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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통 (단편 소설)

1. 꼴통,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 창문 저 편으로 비취는 붉은 노을은 정겨움이라기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한 없이 시리게 만든다. 시 월 끝 무렵 새벽에 불어오는 찬바람에 버스 창문은 허옇게 옷을 껴입는다. 동주는 굵고 거친 손가락을 펴 허연 창문에 글씨를 써본다.

‘꼴통’

동주가 버스 창문에 적은 글자이다. 어린 시절 형이 그렇게 불렀고, 동네 친구들이 그렇게 불렀으며, 지금의 자신의 처지가 딱 그 꼴이다. 동주의 볼을 타고 눈물이 죽 흘러내린다. 볼을 타고 흐른 눈물이 짭짜름한 맛을 내며 입술과 코끝을 간지럽게 한다. 사람이 너무 기뻐도 눈물을 흘리고, 너무 슬퍼도 눈물을 흘리고, 너무 억울해도 눈물을 흘리지만, 이 눈물이 도대체 무엇으로 인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하늘을 붉게 수놓던 노을이 져서 이제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잘 닦여진 포장도로를 벗어나 자갈이 제멋대로 나뒹구는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에 들어서자 동주는 고향에 거의 다다랐음을 깨닫는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삼 년 만에 만나는 아버지에게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까? 염치 불구하고 보자마자 와락 껴안아야 할까? 아니면 최대한 조심스럽고 정중한 모습으로 쭈뼛쭈뼛 그의 앞에 서서 그의 처단을 정중히 기다려야 할까?

여러 생각이 칼바람처럼 스쳐지나간다. 지난 삼 년 간 자신이 해온 모든 일들이 후회스럽기만 하다. 만약 이번에 아버지가 자신을 예전처럼 받아주기만 한다면, 아버지의 개라도 될 각오가 되어 있다. 꼭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더라도, 아버지의 밑에서 그의 울타리를 치고 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동주에게는 큰 은혜였다.

그가 절망에 빠져서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의 삶을 지탱할 겨자씨만한 희망도 없을 때, 마지막으로 손을 뻗은 곳은 삼 년 전 자신이 철저히 외면하고 떠나온 아버지였다. 삼 년 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화기를 들고 한 없이 떨던 동주와는 다르게 그의 아버지의 목소리는 미세한 떨림은 있었지만, 마치 그가 연락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덤덤하기만 하였다. 아버지는 동주로부터 계좌번호를 받고는 그가 돌아올 여비에 옷 한 벌 해 입을 정도의 돈까지 부쳐주었다.

어린 시절부터 동주의 형은 공부도 잘하고, 다방면으로 뛰어나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반면, 동주는 왜소한 체격과 좋지 못한 머리 때문에 동네 친구들로부터 항상 놀림꺼리가 되었다. 그의 별명인 ‘꼴통’도 형이 처음 붙여준 것이었는데, 형이 그렇게 부르자 형의 졸개로 있는 동주의 친구들도 자연스럽게 그를 꼴통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동주가 한 없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버지는 형과 그를 차별하지 않고, 막내아들이 혹여나 기죽을까봐 보이지 않는 중에 오히려 그를 더욱 감싸고, 챙겨주었다. 그런 아버지의 은혜를 저버리고 동주는 아버지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미리 물려달라고 졸라, 결국 그 돈으로 상경하고 만 것이다.

동주가 무작정 서울로 올라올 당시만 해도 그의 꿈은 비난받을 정도의 허황된 것만은 아니었다. 나이 삼십에 한참 청춘을 뜨겁게 보내야 할 때에 논두렁밭두렁에서 뜨거운 햇빛과 싸우고, 굵은 빗방울과 싸우고, 때론 날아다니는 새 떼들과 싸워야 했다. 더욱이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친구 녀석들이 서울이며, 대전 등 도시로 하나둘씩 진출해 나가는 걸 보면서 동주는 농촌에 홀로 남겨진 자신의 모습이 늘 외롭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는 아무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도시로 나가고 싶었고, 아버지의 재산을 받아 바리스타 교육을 받아서, 꽤 멋진 커피숍 하나 차려 멋들어지게 살기를 원했다.

동주네 집은 홍성군 은마면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알 정도의 부자였다. 땅이 천 마지기이고, 키우는 소, 돼지를 합하면 이 천 마리는 족히 넘었다. 동주가 어릴 때부터 또래에 비해 모자랐음에도 불구하고 큰 소리 치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아버지의 재산 덕분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는 한 가지 원칙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와 그의 형이 재산을 물려받는 조건으로 농사일과 사축(飼畜)일에 빠지지 않는 것이었다. 평생을 노력해서 재산을 거기까지 부풀려 놓으신 아버지는 자신조차도 그 일에서 빠지지 않았다. 큰 아들은 홍성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수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받고자 고등학교까지만 졸업하고 농촌에 남기로 해서 군수로부터 표창까지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동주는 시골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하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가지고 온 형에 대한 열등감과 손가락질 하는 동네 사람들, 천성적으로 일하기 싫어하는 본성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재산을 물려받아 이 농촌을 떠나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하루가 다르게 오히려 정정해지는 아버지를 보면서 오히려 재산의 일부만이라도 챙겨서 농촌을 떠나는 게 낫다고 생각하여 재산을 미리 달라고 아버지를 성가시게 굴기 시작하였다. 그는 여기서 짐승처럼 사느니, 차라리 짐승 같은 자식이 되고 싶다고까지 말하였다.

아버지는 처음에 막내의 말에 서운하기도 하고, 그를 홀로 떠나보낼 생각에 걱정이 되어 거절을 했지만, 아들이 자신의 울타리 안에 사는 것에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점점 덧나가는 것을 보면서 차라리 돈을 줘 내보내 버리자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아버지는 논 이 백 마지기와 소와 돼지를 판 돈을 동주에게 주면서 그가 받을 평생의 몫을 지금 다 받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동주는 아버지에게 그 동안 키워주신 것은 감사했지만,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는 집과 고향을 돌아서서 나왔다. 동주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아버지와 형은 그 자리에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막내아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저녁노을이 다홍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2. 어제와 조금 다른 오늘.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은 동주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한다. 그는 좌우를 한 번 조심히 살펴보고서는 그의 통장을 열어 금액을 확인한다. 금액을 확인하자 입 꼬리가 좌우로 더 찢어진다. 이제 서울에 도착하면 어린 시절부터 함께 했던 주환이가 마중 나와 있을 것이다. 주환이는 동주를 꼴통이라고 놀려대며 따돌렸던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그를 친구들로부터 감싸주었던 유일한 친구였다. 주환은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해서 중, 고등학교는 대전에서 다녔고, 대학생활부터는 죽 서울에서 보내고 있다. 그런 주환은 늘 동주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동주가 서울로 올라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도 바로 주환이 서울에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밤은 만사 다 제쳐두고 그냥 주환과 나란히 앉아서 소주나 들이켜야겠다. 고속버스 창밖 저쪽으로 비쳐진 번쩍이는 고층건물들을 보자 괜한 위압감이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동주는 창밖 저편으로 펼쳐진 유혹적인 도시의 야경에서 시선을 떼어내지 못한다. 고개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하는 자신과 다르게 잠을 자거나 신문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는 사람들 속에 자신의 모습이 멋쩍게 느껴져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자리에 허리를 펴고 앉아본다. 동주가 잠시 눈을 붙인 사이 버스는 어느새 터미널에 도착해 있었다.

빼곡하게 정렬되어 주차 되어 있는 버스들이 주는 위압감이 도시에 발을 들인 동주를 반겨주었다. 백 대도 넘는 버스들이 내뿜는 쾨쾨한 냄새가 동주의 미간을 모으게 만든다. 동주는 전화기를 꺼내어 얼른 주환에게로 전화를 건다.

“어, 동주, 왔어?”

“어.. 이 동네 왜이리 복잡하냐? 허허, 버스가 이리 많은 건 처음이네.”

“일단 밖으로 나와서 대합실 쪽으로 와. 짐은 많지 않지?”

“어, 짐이랄 게 뭐 있나? 금방 갈게”

동주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대합실로 걸어간다. 사람들의 어깨가 닿을 때마다 자신의 통장이 들어있는 주머니에 괜히 손을 넣어 통장을 만져 본다.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은 주환을 만나서야 좀 풀어진다. 주환이 홍성을 떠나면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이제 꼭 20년이 지나서 만나는 것이다. 주환의 얼굴과 몸집은 푸근한 게 어릴 때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주환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벌려 동주를 꼭 안아준다. 낯선 사람들 틈에서 만난 친구의 환영이 눈물겹기까지 하다. 동주는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주환의 품에 안긴 후 그의 뱃살을 손으로 가볍게 툭 쳐본다. 주환의 멋쩍은 미소가 예전과 같아서 좋다.

“일단 집으로 가서 짐을 풀고 움직이자. 오늘은 아무 생각 하지 말고, 마셔줘야지?”

“당연하지, 주말엔 회사 안 가지?”

주환은 끄덕여 대답해준다. 주환을 따라 나온 동주는 주환의 차를 보자 입이 떡 벌어진다. 도시의 밤에 어울리게 검게 빛나는 품격을 갖춘 주환의 차는 동주의 마음을 순식간에 홀린다. 주환의 옆에 앉은 동주는 마치 사람들이 모두 자신들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는 착각에 잡혀 우쭐해지기까지 한다.

“이런 차는 얼마나 하냐?”

“이 차? 허허, 왜? 차 사려고?”

“돈이 있어야지. 사지.”

“이 차 할부로 산거야. 한 오 천 정도 돼. 내 월급 다 모아서 사려면 한창 모아야지. 허허”

“그래? 오, 생각보단 비싸지 않네. 내가 물정을 잘 몰라서 그러는지 서울에 있는 건 다 비싸 보인다.”

“비싸지. 네가 부자인거지. 아니지, 네 아버지가 부자인가? 허허”

말끝마다 허허 웃음을 짓는 주환의 말투가 참 좋다. 동주는 이왕 시작할 거 멋들어지게 변신하고 나서 도시 생활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차로 주환의 집에 오면서 동주는 몇 가지 필요한 것들을 생각해본다. 주환의 집에 도착한 동주는 짐을 풀고 주환의 침대에 누워 몸을 뻗어본다. 편안함에 이대로 잠들고 싶지만, 근처에 좋은 술집이 있다는 주환의 말에 동주는 몰을 일으켜 그를 따른다.

거리를 죽 뻗어 정렬된 호사한 네온사인은 그야말로 동주에게 신세계였다. 밤 아홉시면 어두컴컴해서 잠자는 것 이외에는 할 일 없던 자신의 고향과는 다르게 서울의 밤은 아홉시가 돼서야 문이 열리는 것 같았다.

주환이 동주를 데리고 들어간 술집 이름은 ‘악마와 술 한 잔’이었다. 꽤나 매혹적인 이름이다. 이곳은 주환이 회사 동료들과 가끔씩 오는 곳이라고 했다. 악마와 술 한 잔 하고 싶어하는 무리들이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종업원은 주환을 잘 아는지 주환이 들어오자마자 주환과 가벼운 포옹을 하고 우리를 깊숙한 장소로 안내했다. 시끌벅적한 홀과는 다르게 안에 있는 방은 조용하고 깔끔했다.

“오늘은 친구 만난 기념으로 내가 살테니 걱정 말고 맘껏 마셔.”

주환이 털털한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여기 비싼 데 아냐?”

“나한테는 비싼 데지. 허허.. 너한테는 모르겠다.”

“나도 이젠 아버지한테 나와서 돈 없다.”

“그래도 천하에 이동주가 돈이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조금은 있긴 하지....“

방으로 들어온 여성들 때문에 동주는 말끝을 흐렸다.

“인사해, 내 고향 친구야. 지역에서 알아주는 부자야. 허허”

“부자는 무슨...”

주환의 말에 겸연쩍어 하면서도 동주의 목에 힘이 들어간다.

“오늘은 그냥 내가 낼게 마음껏 마셔. 천하에 이동주가 이 정도는 내줘야지.”

“그래? 허허. 그럼 오늘 부자 친구 덕 좀 봐볼까? 허허”

동주는 주환과 낯선 여자들 틈에 끼어 주는 대로 술을 다 받아먹는다. 어제 이 시간에는 돈사(豚舍)를 순찰 한 번 돌고, 피곤한 몸을 끌고 자리에 누웠었다. 술에 취하니 이 방에서 잊어버리려 했던 돼지우리 냄새가 나는 것도 같다. 주환의 얼굴이 돼지 얼굴로 보이기까지 하다. 그 냄새와 모습을 잊으려고 또 술을 마셔댄다. ‘악마와 술 한 잔’, 동주는 오늘 밤 새 악마와 술을 마셔줄 용의가 있다. 한 잔 한 잔의 술이 더해질수록 동주는 깊은 편안함에 빠져든다.

3. 악마와 술 한 잔, 그리고 두 잔

잠에서 깨어나니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옆에서 코를 골고 세상모르고 자는 주환이 없었더라면 아마 어제의 일이 모두 꿈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자는 주환을 옆에 두고 주방으로 나와 물을 마신다. 어제의 일이 도통 생각나질 않는다. 주방으로 난 작은 창문 밖으로 늦가을 화창한 주말을 만끽하기 위해 나온 차들이 줄지은 모습이 보인다. 그것을 보니 또 고향을 떠났다는 실감이 든다.

이제 가게를 낼 계획을 짜야 하고, 차도 사야 한다. 상황이 좋아지면 이곳에서 결혼할 여자도 찾아야 한다. 늦게 올라온 만큼 모든 일을 일사천리로 해결해야 한다. 동주는 해장국이라도 마실 생각으로 주환을 깨운다. 주환이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주환아, 밥이나 먹으러 가지? 상의할 것도 좀 있고.”

“어, 그래, 아.. 머리 아프다.. 그래도 혼자 일어나지 않아서 좋은걸? 허허”

주환은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 동주를 집 앞 해장국집으로 안내한다. 주환은 어제 있었던 일들을 동주에게 이야기 해준다. 술값이 이 백 만 원 정도 나왔다는 거며, 어제 만난 술집 여자에게 동주가 결혼하자고 했다며, 시골에 있는 아버지와 형에게 쌍욕을 했던 것들을 말한다. 주환의 얼굴이 여전히 실실댄다.

동주의 마음이 살짝 상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어제 밤에 한 바보 같은 말과 행동에 스스로에게도 화가 난다.

“나 서울에서 커피숍을 하나 하고 차리고 싶어. 어디 좋은 자리 좀 없나?”

“좋은 자리야 많지. 돈이 많이 들어가서 그렇지. 얼마나 있는데?”

“저 그게...”

“뭐 어때? 내가 그거 안다고 너 뜯어먹기라도 할까봐? 허허..”

“아니, 누가 그랬데? 지금 한 오 억 정도 있어. 그게 내가 아버지한테 받은 전 재산이야.”

“적은 돈은 아닌데... 막상 좋은 것을 차리기에는 큰돈은 못 돼. 그 돈으로 홍성 시내에 커피숍 차렸으면 기가 막히게 차렸을 텐데.. 허허..”

“거기 얘기는 하지도 말아. 이제 죽을 때까지 거기 안 간다. 아버지한테도 그리 말했어. 앞으로 다시 돌아갈 일 없다고.”

“뭐 어찌됐든 같이 한 번 알아보자. 내가 아는 사장님이 계시긴 한데, 그 분한테 물어보면 적당한 곳을 소개해 주실 거야. 어서 먹어 해장국은 내가 살게. 허허”

밥을 다 먹은 주환은 이쑤시개로 이를 쑤셔대며, 배를 두어 번 두드려 본다. 그는 자신이 잘 안다는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동주는 도로를 지나다니는 자동차를 쳐다보고 있다. 어떤 차가 자가기 탔을 때 어울릴지를 상상해보기도 한다. 주환은 연신 실실거리면서 전화에 대고 ‘부탁한다.’고 이야기 한다. 주환이 전화를 끊자 동주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잇는다.

“뭐라고 해?”

“꽤 괜찮은 조건에 자리가 났데. 그런데 돈이 조금 아쉬운가봐. 한 삼억만 더 있었어도 딱 좋은 자리에 자리가 있다고 하는데. 일단 돈이 안 되도, 한 번 가서 보기나 할까?”

“그.. 그러자.”
동주는 주환의 번쩍거리는 차를 타고 도심을 조금 벗어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카페에 도착했다. 그 곳에 가니 한 남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쌍꺼풀이 진하게 진 남자는 한 눈에 봐도 주환보다도 덩치가 더 컸다. 기름진 얼굴에 짧은 머리를 하고, 금테 안경을 쓴 그 남자가 주환과 동주를 카페 안으로 안내했다. 밖에서 볼 때엔 잘 몰랐는데, 안으로 들어오니 제법 크고 세련된 카페였다. 사람들도 많이 앉아 있었다. 자리에 앉아 커피를 주문하자마자 상대 남자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이 정도면 그 가격으로는 꿈도 못 꾸는 좋은 조건입니다. 당장 들어가는 투자금이 많이 들어간다고 해서 부담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여기 수익에 비하면 거저죠, 거저.”

이번에는 주환이 입을 열었다.

“형님, 그러면 얼마가 필요하단 말씀이죠?”

“팔억 정도면 일단 가게 인수 자금은 될 거야. 물론 그 이후 더 필요한 것들이 있겠지만. 더 싼 데 몇 군데를 소개해줄 순 있지만, 솔직히 여기가 이렇게 좋은 조건이 나올 줄은 몰랐어. 남 주기엔 너무 아까운 곳이라 소개해 주는거야. 내가 돈만 조금 더 있었으면 절대 너한테도 양보 안 했지.”

그 남자와 주환은 낄낄거리며 나온 커피를 훌쩍대며 마신다. 이때까지 동주는 사실 그 남자에게 인사 몇 마디 건낸 것 이외는 제대로 대화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차를 타고 오면서 자신만 믿으라는 주환의 말을 믿고 주환과 그 남자의 대화를 충실히 듣기만 하였다. 그러다 나머지 삼억에 대한 궁금함이 생겼다.

“그럼 남은 어떻게 구하죠?”

“집이 부자라면서요? 홍성에서 알아주는 부자라고..”

“아, 그건 이제 지난 얘기에요. 저는 집을 나왔습니다. 아마 아버지도 이제 저와의 인연을 정리하셨을 겁니다. 유산을 미리 달라고 받아서 나왔거든요.”

동주는 이 말을 하는 것을 쑥스러워 하면서도 주환을 한 번 쏘아본다. 주환은 실실 웃으며 손을 한 번 들어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보낸다.

“가게는 마음에 드세요?”

“마음에 들긴 하지만, 너무 비싸네요.”

“음... 그럼 제가 한 삼억은 투자를 할게요.”

옆에서 듣고 있던 주환이 대화에 끼어든다.
“네가?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저 없죠. 형님이 삼억 빌려주셔야죠. 허허”

“이 녀석, 허허.. 이 넉살은 여전하네.. 흐흐”

주환과 그 남자의 웃자 동주도 같이 웃어준다.

“돈이야 내가 너한테 얼마든지 빌려줄 수 있지만, 대신 이자는 제대로 쳐줘야 해. 그게 내 밥줄이니까. 흐흐”

“걱정마세요. 이 정도 손님이면 금방 갚을 수 있겠네요. 허허허. 동주야, 어때? 그렇게 하면 되겠지?”

“어? 그.. 그래. 근데 생각 좀 조금 해보자. 일단 집에 가서 상의해보지.”

“형님, 그럼 우린 여기서 일어나고 이따 저녁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래, 빨리 결정해. 나 맘 변하기 전에. 흐흐흐..”

주환과 동주는 그 남자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카페를 나온다. 동주는 나오면서 카페를 다시 한 번 돌아본다. 세련된 카페와 카페 안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들의 여유 있는 미소가 동주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주환은 카페를 차리면 좋은 점들을 끊임없이 이야기 해댄다. 이제 온 지 이틀이 지났지만, 동주는 많은 것을 이뤄낸 것 같은 자신이 대견하다. ‘진작 올라왔더라면 이 모든 일들을 이미 이뤄놓았을 텐데’라는 생각에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살짝 올라온다.

결국 그 날 저녁 동주는 주환과의 합의 끝에 카페를 인수하기로 하고, 그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준비하겠다고 이야기 한다. 그 날 밤 동주와 주환은 어제 갔던 ‘악마와 술 한 잔’을 또 간다. 악마와의 술 한 잔, 그리고 두 잔을 마시는 시골 청년에게 이미 많은 것들을 손에 쥔 듯 한 희열이 느껴진다.

4. 평범한 특별함.

박스를 덮어도 발이 시리다. 폐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기침 소리가 목구멍에 와서는 피 맛을 느끼도록 하며 토해진다. 머리가 심하게 울린다.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코 끝으로 시커먼 구정물이 흘러내린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 아니, 억울해서 죽고 싶지는 않다. 살살 꼬셔가며 사기를 처먹은 친구 녀석만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아버지가 주신 돈으로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차라리 아버지를 떠나오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아버지의 보호를 받아가며, 큰 재산을 기다리는 기대감 속에서 가진 재산들을 불려나가는 재미로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삼 년 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했던 후회의 생각들이다. 뭘 그렇게 큰 죄를 지어서 이렇게 거리로 내몰리는 상황까지 왔을까. 친구를 원망하고, 자신을 원망해보았지만, 원망은 현실을 조금도 변화시켜주지 않았다.

거리에서 맞이하는 도시의 햇살은 더 강하고, 바람은 더 차다. 이곳에서의 시간이 늘어날수록 이것에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그러한 자연의 횡포는 점점 더 나를 지키고, 두렵게 만든다. 빚쟁이들을 피해 도망 다니는 것도 이젠 너무도 지친다. 그냥 이대로 자고 일어났을 때에 더 이상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이 펼쳐졌으면 좋겠다.

가끔씩 집에 있는 아버지 꿈을 꾸곤 한다. 그렇게 나에게 지극정성으로 잘해줬건만, 그렇게 아버지의 마음을 갈기갈기 찌어놓고 그를 떠나왔다. 집에서 나온 삼 년의 시간 동안 다시 돌아간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고향의 꽃향기와 풀 잎 냄새가 그립다. 아니, 집에서 키우던 돼지 똥 냄새까지 그립다. 우리 집에서 키우는 돼지와 소는 그래도 매일 굶지 않고 처먹어대는데, 그 돼지와 소가 오히려 부럽다. 이전의 평범했던 하루하루가 지금 내게는 너무도 특별한 날들이 되어버렸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참을 수 없는 배고픔과 비참함에 나의 발은 나의 몸을 공중전화로 이끈다. 사람들이 던져준 동전을 가지고 전화를 건다. 전화벨이 울리는 동안 내 발가락은 초조함에 움츠려 든다. 수화기 너머로 어떠한 말과, 반응이 나오더라도 난 말 없이 그 반응을 받아들일 것이다.

“여보세요.”

전화벨 끝으로 나직한 음성이 들려온다. 너무도 익숙하고 반가운 목소리지만, 그 온유한 목소리에 대답할 목소리가 목구멍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아버지... 저... 동주에요...”

5. 꼴통, 꼴통으로 돌아가다.

동주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편할 리 없다. 삼 년 간 시달렸던 빚 독촉을 벗어났다는 것 자체도 적응이 되질 않는다. 도대체 이 빚을 평생 어떻게, 무엇으로 갚아야 하는가. 그냥 차라리 아버지가 자신을 시원하게 후려치고 밟고, 욕했으면 좋겠다. 그냥 아무 일도 없었듯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동주 자신에게는 용납이 되질 않는다.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형을 볼 면목도 없다. 자신의 것을 다 포기하고서 그 자리를 지키는 형에게 자신이 한 그 날의 배신은 얼마나 큰 아픔이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동주의 집에 버스가 거의 다다랐다. 삼 년 만에 찾아온 고향은 슈퍼마켓이 마을 어귀에 하나 생긴 것만 빼고는 그대로였다. 버스에서 내린 동주는 쉽게 발길을 집으로 향하지 못한다. 터덜터덜 무거운 발걸음으로 향하고 있는데, 저 편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동주의 눈앞에 흐려진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지금 나를 향해 가까워지고 있음이 확실하다. 아버지는 지금 나를 향해 뛰어오고 계시다. 그도 아버지를 향해 뛰고 싶지만, 용기가 나질 않는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내리는 처단의 행동에 대해 그는 반응할 수 있을 뿐이다.

아버지는 동주를 깊게 껴안아준다. 동주의 눈엔 눈물이 흐른다. 그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어렵사리 그의 손을 들어 아버지를 감싼다. 아버지의 등을 토닥여준다. 그의 코끝으로 풀 냄새와 꽃냄새가 스쳐 지나간다.
돌아갈 곳이 있는 것은 행복이고, 맞아줄 사람이 있는 것은 축복이다. 다시 찾은 이 행복과 축복을 죽을 때 까지 아끼고 사랑하리라 동주는 마음 먹어본다.



◇ 작가의 약력 ◇

대전 출생
한밭대학교 졸업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한국 농촌문학상 8회 우수상 수상 (소설)
기독교문예 신인상 수상 (소설)
한국기독교작가협회 회원
한국 농촌문학회 회원
現 강릉제일교회(합동) 강도사
2013-03-10 22:3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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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0
636
68
심사위원회
2014-10-20
534
67
심사위원회
2014-10-20
468
66
심사위원회
2014-10-20
460
65
심사위원회
2014-10-20
528
64
심사위원회
2014-10-20
447
63
심사위원회
2014-10-20
449
62
심사위원회
2013-03-10
905
61
심사위원회
2013-03-10
771
60
심사위원회
2013-03-10
778
59
심사위원회
2013-03-10
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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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회
2013-03-10
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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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회
2013-03-10
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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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회
2013-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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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회
2013-03-10
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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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회
2013-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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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회
2013-03-10
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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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회
2013-03-10
760
심사위원회
2013-03-10
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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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회
2012-09-11
777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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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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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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