선작 이상렬 수필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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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위엔 거울이 있다

이상렬

우리 교회는 피아노 반주자가 있다. 교회에 피아노 반주자가 있다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작은 교회에는 가끔씩 그 당연한 것이 감사가 될 때가 있다. 그 중 하나가 피아노 반주자가 있다는 것. 거창한 말로 표현해도 모자람이 없다. 그녀는 적어도 나에게서는 한국최고의 반주자다. 60억분의 1의 반주자다. 이 글에서 그녀를 내 마음대로 香(향)이라고 부르고 싶다.

香은 4살짜리 애기엄마다. 香은 피아노앞에 있는 동안 아이는 한 살 때도, 두 살 때도, 세 살 때도 엄마 곁에 없었다. 아이가 칭얼대도, 울어도, 쉬 마려워도 엄마의 자리는 늘 피아노 앞이었다. 목사는 香에게 늘 미안하다.

香이 앉은 피아노, 그 위에 작은 거울이 하나 놓여 있다. 香은 그 거울을 통해서 사람들을 본다. 향이 보는 작은 거울 속 에는 세상이 있다. 옷맵시 화려한 청년들의 쉴 새 없는 재잘됨이 있고, 지치고 고된 삶을 잠시 내려놓고 소박하게 앉아있는 어느 소시민의 눈가에 이슬맺힘이 있다. 엄마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잠을 자는 아기의 숨소리가 있으며, 교회오기 전 국수 한 그릇 숨 가쁘게 말아먹고 온 푸석한 중년의 삶도 보인다.

그리고 그 작은 거울 속에는 강단에선 목사도 있다. 향은 목사의 컨디션까지 읽고 살핀다. 목청이 낮으면 음을 낮춘다. 성도들의 목청이 작으면 반주를 하면서 직접 찬송을 부른다. 香의 반주는 살아있다. 사람의 마음까지 읽으며, 느끼며 반주한다. 감각적이다. 경지에 올라있다.

香의 손끝에서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선율은 목사의 못말리는 음치송도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음색으로 바꾸어 버린다. 마치 피부살갓이 공기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묵도송, 기도송, 성가대송, 폐회송이 자르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것은 피아노 앞에 香이 앉아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있으면 숨은 듯 하지만 없으면 큰일 나는 존재다. 단 한 번의 예배에도 빠짐이 없어야 하는 유일한 자리. 향이 없는 우리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누구에게나 귀중한 존재가 된다는 것, 어느 곳에서든지 귀중한 존재가 된다는 것, 그 사람이 없으면 아쉽고 허전할 정도로 소중한 존재가 된다는 것, 그것은 위대한 일이다. 그렇게 소중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 꼭 커다란 업적을 이루어야 만하는 것은 아니다. 밤의 달이 지고 아침이면 해가 떠오르듯 변함없이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삶이어야 한다.
세상은 늘 새 것, 새로운 것을 요구한다. 조금만 지루하고 식상하면 미련 없이 바꾸고 떠난다. 그래서 세상은 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목청 높여 우리를 압박한다. 사람도 변하고 인심도 변하고 환경도 변한다. 변하지 말아야 할 것, 정결한 사랑, 순백의 믿음, 보석 같은 진리까지 변해간다. 그래서 이제는 새로움보다 한결같음이 그립다. 변화보다 머무름이 정겹다. 향은 늘 한결같다. 사람들은 ‘한결같음’ 을 ‘지겨움’ 으로 여긴다. 아니다. 한결같음은 ‘편안함’ 이요 ‘안정감’ 이다. 향은 그 한결같음의 진수를 우리 곁에 잠잠히 머무름으로 가르쳐 준다.

왜 쉬고 싶은 마음이 없겠는가? 왜 한 번쯤은 남들처럼 슬럼프다. 탈진이다 하면서 허점을 남겨놓고 싶은 마음이 없겠는가? 수요일 밤이면 가족들끼리 오붓한 저녁 한 끼 먹고 싶은 마음이 香에겐 왜 없겠는가? 그러나 香의 자리는 오늘도 피아노 앞이다.

오늘 직접 피아노 香의 자리에 앉아보았다. 香이 보았던 작은 거울로 세상을 보았다. “아~그렇구나. 이 작은 거울로 목사가 선 강단을 응시하고, 예배실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었구나” 가지런히 정돈된 악보들, 복음성가집에서 香의 손길이 묻어있다.
이번 주도 香의 손끝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섬김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가 날리게 되겠지. 이번 주 만큼은 香이 보는 작은 거울 속사람들이 더 행복해 보였으면 좋겠다. 이제는 하나님의 따뜻한 눈빛이 거울 속에 있는 香을 살폈으면 좋겠다.

♧ 작가의 약력 ♧
영남대학교 경영학 석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계간 영남문학 수필 등단
대구일보 전국수필대전 입상(2010년)
기독교 문예 수필 신인상 등단
한국기독교작가협회 회원
천마문학회 회원
사립도서관 <돼지등> 운영
반야월 성덕교회 담임목사

2011-03-08 16:2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