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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流溢)한 선물
김 정 미



선물을 받았다. 미리 짐작한 선물이었지만 갑작스레 받은 선물도 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포장된 선물상자를 가만가만 두드려본다.

“아이가 셋이에요? 막내가 아들인가 봐요!”
나와 초면인 엄마가 회동그란 눈으로 나를 보며 던지는 질문이다.
“첫째가 딸이고 둘째는 아들, 막내가 딸이에요. 딸도 있고 아들도 있으니 막내는 보너스죠.”
출산율 저하로 고민하는 나라에서 애국자라도 된 듯 내 목소리는 당당하면서 어엿하다. 자식 수가 부의 상징도 아닐뿐더러 자랑거리도 못 되는데 말이다.

아침이 등교준비로 시끄럽다. 막내가 입학하면서 세 아이 모두 초등학생이 되었다. 5학년인 큰아이는 학교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탓에 시간을 재가며 등교준비를 한다. 걸음을 떼는 것부터 재발랐던 둘째는 밥도 먼저 먹고 학교 갈 준비도 먼저 끝내지만 문제는 막내다. 막내는 아침잠도 많고 행동도 굼뜨다. 늦으면 학교에 같이 갈 수 없다고 윽박질을 해야 일어나고 아침밥은 밥알을 세며 먹는지 좀처럼 줄지 않는다. 시계를 보면서 조급해지는 건 오히려 나다. 아이의 입에 밥을 떠 넣어주면서 내 얼굴빛은 점점 붉어져 간다.

‘둘째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임신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 머릿속이 온통 순백색으로 변하는 듯했다. 세상구경 한지 이제 6개월 된 아들이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맑은 하늘에 날벼락이라더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임신 4개월이 되도록 임신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것과 혼자 아이 셋을 키워야 한다는 중압감이 주체할 수 없는 무게로 느껴졌다. 누워있는 아들에게 미안했고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남편에게 조차 원망의 화살을 날리지 못했다. 결국 내가 내 발등을 찍은 셈이 아닌가.

주변사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소식을 들은 친정어머니는 당신 딸이 앞으로 감당해야할 일을 걱정하시며 한숨이 깊어지셨다. 내게 셋은 낳으라 시던 시댁 부모님은 임신소식을 반기시며 내심 뱃속의 아이가 아들이길 바라셨다. 나의 가정사를 잘 알고 있던 친구들이 ‘생각지도 않게 낳은 아이가 효도한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위로는 쳐진 내 어깨를 토닥여주는 듯했다. 남편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식이었다. 육아문제는 전적으로 아내의 몫이라고 생각했던 남편은 아이가 둘이건 셋이건 전혀 문제될게 없는 것이었을까. 나는 몸보다 더 무거워진 마음으로 무심한 남편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아이가 셋이란 사실이 부끄러웠다. 둘만 낳고 말겠다는 나의 결심에 초를 친 꼴이 되었으니 스스로 당당하지 못했다. 동네 사람들이 나를 보며 수군거리는 것 같아 창피했고 흥부네 가족처럼 보이는 듯해 남부끄러웠다. 임신을 미리 알았더라면 중절수술이라도 받았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내 몸 안에 있는 생명이라 내 것이라는 이기적인 마음 때문이었을 게다. 하지만 세상살이가 어디 마음대로 되는 것인가.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게 되나 보다. 동생들은 물론 아빠, 엄마까지 챙기는 큰 딸은 맏이로서의 몫을 야무지게 해낸다. 막내 때문에 뒷전인 둘째는 어려서부터 스스로 행동하는 편이라 아이의 행동거지에 내 잔사설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 고집이 세고 형들에게 지지 않으려는 막내는 내가 쫓아다니며 챙겨야 한다. 그럼에도 막내가 밉지 않은 것은 사랑은 내리사랑이라 했기 때문일까. 사랑 표현이 서툰 나에게 막내는 먼저 달려와 안기며 입을 맞추고 누군가가 귀엽다고 말해주면 깜찍한 척, 예쁜 척도 썩 잘한다. 새치름한 막내의 모습은 나의 입가에 행복을 걸어준다.

선물에 따라 포장지의 색도 달라지는 것 같다. 아이들을 감싸고 있는 색은 어떤 색일까. 큰 딸의 색은 바다를 닮은 파랑이 아닐까.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처럼 큰 아이는 속내를 보이지 않을 때가 있지만 때로는 아빠, 엄마보다 더 깊은 생각과 이해심을 보이기도 한다. 막내딸은 다른 형제들에 비해 적극적이다. 또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일에는 바르르 몸을 떨다가 금방 잊어버리고 웃는다. 막내는 톡톡 튀는 빨간색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둘째는 어떨까. 아들은 누나와 있을 때는 말 잘 듣는 동생으로, 동생과 놀 때는 잘 건사하는 오빠로 자기역할을 한다. 그러하기에 누나의 색과 동생의 색을 섞은 보라색이라고 하면 잘 어울릴 것 같다.

선물은 사랑이다. 선물을 주는 사람은 받는 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상자 안에 사랑을 함께 담아 포장한다. 자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한데 하나님께서 막내딸을 선물로 주셨을 때 나는 기뻐하지 않았다. 기뻐하기는 고사하고 실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큰 실수를 하신 것이라 눈을 흘겼다. 세월이 깨닫게 한 것일까. 하나님이 나에게 막내딸을 선물로 주신 이유를. 하나님은 내가 짊어진 십자가에 무게를 더 하신 것이 아니라 짊어지고 갈 십자가의 무게를 덜어 주시고자 하셨던 것이리라.

선물을 주는 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내가 이기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기대를 잔뜩 품은 채 상자를 열었다가 내 마음에 차지 않는 선물을 받으면 억지웃음만 지었다. 사랑이 담긴 선물은 아름다운 보석보다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아이들을 주님의 사랑과 함께 가족이라는 상자에 담아 나에게 선물하셨다. 세월이 흐를수록 하나님의 선물이 진가를 발휘하고 나는 그 선물에 대한 소중함을 알아가고 있는 듯하다. 한 때 엄마라서 힘들게만 느껴졌던 자리가 지금은 엄마이기 때문에 감사하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말처럼 나도 누군가의 선물을 준비할 때 사랑을 듬뿍 담아 선물하리라. 행여 내 선물을 받은 이가 상자를 열어보며 기뻐하지 않더라도 나는 그저 웃을 것이다.

‘아!’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손가락에 붉은 이슬이 맺힌다. 방에서 놀고 있던 막내가 냉큼 달려와 무슨 일이냐며 묻는다. 다친 엄마의 손가락을 보고 다시 방으로 달려간 막내의 손에 하얀 상자가 들려있다. 막내는 백의의 천사가 되어 돌아온 것일까. 단풍잎만한 아이의 손이 상처 난 내 손가락에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인다. 근심으로 촉촉이 젖은 아이의 눈이 나를 보며 위로한다. 천국에 있는 천사가 필연 하늘에만 있다할 수 있으랴.



• 프 로 필 : 대구출생,
영남대 사회교육원 수필창작과정수료,
천마수필문학회원,
대구 반야월성덕교회 집사
2012-09-11 16:2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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